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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평론신문 2004년 7월1일~8일자 6,7면

윤상규 |2006.10.12 22:58
조회 204 |추천 2

[질의서의 대한 답변]

  1. 성경 신구약 성경은 모두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못됨이 없다고 믿는다.

  3. 예수 그리스도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눅 24:44) 하신 말씀에서 보듯이, 구약 성경에 기록된 모든 내용이 예수의 탄생과 구속 사역을 위하여 기록되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세상 죄를 위한 대속의 제물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였으며 승천하셔서 우리의 대제사장과 대언자로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다시 오실 것을 믿는다.
  6. 구원 예수 그리스도는 온 세상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사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각 사람은 율법을 지키거나 인간의 어떠한 선행으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한 속죄를 이루어 놓으신 사실을, 말씀을 통해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영혼 구원을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 영원히 멸망치 않는 몸으로 변화하여 몸의 구원을 얻음으로써 완전한 구원을 얻을 것을 믿는다.

인간의 죄성은 아담으로부터 타고난 것이어서 인간의 어떤 노력이나 정신수양으로도 하나님이 만족하실 만큼 선해질 수가 없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고 했고, 갈라디아서 3장 11절에도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라고 했다.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 위에서 죽게 하심으로써 우리 모든 인간의 죄를 그(예수)에게 담당을 시키셨다(사53:6).

이러한 십자가의 구속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예수)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5-6), "너희가…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8-19),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9:12) 등의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에베소서 2장 8-9절,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라는 말씀처럼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 인간의 노력이나 선행으로 받는 것이 아니다. 이 구원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10:17)는 말씀대로, 하나님 말씀을 듣고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아 회개하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인해 죄 사함을 받게 됨으로써 받게 된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8) 라는 말씀에서 보듯이, 구원받은 사람은 영원히 잃어지지 않는다. 이뿐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은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롬 8:23) 라는 말씀대로 훗날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완전한 몸의 구속을 얻게 된다.     2. 삼위일체이신 하나님 전지전능하시고 만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본체는 한 분이시며, 아버지로서의 하나님과 그리스도이신 아들로서의 하나님, 그리고 성령으로서의 하나님, 삼위로 계심을 믿는다.   4. 성령 하나님의 성령이 이 세상에 계셔서 사람으로 죄를 깨닫게 하시며 말씀을 통하여 거듭나게 하시고, 교회를 이루어가심을 믿는다.   5. 인간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온 인류는 죄인이 되었고, 전 인류는 그 죄성이 원인이 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죄를 저지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이 가진 원죄와 자범죄에 대하여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믿는다.
  7. 교회 교회는 보이는 건물이나 인위적인 조직이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지고, 그것이 곧 그리스도의 몸이며 신부이다. 그리스도인은 그 몸의 지체이며, 사랑의 교제 가운데 성령이 역사하셔서 그 몸이 지어져간다.

교회는 예수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은 사람들의 집합체다. 이 사람들이 모이는 건물은 교회당(예배당)이지 교회 자체가 아니다. 요한복음 2장 21절에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는 말씀대로 진정한 성전은 첫째는 예수님의 몸을 의미했고, 다음으로 고린도전서 6장 19절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하신 말씀대로 예수를 마음에 모신 성도들을 지칭했다. 그리고 로마서 16장 16절,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는 말씀을 통해서 교회가 건물이 아님을 명백히 알 수 있다.

또 에베소서 2장 19절-22절,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하신 말씀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라는 말씀은 성도들이 사랑으로 연결됨을 말하는 것이지 교회당(예배당)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곧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이고 성전이다.

(주 : 여기서 말하는 구원받은 성도란 "구원파" 교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초대 오순절 이후 예수님 오실 때까지 성령으로 거듭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말한다. 따라서 소위 "구원파교회만 참교회다"라는 말은 왜곡된 말이다.)   8. 종말론 인류 역사의 종말에 일어날 일에 대해 순차적으로 성경을 살펴보면, 성도들의 공중 들림이 있은 후에 이 땅에는 환난이 있고, 환난이 끝날 무렵 예수님이 감람 산에 재림하신다. 재림 후 이 지상에는 천년왕국이 건설되고, 천년이 끝난 후 모든 죽은 자들이 다 일어나 심판을 받는 백보좌심판이 있고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은 모두 영원한 지옥에 던지워진다. 그 후에 영원한 나라가 시작된다. 우리는 이 사실들이 성경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주 : 특히 우리를 비방하는 자들은 우리가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한다고 하나 먼저 인용한 "때와 기한은…"(행 1:7) 의 내용 그대로다. "시한부 종말론"이나 "O년 O월 O일" 예수님이 오신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들은 우리와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우리 교회의 설교자나 저서 등에는 전혀 그런 사실을 주장한 적이 없음을 밝혀둔다.)  

