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밀레의 명작 [만종]을 지극히 좋아한다.
어둠의 장막이 조용히 땅을 덮기 시작한다. 저 멀리서 예배당의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온다. 일하던 두 젊은 부부가 일손을 멈추고 조용히 고개를 숙여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초등학교 6학년, 처음 [만종]을 접하고 소름이 돋았다.
농부 부부가 바구니를 발밑에 놓고 기도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바구니가 감자씨와 밭일도구를 담은 바구니로 알고있다. 허나 사실은 그 바구니에는 씨감자가 들어있던 게 아니라 그들의 사랑하는 아기의 시체가 들어있었다. 그 시대 배고픔을 참고 씨감자를 심으며 겨울을 지내면서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아기는 배고픔을 참지못해 죽은 것이다. 죽은 아기를 위해 마지막으로 부부가 기도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만종]이다.
그렇다면 왜 그림속의 아기가 사라졌을까?
이 그림을 보게된 밀레의 친구가 큰 충격과 우려를 보이며 아기를 넣지말자고 부탁을 했다. 그래서 밀레는 고심끝에 아기 대신 감자를 넣어 출품햇다. 그 이후 이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채 그저 농촌의 평화로움을 담고있는 그림으로 유명해진 것이다.
그림을 처음 보았을때, 기분이 너무 나빳다. 불안했다.
그리고 이유모를 오한과 소름이 몸을 뒤덮었기에.
사실 가장 꺼리는 그림이었다.
주위 사람들- 특히 부모님은 이 그림은 신성한 노동후의 고요한 정적과 평화를 느낄수 있다며, 이유모를 나의 비탄과 꺼림을 꽤나 의아해 하셧다.
어린나이였기에 그림을 해석한게 아니라, 그림을 느꼇던게 아닐까.
그렇게 불안함과 초조함을 가지고, 못마땅히 바라본 [만종]이 왜 내가 지극히도 좋아마지않는 그림이라고 말했던 것일까?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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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의 노철인 소크라테스는 생의 길을 떠나기 전, 감옥에서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 사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다.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을 그저 살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면 인생은 조금도 어려울 것이 없다. 매국노가 되든, 배신자가 되든, 강도가 되는, 창부가 되든, 살인범이 되든, 인생은 살기만 하면 된다. 결코 우리는 그럴 수가 없다. 그렇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세상에 한 사람도 없을것이다.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어
떻게'라는 이 물음과 대답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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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쯤 전 읽었던 안병욱 교수의 저서중에서 언급되었던 내용이다.
처음 이 글을 읽었을때, 머리속을 울리는 종소리와, 가슴이 터질것같은 환희를 느꼇다.
만종이 그랬다.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되고- 기쁨을 느꼇다. 가슴가득 차오르는 감사를 느낄 수 있엇다. 그리고 신에게, 대지에게 바치는 감사가 아닌. 사랑에게 바치는 기도를 느낄 수 있엇다. 더욱이 내 소름의 해갈이 되어주어서, 참 정말 시원했다.
하지만 아직도 기분이 나쁜 건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