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집중도의 차이

허윤영 |2006.10.14 06:45
조회 23 |추천 0


 

 

숨막힐듯이 까만 아스팔트

편의점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잡지들

조그마한 레코드 가게를 들어가봐도

vintage 옷가게를 가봐도

언제나 정리가 잘 되어 있는 곳이 월등히 많이 존재한다.

 

비린내나던 수산 시장과

나카노부역 근처 동네 시장에서도

정리가 잘 되어 있는 비율이 월등히 높았다.

 

일본 경찰들의 제복에서 느껴지는 카리스마와

모리 뮤지엄 안에서 관람객을 안내하던 security들의 정중함과

동네 덮밥집에서 500¥짜리 덮밥을 팔던 주방장 아저씨의 기품은

우리들 한테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이유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집중도의 차이가 아닐까?

 

오타쿠가 있으며 변태가 상대적으로 많이 존재하며

동양인의 정서로 파악하기 힘든 무언가가 많이 존재하는 것을

집중도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집중도의 개념을 생각해 보자.

집중을 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가?

무엇보다 뿌듯한 기운이 감돌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 뿌듯함을 느끼고 있는가?

또한, 땀을 많이 흘리게 된다.

땀 흘리는 것을 우리는 꺼리고 있지 않은가?

 

그곳을 동경하는 기본 입장이 전제되어 있는 상태에서

어느곳을 바라보아도 , 어느것을 바라보아도

Bias가 발생함을 부정하지는 않겠지만

분명 차이가 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밥상을 차려보아도

밥상 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차려져 나오는 것을 보고

쉽사리, 먹는다라는 행동에 집중할 수 없을 것이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도 사람의 행동임을 전제할 때,

모든 음식에 동일한 정도의 정성을 쏟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일 것이다.

단순한 행동에서부터 우리는 집중도가 흐려지고 있다.

 

너무나 많은 시선에,

우리의 시선을 빼앗기다 보니

우리것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은 더이상 존재하지도,

새로 생성되지도 않고 있다.

야심차게 준비된 문화 기획물은 언제나

일본의 어디선가 예전에 행해졌던 일이며,

세상에 새로운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엔디 워홀의 담론을 백번 양보해서 받아들여도

서울 하늘 아래에서는

뭔가 집중한 결과물들을 찾기란 너무나 어렵다.

 

오리지날리티, 아이덴티티 뭐 이런 개념은 둘째치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리의 역사는 일제 독립 후 약 70여년이 전부가 아닐까 한다.

반만년의 역사를 주장한다면

그만큼의 오리지날리티를 보여주길 바란다.

지금의 우리는 일제 치하에서 영향 받고,

한국 전쟁이후 신경 쓰고 있는 남들의 것들에

우리의 시선을 빼앗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집중력을 키워 봅시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