[기독교복음침례회에 대한 비판]

다음의 비판내용은 본 회의 견해가 아니며 한기총 자료집이나 각 교단 또는 소위 이단연구가들이 비판한 내용을 그대로 요약 전재한 것입니다.(편집자 주) 회개를 계속하는 것은 구원 받지 못한 증거라고 한다. 구원받은 자들은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회개란 '돌이킨다'는 말로써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한번 돌이켰기 때문에 더 이상 돌이킬 필요가 없고 이미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다 사했으므로 회개를 계속한다는 것은 사죄의 확신이 없는 증거이므로 구원받지 못한 지옥의 자식이라고 한다. 그래서 주기도문도 외우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는다.
이들은 구원을 위한 단회적 회개(히 6:1 이하)와 성화를 위한 반복적인 회개를 구별하지 못하며(시 51편, 삼하 24:10, 마 6:12, 요일 1:8~9), 죄에 대한 참된 통회와 회개는 믿음에서 온다는 것을 모르는 자들이다.   죄인이라고 고백하면 지옥으로 간다. 구원받은 후에는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죄인이냐 의인이냐'를 물어서 죄인이라고 하면 천국은 의인만 가는 곳이요 지옥은 죄인이 가는 곳이니 지옥에 간다고 말한다. 저들은 스스로를 의인이라고 해야만 구원받았다는 것이다.
신자는 하나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고 성령의 역사속에서 성화되어 가는 것이며, 참된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성경적인 것이다.
바울도 죄에 대하여는 과거 시제로 고백하고(딤전 1:15) 죄인의 괴수됨에 대하여는 현재 시제로 고백했던 점은(딤전 1:15) 구원파의 주장과 전혀 다른 것이다.(한기총, 이단사이비종합자료 2004)  

[이단시비 논란에 대한 답변]

  1. 소위 < 구원파 > 이단시비의 발단 기독교복음침례회는 1960년대 당시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던 외국인 선교사 딕욕, 길기수 등의 영향을 받아 1961년 11월 권신찬 목사가, 1962년 4월 유병언 씨가 거듭남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같은 믿음을 가진 두 사람은 선교사양성학교의 신앙 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계기로 점차 복음운동에 합류하게 되었고, 이 운동은 1961년 평신도 복음운동으로 시작되어 < 한국평신도복음선교회 >라는 이름을 사용하다가 1981년 정식으로 < 기독교복음침례회 >라는 이름으로 교단 발족을 하여 전국적으로 서울 26개 구역, 지방 72개 구역, 기타 해외지역에 거주하는 신도 수 약 10만 명의 교회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교단 초기의 이단시비]

  1. 극동방송국과의 관계 1963년 < 복음주의 동맹선교회 The Evangelical Allience Mission 즉 팀선교회 >가 운영하는 극동방송국(당시 국제복음 방송국)에 권신찬 목사가 방송목사로 초빙되어 설교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미국에서의 선교비 조달 부족으로 방송국의 경영이 어렵게 되자, 국내 선교비 모금을 적극 벌이기로 했으며, 그때 본 교단의 교단적인 선교비 지원이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 팀선교부>와 한국평신도복음선교회 간에는 일부 방송(한국어방송) 운영 계약을 체결하고 유병언씨가 부국장에 취임하여 경영에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자료1. 운영계약서 사본)

