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뒤틀린 천기(天氣)(2)

최주희 |2006.10.12 10:34
조회 35 |추천 0

 

 

 

 


이 무슨 구세주의 등장인가!

야호는 노파 뒤에서 미소 짓고 서있는 아리따운 처자에게로 반가운 시선을 옮겼다. 겉모습만큼이나 마음도 고운 인간이라고 벌써 평가를 끝낸 후다.

더군다나 그분이라니!! 얼마 만에 들어보는 애정 어린 존칭인가!

막상 고개를 돌려, 젊은 여인을 바라보던 야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의 눈동자는 기이하게 연두 빛을 띠고 있었다. 잠시 동안 말없이 서로를 들여다보던 그들 중, 젊은 여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찌하여 하늘의 파수꾼이신 사신께서, 한낱 영물의 몸에 봉인되어져 계신 겁니까?”

“......”


야호는 담담히 그녀의 눈빛을 마주했다.

대답 없는 야호를 개의치 않는 듯 그녀의 날카로운 질문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사신을 봉인할 수 있는 존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스스로의 의지이십니까?”

“......”

“메, 메야? 사신???”


경악으로 물든 얼굴의 노파는, 후다닥 야호에게서 두어 장 떨어졌다.

야호의 전신으로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뭉클 뭉클 피어오르는 중이었다.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린 야호의 어깨 죽지부터 큼지막하게 부풀어 올랐다. 희뿌연 안개에 뒤덮여 제 모습을 찾아가는 사신의 모습은 무척이나 신비로웠다.

마침내 그의 몸집이 집채만 하게 커졌다.

무엇이든 베어 버릴 것 같은 날카로운 흰털과 신비롭게 흩날리는 검은 무늬가 묘하게 어우러지고 있었다. 아름드리나무와 얼추 비슷한 굵기의 네 개의 다리에는, 붉은 장식털이 불타오르듯 휘날리고 있었다. 그가 숨을 내 쉴 때마다, 신비롭게 은빛으로 반짝이는 안개가 내 뿜어져 신수의 몸을 감싸며 위엄을 드높이고 있었다.

이윽고 신수는 떨구고 있던 고개를 들어 여인을 바라보았다.

푸른 안광을 내뿜는 황금빛의 눈동자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눈빛의 위압감만으로도 그녀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소매로 훔쳐내야 했다.

위와 아래로 뻗은 희고 날카로운 송곳니가 살짝 벌어지는 듯했다.

그녀들의 마음속에 천둥과 같은 소리가 울렸다.


「너는 누구냐」


여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당황하지 않고, 미소를 띠며 상냥하게 대답했다.


 “제 소개가 늦었군요. 소녀는 현(晛)이라고 합니다. ‘밝은 이’라는 뜻이지요.”

「‘현’이라……. 어찌하여 봉인을 알아보았느냐?」


소녀가 막 대답하려던 차에, 심각하게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노파가 끼어들었다.


 “저 아이는 발귀리신선의 화신체요.  발귀리, 그가 당신을 알아 본 것이겠지.”

「발귀리?  그래. 광명을 숭상하며, 누구보다 지혜로운 ‘그’라면 가능한 일이겠군.」


노파는 그가 사신중의 하나인 백호임을 알아보고도 굳이 경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하늘을 지키는 네 방위의 사신 중 하나인 백호.

죽음을 관장하며 죽은 자와 산자를 잇는 역할을 했다.

오행의 금(金)을 상징하는 백호는, 쇠가 의미하는 바와 같이 무력의 상징이다. 그의 강력한 힘은 신통력을 지닌 다른 신성한 존재와 맞서도 전혀 밀리지 않을 만큼 대단하다. 주로 영계의 불순한 존재(鬼神)를 평정하는 이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의 발 구름 한번이면 거대한 지진이 일어난다고 한다. 전설상의 신수로 알려진 그가 지금 노파와 젊은 여인의 눈앞에 현신해 있었다.


“소녀가 여쭈었습니다. ‘스스로의 의지’이십니까?”

「 ....... 」

“아니면 그 분의 뜻입니까?”


쿠오오오.

순간 주위를 압사시킬 듯한 엄청난 기운이 두 사람을 압박해왔다.

