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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 제11회 부산 영화제를 가다 2

최용진 |2006.10.14 09:52
조회 385 |추천 0

 

 

 

10월 13일 금요일 오전 8시 50분

 

늦잠을 잤다. 첫 영화가 10시 프리머스에서 있는데…그래도 늦진 않겠다. 얼른 준비하고 숙소를 나선다.

 

 

오전 9시 40분

 


 

장산 프리머스 도착. 생각해보니 남포동 쪽 극장과 야외상영관을 제외한 다른 상영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처음이다. 첫 영화는 옌스 리엔 감독의 [성가신 남자]이다. 개인적으로 제일 기대하는 영화이다. 내가 쓰고 있는 시나리오처럼 디스토피아가 등장하기에 기대가 크다. 영화관에 입장한다. 맨 뒷 자리인데 소파처럼 푹신해서 조금 불편했다. 곧 영화가 시작이다.

 

 

[성가신 남자]

 

감독 : 옌스 리엔

 


 

한 남자가 디스토피아의 마을에서 탈출을 시도한다…쯤 되겠다. 옌스 리엔이 그리는 디스토피아는 천국이 아니라 지옥 그 자체이다. 엄밀히 내가 생각하는 디스토피아와는 다르다. 그 마을을 탈출하면 정상적인 곳이 나오겠지만, 내 시나리오에는 탈출구가 없다. 그래서 내 쪽이 더 쿨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내가 더 따뜻하다. 하지만 디스토피아를 그려내는 방식에서는 인사이트를 많이 얻은 영화이다. 충격적인 영상은 영화의 잔혹한 주제를 잘 표현하고 있다. 그렇지만 역시나 예상했던 것처럼 그 이상 감동은 없던 영화. 잘 만들어진 것임은 알겠다.

 

 

오후 12시 40분

 


 

근처에 밥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서 할 수 없이 베트남 쌀국수로 점심을 때우고 지금은 스타벅스 야외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한가로이 막간을 즐기고 있다. 다음 영화가 1시 30분 맞은 편 CGV이다. 바람이 세지만 대체적으로 좋은 날씨이다. 한가롭다…

 

 

오후 1시 30분

 

화장실에 좀 들리느라 하마터면 영화에 좀 늦을 뻔 했다. 간발의 차로 허겁지겁 입장하여 알렉스 반 바르메르담의 [웨이터]를 관람한다.

 

 

[웨이터]

 

감독 : 알렉스 반 바르메르담

 


 

오늘 연이어 파격적인 영화이다. 파격적인 것이 늘 훌륭한 성과를 내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부산에서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영화라는 점에서 만족스럽다. 소설가가 글을 쓰면 주인공의 삶이 실시간 그대로 진행된다는 독특한 소재. 주인공은 자기의 삶에 시련이 너무 많아 힘들 때마다 소설가를 찾아온다. 기발하며 엉뚱한 소재에서 오는 코미디가 돋보이지만 얼개가 더 치밀했다면 조금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남의 삶을 들여본다는 관음이 영화적이고, 그것이 소설로 진행된다는 면에서 서술적이기도 한 기묘한 영화.

 

 

오후 3시 45분

 

오늘 강행군이다. 15분 뒤 4시부터 [엄마는 벨리댄서]를 관람한다. 몇 십분 채 쉬지도 못했다. 그 동안 화장실도 다녀오고 짬을 내서 글도 쓴다. 강행군도 강행군이지만 오늘은 각국의 영화를 다 본다. 노르웨이, 네덜란드를 거쳐 이번엔 홍콩 영화이다. 조금은 따뜻하고 유쾌한 영화일 듯. 저녁엔 야외상영관에서 저명하신 켄 로치 대감의 영화를 감상한다. 영화에 푹 빠져있다…아…입장해야겠다..시간이 거의 다 된 듯 하다.

 

 

[엄마는 벨리댄서]

 

감독 : 리 퀑록

 


 

고달픈 현실을 살아가는 네 명의 여자가 벨리댄스를 통해 삶의 원동력을 회복하고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려는 영화. 극복한 영화가 아니고 극복해 나가려는 영화임이 중요하다. 벨리댄스가 현실도피가 되서 대충 해피엔딩으로 봉합하고 끝나려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 따뜻한 영화이기는 하지만 애초에 예상했던 것처럼 유쾌한 영화는 아니었다. 올 초에 봤던 [내 곁에 있어줘]와 같은 분위기였지만 테레사 첸이라는 실존 인물의 무게로 상투적 교훈을 눌러버리는 [내 곁에 있어줘]와 같은 포스는 느껴지지 않는다. 자칫 뻔한 얘기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지만 그래도 좋았던 건 지쳐가는 이 시대 ‘아줌마’에 대한 영화였던 점. 이번 영화제에서 관람하는 몇 안 되는 여성에 관련된 영화인 것이 맘에 든다.