당시 극동방송국의 선교사들은 권신찬 목사의 '거듭난 경험'에 대하여 매우 깊은 공감을 가졌고 방송을 통한 그의 설교에 적극 찬동을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방송설교 (특히 아침 6시 대의 "은혜의 아침")(자료2. "은혜의 아침" 설교) 시간에는 점점 많은 청취자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전도도 활발하게 되었고, 특히 일년에 한두 번 일주일 단위로 실시하는 에는 수천 명의 청취자들이 모여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2. 방송 청취자들의 영향 이러한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 중 "예수님의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이제 내 죄가 사해졌고 구원을 받았노라"고 기뻐하면서 간증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 중에는 이미 일반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 일부 사람들은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된 기쁜 경험을 자기들의 교회에 가서 간증하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목사님에게까지 "목사님도 이런 구원의 경험을 하셨습니까?" 라고 질문을 던져 목사님을 당황케 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질문을 요령 없이 목사님에게까지 마구 던져 의문을 자아내게 했다는 것은 실수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구원의 경험은 초대교회 이후 거듭난 성도들과 기독교 역사에서 우리 모두가 존경하는 개혁의 선구자들과 그 신도들이 꼭 같이 경험하는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원받았다"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멸망 받을 인생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영적으로 새 생명을 얻었다는 것으로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결과입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벧 1:9)는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은 누구나 경험했어야 할 말씀인 것입니다.   3. 이단의 시비 이러한 현상은 당분간 계속되었습니다. 드디어 지방 장로교회의 몇몇 교회들이 그 교회의 교단 본부에 질문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극동방송의 권신찬 목사는 어떤 사람이기에 그 집회에 갔다 온 사람들은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교회를 시끄럽게 하니 그 정체를 알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는 극동방송국 국장에게 "권신찬 목사가 어떤 사람인가" 라는 질의서를 보내왔습니다. 이에 대하여 당시의 극동방송 국장 윈첼 목사는 답변서에 "권신찬 목사는 교리 상 이상이 없고 우리의 신조와 맞는 사람이라"고 답변을 해주었습니다(첨부자료3.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질의서/팀선교부 답변서).

장로교 총회에서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권목사 등을 제거하라는 압력으로 팀선교부가 운영하는 발행의 서적 불매운동과 극동방송 청취 거부를 하겠다는 통지를 보내왔습니다. 이로 인해 팀선교부에서는 내부적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한국의 대(大) 교단인 대한예수교 장로회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는 선교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후 소위 '구원파' 소속 직원의 해고와 이에 대한 해고 무효 가처분신청 등 법정투쟁 등이 계속되었고, 결국 11명의 직원들은 방송국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4. 명예훼손 고소사건 이러한 사건이 있기 전 극동방송 권신찬 목사의 설교문제가 < 기독공보 >에 보도되기 시작하자, 그 당시 극동방송에서 '신흥종교' 프로그램을 시리즈로 방송해 왔던 당시 신흥종교문제 연구소 소장 탁명환 씨가 돌연 방송을 중단하고 소위 극동방송 계열 권신찬 목사가 이단이라는 내용의 글들을 기독공보에 보도케 해 약 6개월간 매우 시끄러운 기사거리가 되었습니다. 이단 사이비 운운하면서도 그 내용들은 대부분 교리적인 비판은 거의 없이 어떤 사건들을 왜곡 보도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목사 시중드는 두 처녀" 라는 기사가 있었는데, 그 내용을 읽어보면, 전북의 어느 시골 교회의 처녀들이 목사님 댁에서 일을 돕고 있었다는 단순한 내용인데, 독자들이 제목만 봤을 때에는 목사가 두 처녀들을 데리고 산다는 인상을 주게 하는 것 같은 방법이었습니다. 그 후에 는 권신찬 목사에 의하여 명예훼손으로 고발되었고, 기독공보는 당시 편집국장 고환규 씨 이름으로 5단 전행의 사과광고를 내면서 중요한 기사를 낱낱이 해명 사과하는 글을 실었고, 권신찬 목사는 고소를 취하했습니다(첨부자료4. 사과광고 별첨). 이러한 공방을 하는 가운데 본 교단은 '구원파'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고, 교리적인 이단 지적은 없이 몹쓸 어떤 사이비 집단인 것처럼 매도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 신흥종교문제연구소 > 탁명환 씨와의 시비]

(현재는 국제종교문제연구소(소장:탁지원)로 개명-편집자주)   기독공보와 우리 교회와의 문제는 이것으로 일단락 되는 듯했으나 대부분의 신문기사 내용을 직접 제보했던 탁명환 씨는 지난 기사 내용들을 종합하여 단행본으로 '구원파의 정체'라는 책을 냈습니다. 사실 그 내용들은 이미 잘못된 보도였다고 편집국장 이름으로 사과까지 했고, 기사의 대부분은 자기가 만들어 신문에 내게 했던 것인데, 마치 신문의 내용이기 때문에 사실인 것처럼 책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방법은 탁 씨가 흔히 쓰는 방법이었습니다. 다시 권 목사는 그 책의 내용으로 탁 씨를 고소하고 탁 씨는 권 목사의 변명 내용에 탁 씨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하면서 맞고소를 하는 등 끊임없는 법정 공방이 계속되었습니다.  