팽팽한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고 가녀린 여인의 몸이 휘청거렸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백호의 황금빛 눈동자와는 달리, 의외로 침잠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네가 광명의 신선 발귀리라 하더라도- 그분의 이름을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

“이 아이를 해하려 했다가는, 당신도 온전치는 못할 것이오!”

분노한 노파의 외침이 허공을 갈랐다. 그리곤 그녀의 육신이 공중으로 한 장정도 떠올랐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현은, 자신을 걱정하여 무리하려 하는 할머니를 말려야했다.

그녀가 진땀을 흘리고 있을 때였다. 담담한 백호의 목소리가 현의 가슴을 울렸다.


「내 의지가 절반이었다. 허나 이제는 온전히 내 의지가 되었다.」


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뒤로돌아서서, 백호를 바라보았다.


 “그 말씀은?”


「더 이상 알려 하지마라. 천기가 누설되는 날이면 너와 나는 물론이고 이 세상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아니요, 사신님과 마찬가지로 이것도 제 운명입니다. 하늘이 늙고 땅이 거칠어 만물이

  영웅의 도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제가 제물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제 생의 의무이기도 하지요”

 “ ....... ”

굳은 의지로 두 손을 꼭 쥐며 현이 말했다. 그것은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과도 같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한층 진한 연두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녀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리던 백호와 마찬가지로, 노파도 안타까운 표정으로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다만……. 다만 우리 모두는 그 분의 안배 속에서 움직일 따름이다……. 」


고마운 마음에, 백호를 올려다보는 현의 눈에 물기가 고였다.

노파도 어느새 진정을 되찾아 말없이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다. 


「내 스스로 다시 나를 봉인한다. 나에 대해 천외봉의 그들에게는 언급치 말라.

  아직은 때가 아니다. 그날이 오면 주인이 나를 눈뜨게 하리라.」



마지막 말을 남기고는, 백호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연기처럼 야호의 몸 안으로 스며들어갔다. 일경쯤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덧 집채만 한 덩치도, 주위를 짓누르던 기세도 온데간데없어졌다.

다만 흰털의 개 한 마리가,  희한한 자세로 고개를 이리저리 털고 있을 뿐이다.

제 몸을 부르르 떨며 다시 깨어난 흰둥이의 의식은 잠시 당황했다.

젖은 눈으로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저 젊은 여자와, 방금 전과는 판이한 기운으로 자신을 경계하고 있는 노파로 인해 한동안 어리둥절해야 했던 것이다.

갑자기 노파가 곰 위로 폴짝 뛰어 올라 앉았다. 흰둥이는 움찔거리며 흠칫 놀랐다.


“뫼에 놀라는 게야! 보아하니 네 가는 길이 나와 같은 것 같구나!  가자!”


뿌직!

보자보자 하니까 이 인간들이 자신을 이제는 짐이나 끄는 조랑말 취급이다.

조금 전에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알 턱이 없는 흰둥이다.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새끼줄을 두 앞발로 모아 쥐고 별수 없이 저벅저벅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끄..응....”

(이거 쓸데없는 꼬리를 달고 가서 또 얻어터지는 건 아니겠지..끄응.)


하지만 쓸데없는 꼬리라도 어찌할 것 인가! 당장 이 노파도 감당 못할 존재감인데.

일단은 부지런히 천외봉 정상으로 향했다. 꼬리를 뒤로 말아 감은 채 축 쳐진 야호의 어깨가 오늘따라 유난히 고달파 보였다.


“하하하 고놈! 참으로 두 발로 걷는 모양새가 보면 볼수록 기괴하기 짝이 없구나! 끌끌”

“멍! 멍멍!! 끄응!”

(안다고요! 나도 알아!! 제길! 흑!)


노파는 푹신한 곰 안장위에 편하게 드러누워, 주변의 절경을 감상하며 한마디 툭 내던졌다.

아까전의 그 두렵던 위엄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엄연히 신수가 봉인된 영물 야호를 대하는 노파의 모양새가 가관이다. 과연 그녀의 배짱한번 두둑하다 싶어, 이들을 지켜보며 조용히 길을 걷던 현의 얼굴에도 소리 없는 웃음꽃이 피었다. 


“그래, 마음의 준비는 다 된 게냐?”