 

 

오후 5시 45분

 

 

영화가 끝나고 한 스탭이 GV(게스트 비지트)가 마련되어 있다고 소리친다. 예정에는 없었는데 깜짝 추가된 모양이다! 이게 왠 떡이람…GV 참석은 처음이다. 감독과 여배우가 질문을 받았다. 우문현답. 한 관객이 해피엔딩이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느냐고 질문을 했다. 감독은 해피엔딩으로 봐줘서 고맙다…그러나 나는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삶의 터전은 여전히 고달프고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엔딩씬이다…라고 답변.

 

 

오후 7시 정각

 

부랴부랴 야외상영관으로 이동했다. GV때문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던 것. 오늘 마지막인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상영이 7시 30분에 있다. 배가 고프다. 마련된 야외 음식점에서 만두와 떡볶이를 시켜서 먹으며 글을 쓴다. 만두는 느끼하고 떡볶이는 딱딱하다. 게다가 비싸다. 점심 저녁 먹는 것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추울 것 같다. 담요를 챙겨왔지만 자신 없다. 영화도 2시간이 넘는 것 같던데…단단히 각오해야겠다. 7시 30분부터 식전 콘서트가 진행되고 8시쯤 영화 시작할 것이므로 아직 시간은 있다. 천천히 일어서서 하겐다즈 아이스크림도 받아 먹고 이벤트를 즐겨야겠다.

 

 

오후 7시 40분

 


아이스크림 받아오느라 약간 늦었다. 벌써 오픈 콘서트가 진행중이었다. 슬로우 준이라는 가수가 노래를 몇 곡 부르고 있었다. 제법 날씨가 춥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영화를 기다린다. 김동호 위원장이 방문한 여러 명의 유럽 감독과 제작자, 배우를 무대에서 소개한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된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감독 : 켄 로치

 


 

켄 로치가 도대체 요즘은 뭐 하나…라는 생각을 종종 했었는데…매우 좋은 영화이다. 올해 칸에서 황금 종려상을 받았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켄 로치는 노동자 계급의 애환을 다룬 감독으로 유명하다. 그런 감독이 아일랜드의 독립과 내전을 다루다니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초반을 감상할 때는 아일랜드와 영국 관계의 영화는 이미 많이 나왔는데 왜 켄 로치가 또 구태여 이런 영화를 만드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 적은 영국군만이 아니다. 아일랜드의 가난한 노동자 계급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동족도 적이다. 아일랜드의 소시민들은 괴롭다. 영국군을 겨우 몰아내니 동족이 자유군이라고 하며 그 자리를 점령한다. 그 전보다 더 슬프다. 동족끼리 살인을 하며 노동자를 압박한다. 켄 로치다운 영화이다. 장엄하고도 진지한 영화이다. 문득 우리 나라에서는 왜 이런 진중한 영화가 나오지 않는지에 대해 잠시 생각해본다. 언제부턴가 나라의 영화판에서 정치적인 주제가 사라진 것이 사실이다. 감성이 풍부하거나 장르를 잘 다루는 감독은 있을지언정, 진중하고 무게있는 주제를 정공법으로 파고 드는 감독은 없다.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될 수는 없다. 그것도 참 답답하다.

 

 

오후 11시 30분

 

오늘은 찜질방에 왔다. 간만에 물에 몸을 담그고 찜질도 하고…피로는 풀리지만 마음은 무겁다. 내일 현장 예매 때문이다. 내일은 아침 일찍 현장 예매를 좀 해야 한다. 아침 6시쯤 일어나서 준비하면 괜찮을까…사실 안 괜찮을지도 모른다. 밤을 새고 줄을 서는 사람도 많을 테니까…원하는 [악몽탐정]이나 [해로운 우정]은 끊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밤을 샐 수는 없으니까…이런 생각을 하며 잠이 든다.

 

 

새벽 4시 45분

 

여기 수면실은 왜 이렇게 추운거야…중간에 잠이 깨서 조금 따뜻한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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