[오대양 연루 시비]

  1. 5대양과는 무관한 재판 87년 오대양 변사사건 사체 부검의였던 황적준 박사와 사건 당시 현장감식을 했던 경찰대 부설 수사과학연구소 부소장 이삼재 경장은 91년 10월호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오대양 변사현장 인터뷰 재구성-그들은 이렇게 죽어갔다)에서 '32명은 자의에 의해 집단 자, 타살했다' 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88년 12월에는 국회 5공 특위의 재수사 요구에 의하여 치안본부, 경기도 경찰국과 충남경찰국, 용인 경찰서 등이 관련하여 사건 기록을 전면 재검토하고 현장 재연을 실시하는 등 재수사를 실시한 결과, 1차 수사와 다른 점이 발견되지 않아 수원지방 검찰청에서는 '변사자 이외의 자의에 의한 살인의 점을 인정할 만한 자료가 없는 변사사건'으로 내사 종결했습니다. 또 91년 검찰의 재수사에서도 87년 변사사건 당시의 조사 결과와 마찬가지로 '집단 자살'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자의에 의한 집단 자, 타살'이었습니다.   2. 사건의 조작 오대양 사건은 언론에 의해 걷잡을 수 없이 부풀려졌던 전무후무한 사건이었습니다. 첫 번째 이단시비에 휘말렸을 때에 권신찬 목사가 집중 공격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권신찬 목사의 사위이자 한국평신도복음선교회 시절 신도들에게 종종 설교를 하다가 기업을 경영하는 유병언 사장이 비난의 초점이 되었습니다.
당시 그 끔찍한 오대양 사건을 상상력과 추리로써 더욱 끔찍한 사건으로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그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알았던 사람이 바로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 고 탁명환 씨였습니다. 그는 계속 여기저기 제보 및 기고를 통해 구원파와 세모를 오대양과 연결시켜 타살설을 부르짖었습니다.
그 밖에 본 교단을 이탈해 적대 감정을 가졌던 사람들이 이에 합류했습니다.
또한 91년 7월 오대양에서 구타치사 사건을 저지르고 숨어 있다가 자수하는 사건이 생기자, 뒤이어 박찬종 의원이 기자회견을 통해 '오대양사건은 타살이며 그 배후에는 (주)세모의 유병언 사장이 있다'고 폭탄선언을 한 후부터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습니다. 당시 대전 출신 김현 의원도 자신의 측근에게 '사건이 3개월 이상만 끌면 재선은 문제가 없다'고 공공연히 말하면서 이 사건의 타살설을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검찰은 증폭되는 여론을 달래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었습니다. 결국 91년 8월에 이르러서는 (주)세모의 유병언 사장이 오대양 사건 암매장 자수사건과 연루되었다면서 구속했습니다.   3. 오대양 재판은 없었다 그러나 유 회장이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오대양사건'은 단 1회도 언급이 되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을 때까지 재판에서는 오대양을 한 번도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유 회장에 관한 공소장이나 증인 신문에서도 오대양과 연관된 아무 기록이 없었습니다. 검찰에서는 오대양 사건과 연관시켜 기소 자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검찰에서 기소하지 않은 내용을 재판부에서 다룰 수 없었습니다. 분명히 법으로나 모든 면에서 유 회장은 오대양 재판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판결요지가 그려내고 있었던 죄목 또한 오대양 사건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습니다. 사실상 판결문에 나타난 유 회장의 죄목은 오대양사건과 별개의 사건인 82년과 84년에 걸쳐 발생했던 기독교복음침례회 내부의 '통용파'사건이었습니다. 전혀 오대양 사건과 관련이 없다는 수사 결론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유 회장은 엉뚱하게도 과거에 검찰 조사를 받고 89년 광주지법에서 무혐의로 처리되었던 통용파 사건으로 인해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4. 왜곡보도의 기막힌 사연 오대양 사건은 매스컴이 저지른 불가사의한 왜곡과 경쟁 보도의 한 전형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당시 문화방송에서는 경쟁 상대 방송사가 먼저 자막으로 "오대양 신도 32명이 집단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보도를 내보내자 즉시 대응해야 했습니다. 저쪽에서 먼저 방송을 했지만 자막에 불과하니까 이쪽에서는 앵커가 나가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보도국 사회부에 있던 손석희 아나운서는 단 두 줄짜리 정보를 들고 15분 동안 방송을 하라는 지시를 받고 카메라 앞에 앉아 자기 나름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타살설을 주장하는 내용의 기상천외한 뉴스를 장장 십오 분 동안 내보낸 것입니다. 손석희 씨는 박상원의 "아름다운 TV 얼굴"에 출연하여 이 사실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5. 