“네에. 태어나면서부터 제게 주어진 길이에요. 아무런 후회도 미련도 없어요.”

“쯧쯧 불쌍한 것…….”

“가엽다 여기지 마셔요. 전 오히려 기쁜걸요.”

“오냐. 이제 와서 어쩌겠느냐. 잘 헤쳐 나가는 수밖에…….”


“...... 죄송해요. 할머니.”

“무에가? 됐으니, 그런 말 말거라.”





                                              *                    *                   *





몇 일전이었다. 밤하늘의 천문을 살피던 ‘현’이 굳은 결심을 한 표정으로, 이번엔 꼭 장백산에 가야한다고 자신을 재촉했다. 노파에게 “현”은 늘그막에 얻은 소중한 인연이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더없이 귀하게 키운 아이임은 말할 것도 없었다.

현은 이제 때가 되어 더 이상 지체 할 수 없다며, 눈물을 뿌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노파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절감했다.

그 아이가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제 운명을 듣고, 노파는 얼마나 많은 밤을 절망했던가!

어떻게든 미뤄보고 어떻게든 피해서, 운명에 빗겨나게 해 보려했다. 하지만 노파 자신의 힘으로 하늘의 무게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목숨 같은 손녀딸과 함께 자기 자신까지도, 정해져 있다는 그 길속에 온전히 던져 넣는 것 뿐!

그리고 결국 그녀는 지금 장백산의 천외봉으로 향하는 길이다.




“영물의 몸 그릇에 담긴 사신이라. 어렵군, 어려워 쯧쯧. 그 녀석들도 잘 있겠지?”


뜻 모를 소리를 중얼거리는 노파와 곰을 등에 맨 야호는 열심히 산길을 오르는 중이었다.

천외봉의 꼭대기가 가까워질수록, 악선을 떠올라 울화증으로 야호의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무엇을 고민하는지 ‘현’또한 산길을 올라오는 반 시진 내내 운해 너머로 무엇인가를 담담히 바라볼 뿐, 아무 말이 없다. 


무심한 구름이 그들의 발 아래로 두둥실 흘러가고 있었다.






                                             *                    *                   *






투각 투각

한영은 툇마루에 걸터앉아, 화살을 만드느라 나무를 다듬고 있는 중이었다. 그 옆에는 야무진 자세로 앉은 도화가 그녀의 활과 씨름하고 있다. 녀석은 작은 손으로 활채를 요리조리 만져보기도 하고, 활시위를 당겨보기도 했다. 하지만 제 팔 힘으로는 아직 무리인지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맥궁을 그렇게 다루어서는 안돼. 왼손으로 활채의 아귀를 한번에 감아쥐어봐.”

“이렇게요, 누나?”


늘씬하게 휘어진 활채는 마치 젊은 여인의 탄력적인 몸매를 연상시킬 만큼 매력적이다. 볼록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그리고 풍만한 엉덩이까지 이어지는 완만한 곡선의 활을 받아든 한영은 가장 잘록한 부분을 감아쥐며 말했다.


“여기가 줌피 바로 아래인 아귀야. 왼손으로 엄지를 아귀에 붙이고 중지로 감싸 안듯이 말 아 쥐어. 자 ! 이렇게~”

“아~ 이렇게?”

“옳지! 쪼그만 녀석이 손가락은 긴 편이네?”


한영은 의외라는 듯이 동그란 눈으로 놀라며, 귀여운 도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신이 난 도화는 그저 배시시 웃을 뿐이다.


“그리고 여기 휘어진 활채의 양쪽 끝부분이 활고자야. 양끝의 고자닢은 활 시위를 고정하고   있는 역할을 하는 거지. 시위 가운데 절피가 보이지?”

“음 여기 이 금으로 된 작은 조각이요?”

“그래. 절피는 화살을 거는 것과, 시위를 당기는 강약을 조절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야.”

“아아!! 활을 휘어서, 시위를 걸고, 화살을 시위에 걸어서 당겼다가, 놓는다?”

“그렇지. 줄의 탄력을 받아 화살이 튀어 나가는 거지.”

“음……. 그럼 화살의 끝과 시위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위력이 크게 달라지겠네요?”

“…그, 그렇지.”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