정치적 희생양 이 사건의 이면에는 정치적인 변수가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자수사건이 있기 5개월 전인 91년 2월 2일 6공 최대의 비리로서 수서지구 택지 분양특혜사건이 표면화되기 시작하고, 청와대 비서관 뇌물 수수 등 비난의 여론이 고조되기 시작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5.17 추모행사 과정에서 경찰의 진압에 밀리어 달아나던 명지대생 강경대 군이 사망함으로써 정국은 정부와 경찰의 과잉진압을 규탄하는 대규모 학생가두시위가 일어나는 등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정국이 계속되는 형국이었습니다. 6월 24일은 수서사건의 관련자들에게 징역 3년에서 10년까지 각각 구형이 내려지고 있었습니다. 또 이때를 전후하여 5공 측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보도들과 장세동 씨의 신당 창당설, 조춘자 부동산 사기사건 등으로 정국은 초긴장상태였으며, 지면은 날마다 그런 관련기사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수서 사건은 뒤에 한보하고 관계됩니다. 91년 수서사건이 한참 문제가 생겨서 국회의원들이 계속 감옥에 들어가는 판인데, 묘하게 청와대의 장 모 비서관이라는 사람이 아주 중요한 위치에서 구속되었습니다. 그 후 청와대에서 줄줄이 들어갈 거라는 추측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6공이 밑둥치부터 흔들릴 때였습니다. 돈 보따리가 오고감으로써 일어났던 그 혼란은 정부로서는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대선 바로 직전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정권은 이 불을 어떻게 끌까 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 알맞게 오대양 암매장 자수사건이 터졌고, 폭풍같이 일어나는 정치적 사건들을 잠재우기 위해서 오대양 사건을 부풀려서 떠들었습니다. 가능한 한 희생양이 될 만한 사람을 찾아 죽여야 했고 그 목적을 치룬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6. 오대양과 구원파의 연결 그런데 왜 세간에는 "구원파"와 "오대양"을 한 집단으로 보았을까요? 그것은 취재 경쟁을 하는 중에 사실보도를 외면한 보도 때문이었고, 그 보도를 정부는 곤경에 처한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호재로 이용했던 것입니다. 모처럼의 이러한 엽기적인 사건이 단순한 빚 때문에 집단으로 자살한 것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재미없는 사건이겠습니까? 언론도 마찬가지로 이 사건의 배후에 사회적으로 상당히 알려진 어떤 인물이 있고 엄청난 어떤 음모가 있다고 해야 계속 기사거리로 우려낼 수 있다는 매스컴의 속성과 맞아 떨어졌고, 이 모든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던 사람이 바로 탁명환 씨였던 것입니다. 탁씨가 구원파와 오대양을 연결시키게 된 고리는 오대양사장 박순자 여인이 오대양을 창립하기 전에 한때 구원파의 대전교회에 다닌 적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전교회 식구들은 그 여인을 잘 모르며, 더구나 나간 다음 그러한 회사를 차리고 사업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더욱 알지 못했습니다. 몇몇 아는 사람들은 그 여인이 교인들 몇 사람을 유인해 갔다고 알고 있는 정도였습니다. 어떤 고등학교 출신이 강도가 되었다고 해서 그 고등학교가 강도 학교인 것은 아니듯이, 박순자가 한때 본 교회에 나왔다고 해서 본 교회가 오대양 사건의 배후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어쨌든 탁 씨는 그 한 가지만 가지고도 충분히 오대양사건은 타살이고 그 배후에는 유병언 사장이 있다 라고 소설을 쓸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7. 보도의 허점 우리가 오랫동안 겪어왔던 문제이지만, 신문 방송이 모든 분야에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엘리트 기자들과 풍부한 자료들을 가지고 공정한 보도에 힘을 쓰리라고 생각하지만, 신문 방송 기자들이 가장 잘 모르는 분야가 분야입니다. 따라서 그 때 오대양 사건이 터지자 가장 먼저 인터뷰를 한 '전문가'가 바로 탁명환 씨였고 탁 씨는 그 동안의 구원파와의 힘겨운 싸움에서 결정적으로 승리를 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잡고는 미친 듯이 동분서주하면서 현장을 찾아가기도 했고 그리고는 "36명의 죽음은 타살이며 그 타살의 배후에는 세모의 유병언 사장이 있다"고 엮어 자료에 궁했던 기자들에게 먹여주었던 것입니다. 그처럼 여과 없이 탁 씨의 제보들을 마구 퍼뜨렸던 신문들이 나중에 '유 사장이 오대양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재판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하여는 철저히 입을 다물었습니다.
다만 월간조선이나 몇몇 간행물들이 한두 번 실상을 알리는 기사를 썼고(첨부자료5. 월간조선 기사 첨부), SBS TV "그것이 알고 싶다 - 오대양편", KBS 라디오에서 지나간 사건을 다루는 어떤 프로그램에서 그 동안의 기사들이 왜곡된 것이었다는 내용의 방송을 한 적이 있으나(첨부자료6. 라디오 방송 자료첨부), 과거 너무 크게 떠들었던 사건이라 그 후 일부 밝혀진 진실들은 그대로 묻히고 말았습니다. 이 오대양사건과 세간에 잘못 알려지게 된 경위 등은 정말로 드라마 중의 드라마입니다.  

[잘못 알고 있는 몇 가지 이단시비에 대한 해명]

  1. "세칭 구원파는 자기네만 구원이 있다고 한다"는 말에 대하여 전혀 근거 없는 말이다. 하나님이 지난 2천년 동안 잠자코 계시다가 이제야 본 교단 안에서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을 리가 없다. 2천년 전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 성령이 오신 이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우리는 현재 어느 교파, 어느 교단에 속해 있는 사람일지라도 성경을 사실대로 믿는다면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소위 구원파 교회를 비롯해서 모든 교파나 교단은 복음 전파를 하는 조직체요 교인들의 집합체이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오직 하나 즉, 오순절 성령 강림 때부터 주님 오실 때까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한 성령에 의하여 연결된 그리스도의 신부이다. 그리스도는 이 교회를 위해 자신을 내주셨다. 죄 사함 받은 사람이면 어느 교파, 어느 교단에 있는 누구든지 이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에 속해 있다고 우리는 믿고 있다.   2. "구원받은 후에는 무슨 죄를 지어도 좋다고 한다"는 말에 대하여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소위 구원받았다고 하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로마서 6:1-2) 라는 말씀대로, 구원받은 성도라면 거룩하고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어왔으며, 그렇게 살고자 노력해 왔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후에는 무슨 죄를 지어도 좋다"는 말은 "구원을 위한 회개는 단 한번으로 족하다"는 말을 그릇 해석하여 지어낸 거짓말이다. 아시다시피 회개란 사망의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향한 생명의 길로 방향을 바꾼 것이고, 고백이란 믿은 사실을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며, 자백이란 구원받은 후 생활 속에서 묻어 들어오는 죄를 하나님 앞에 내어놓는 것이다. 즉 구원을 위한 회개는 한번으로 족한 것이요(히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유다서 3절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구원받은 후에는 육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범하는 죄를 하나님 앞에 통회하는 마음으로 자백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한일서 1:9) 그래서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온몸을 씻어달라고 청했을 때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몸이 깨끗하니라"(요한복음 13:10)고 말씀하셨다.   3. "죄 사함을 받으면 의인이기 때문에 회개를 계속하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증거라고 한다."는 데 대하여 이 말도 역시 위의 2항 "구원받은 후에는 무슨 죄를 지어도 좋다고 한다"는 말에 대한 답변에서 이미 언급되었다. 구원받은 사람이 다시 구원해 달라고 회개의 기도를 하지는 않는다. 다만 흔히 "회개"라고 말하는 "자백"을 하면 된다(요한일서 1:8-10).   4. 정통교회의 제도와 예배형식, 주일성수, 십일조, 새벽기도 등을 무시한다는 데 대하여 모든 기독교(신교)의 공통된 교리는 "사도신경"에 요약되어 있다. 그리고 각 교단 교파마다 제도와 예배의 형식은 조금씩 다를 수 있다. 그것이 교리는 아니기 때문에 자기들 교회와 형식이 다르다고 해서 이단이라 할 수는 없다. 우리 교회 교인들은 물론 십일조를 열심히 하고 주일날 모여 예배를 드리고 동시에 성경강론을 듣는다. 그러나 새벽기도는 개인의 자유로 하고 전도인이 새벽 기도회를 인도하지는 않는다. 새벽기도회는 우리나라 기독교의 독특한 습관이지 교리는 아니다. 예를들면 구세군이 그들의 독특한 군대식 조직으로 계급을 정하고 떠들썩하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을 때, 그 당시 비난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 제도가 교리는 아니며 그들이 사도신경을 벗어나지 않는 한 이단은 아닌 것이다.  

[첨부자료 목록]

자료 1. 극동방송국 운영계약서 사본
자료 2. "은혜의 아침" 설교
자료 3.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질의서 / 팀선교부 답변서
자료 4. 한국기독공보사 편집국장의 사과문
자료 5. 월간조선 기사(기자 장원준)
자료 6. KBS 라디오 방송 "그때 그 사건" 자료3-2. 팀선교부 답변서 팀 H.L.K.X.(극동방송국) 1974. 3. 29.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귀하
친애하는 형제들에게!

지난 3월 11일 몇 가지 사실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려달라고 보내신 편지를 잘 받았습니다. 나는 우리 사이를 관계를 명백히 하는 귀하의 질의에 답변할 수 있게 된 것을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는 귀하의 질문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답변합니다.

1.우리는 여러 해 전부터 권신찬씨를 알고 있으나 권씨의 설교를 가르치는 것이 우리 팀선교부의 신앙구조와 반대되는 사실이 결코 없습니다. 우리는 권씨와 여러 번 이야기한 결과 그의 신앙신조는 팀선교부의 신앙과 하등 다름이 없다고 믿습니다.

2.우리 방송을 통해 우리가 잘못된 것을 가르치거나 교리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귀하에게 묻고 싶습니다.

3.귀하는 이환수 목사가 우리 방송국의 전 재단이사장으로 알고 있으나 그는 이사장이 아니고 이사중의 한 분입니다. 우리는 이환수 목사가 이사직을 사임한 것은 우리가 권씨의 가르침이 옳다는 팀선교부의 신앙신조에 대해 권씨와 같다고 하는 것을 밝혔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귀하가 문의한 세 가지 사실 외에 우리가 더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방송국의 재단은 팀선교부 재단과는 분리되어 있습니다. 방송국은 새 찬송가 발행의 선교사업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신앙신조가 같은 사람과 서적발행과 같은 사업 중 이자택일을 하라고 한다면 신앙신조가 같은 사람과 일하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끝으로 우리 방송을 통해 잘못된 교리를 들을 때는 우리에게 다시 편지 주시고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윌리암 S. 윈첼 극동방송국 방송국장

  자료4. 한국기독공보사 편집국장의 사과문

극동방송국의 방송설교를 담당해온 권신찬 목사에 대한 사과 및 해명

본인은 기독공보 편집국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당시인 1974년 3월부터 약 6개월간 수십 회에 걸쳐 집중적으로 권신찬 목사(극동방송국 방송 선교부장)와 그분이 시무하고 있는 개 교회에 대하여 본의 아니게 감정적으로 과장 또는 사실과 다르게 오보하여 정신적, 사회적으로 권신찬 목사는 물론 그분의 소속 교회 회중에 대하여 명예를 훼손케 한 책임을 통감하고 지상을 통하여 사과하오며 아울러 몇 가지 해명을 하여 독자들에게 잘못 인식되어 있는 몇 가지를 바로잡습니다.

1. '극동방송 사이비성 노출' 운운의 기독공보 74년 5월 18일자 상기 제하의 기사는 '국가 중요시설로서의 전파 매체인 방송국을 1개인의 설교내용과 연결지어 기사를 작성하여 극동방송국의 청취자와 기독공보 독자를 일시 혼란케 했을 것으로 사료되며 또한 극동방송국은 본래 19년 전 대공산권 선교를 위해 설립된 초교파 선교를 위한 전파 매체이었고 지금도 그러함을 밝혀둡니다.

2. '가짜목사 시중드는 두 처녀' 제하의 기독공보 74.6.1일자 기사는 사실과 다른 잘못된 보도이었고 더욱이 동 기사내용과 권신찬 목사는 하등 관계도 없는 것을 얼핏 보기에 마치 권신찬 목사와 동 기사가 연관된 듯이 고의적으로 기사를 작성, 큰 제목과 부제를 연결시켜 기사를 작성한 것은 공정과 당위를 외면하고 감정으로 편집된 인상이 있었음을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물론 기사 내용이 말하고 있거니와 전라북도 지사지방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김영옥 목사 사택에 교우로서 주일 오후와 수요일 오후에 봉사하고 있는 한 여성의 순수한 신앙의 표현을 왜곡되게 기사화했고 더 나아가 권목사의 가르침이나 교리와도 하등 무관한 내용이었음을 해명함으로 다소나마 그분의 명예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3. 기독공보 74.6.15일자 '청소년 선도에 어둠길'이라는 제하의 기사와 소제목으로 '극동방송 탈선 여고생 꾀어 혼숙'이라는 기사는 단순히 풍문에 의하여 전해진 왜곡된 보도이었으며 사건의 내용을 조사하여 본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전에 있던 한 여고생이 삶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허무 속에서 방황하다가 자살을 결심하고 마지막으로 공주에 있는 언니를 만나려고 찾아갔습니다. 언니에게 이러한 사실을 말하자 공주 교대에 다니는 언니는 그 여고생을 한정석 목사에게로 데려갔으나 한목사의 피상적이고 이론적인 훈시에서 해답을 얻지 못한 채 자살의 결심을 더욱 굳혀 가지고 나오다가 언니의 친구 되는 오양을 만나게 되어 오양의 안내로 학생들의 모임인 성경공부 집회에 갔다가 그곳에서 인간이 사는 뜻이 무엇이며 보람이 어떠한 것인가를 성경에서 깨닫고 좋아하며 자살이 죄악이라는 것을 알고 새로운 사람이 되었는데, 다음날 그곳에 다시 모여 밤 11시까지 성경 이야기를 듣던 중 한정석 목사가 나타나 '왜 학생들이 밤늦게까지 한방에서 남녀가 모여 있느냐'고 힐문을 하였던 것이며 이 말이 확대되고 와전되어 이와 같이 기사화되었던 것입니다."

4. 권신찬 씨 목사 안수 남발 운운
마치 무면허 의사나 운전수에게 면허증을 남발하여 발급하듯 자격이 없고 기준에 도달하지 않은 비인격자에게 일개인이 임의로 목사 안수를 주었다고 하면 이는 일반사회에서는 문제가 별로 안 되는 것 같으나 교계에서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권신찬 목사는 기독공보에 보도된 바와 같이 전북산서 지방에서 목사 안수를 준 사실이 없는데도 기독공보는 3회에 걸쳐 '목사 안수 확실'이라고까지 하여 보도한 것은 사실을 충분히 조사하지 않고 잘못된 제3자의 제보를 확인하지 않은 채 오보했음을 밝히면서 해명하는 바입니다.

5. 기독공보 만화 제 1백 23회 권신찬 목사는 방송설교나 목회를 해오면서 많은 교인과 젊은 남녀의 결혼식을 집례하였음이 많은 증인을 통하여 밝혀진바 74.6.1일자 기독공보 만화가 그 내용에서 권신찬 목사는 젊은 교인에게 결혼을 거부 내지는 연기해야 한다는 식으로 가싶을 통해 오보한 것은 사실과 다르며 이렇게 허무맹랑한 교리를 전파하는 양 악평하여 간접적으로 권신찬 목사가 이단임을 인식하게 한 처사는 잘못이었음을 다시 한번 천명합니다.
이상에서와 같이 대체적으로 기록한 몇 가지가 사실무근 내지는 과장, 왜곡되게 전달돼 간접 또는 직접적으로 권신찬 목사에게 정신적 사회적 타격을 입게 한 본인의 과실의 지상을 통하여 시인하며 그간 추락된 권신찬 목사의 명예가 다소나마 회복되기를 원하면서 추후로는 이와 같이 타인을 모략하고 비방하여 국민총화를 해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며 특정인의 인권이 훼손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할 것을 재천명하는 바입니다.


1975년 1월 13일 고환규(백) - 한국기독공보사 전 편집국장

 

[연구결과 및 권고사항]

  본 위원회는 기독교복음침례회의 자료들과 근거 증거들을 조사해 본 결과 이단요소를 발견하지 못했으며, 기독교복음침례회는 대표자가 박충서 씨로 되어 있으나 목사가 아닌 평신도이며 현재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기복침은 평신도 운동으로 출발하였기 때문에 목사제도가 없으며 전도인이라는 직책으로 선교해 가고 있다. 과거 오대양 사건 연루설로 교단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에 대한 오해는 이미 교단측에서 해명한 자료로 갈음한다. 기복침은 본회가 질의한 정통교리 기준과 위배되지 않으나, 다만 세칭 '구원파'라는 대명사가 붙어 다녀 엄청난 이단인 것처럼 포장되어 있으나, 실제는 사실과 많이 다르며 교단에 목사 제도가 없다 보니 기성 교단이나 교회들과의 교제가 단절되어 있어 고립된 교단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복음 안에서 이단으로 보기 어려운 이상, 우리 한국교회는 교회내의 한 형제로 품어야 할 것이며 잘못된 부분은 잘 지도해 가야 할 것이다. 아울러 기복침 교단측도 이런 점을 깊이 인식하고 한국교회의 지도를 받으며 복음의 동역자로 새출발 하기를 권고 드린다.
추천수2
반대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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