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관심사 중 하나인 라는 제목에 이끌려 읽게됐다.
이 책을 소개하기 위해 작가를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다.
책을 덮는 순간까지 여류 작가이리라는 생각은 추호도 할 수 없었을만큼 남성적인 소설이다.
그러나 소설의 작가는 '그'가 아닌 '그녀'였음에 난 새어나오는 놀라움을 막기위해 입을 가렸다.
조이스 캐롤 오츠. 정말 잔인한 상상력과 놀라운 감각을 지닌 작가일거란 판단을 내려버린다.
10년전 발표된 라는 이름의 이 작품은 미국에 실존했던 제프리 다머라는 동성연애자가 저지른 연쇄살인 사건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다머는 희생자들을 잡아다가 얼음 송곳으로 살해하고 시체를 강간하며 유기한 혐의를 받았다. 이런 소재는 참으로 충격적이고 엽기적이며 우리의 말초적인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나 또한 이러한 가학적 호기심이 발동하여 형언하기 어려운 엽기물을 끝까지 읽어버린 것같다.
소설의 매력은 영화보다 실랄하며, 그 어떤 영상보다 분명한 묘사가 가능하다.
조이스 캐롤 오츠 역시 충분히, 구역질이 날 만큼 이 잔혹한 소재를 실감나게 그린다.
그녀에게 있어 실감이란 스티븐 킹이나 댄 브라운 또는 일본의 공포물 작가들처럼
공포감과 긴장을 얼마나 짜릿하고 세세하게 전달하는가 하는 따위의 방법을 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토록 기괴하고 비정상적인 사건 뒤에는 얼마나 정상적인(혹은 정상적인 척하는)
가정과 평범한 일상생활과 사회가 놓여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 말하려던 것과 같은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이 안고있는 어둠의 내막을 가리킨다.
그러한 면에서 이것은 별로 기분이 좋은 소설은 아니다.
이런류의 소설은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 읽는 것도, 지식을 쌓기위해 읽는 것도 아니다.
그저 현실을 벗어난 픽션의 쾌감, 전율같은 인간의 어두운 본능에 이끌려 보는 것이라 여긴다.
의 주인공 '쿠엔틴'은 세상에 갑자기 출현한 돌연변이가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비정상인'도 아니다. 오히려 극히 정상적인 사람이며 운전할 때도 절대로 속도위반을 하지 않는 모범적인 시민이다. 소설에서나 현실에서나 대부분의 살인마는 평범하다 여겨왔던 사람이다.
그런 그의 밝음의 영역과 어둠의 이면은 인간이 지닌 페르소나를 극명히 전달한다.
아래 소설의 내용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목요일은 바쁜 날이다! 귀찮은 집안일들. 차를 탄 채 아침 식사를 했다. 블랙 커피에 원기 회복제 두알 삼켰다. 3번가에 있는 비디오 가게로 활기차게 차를 몰고가서 지난밤에 빌린 비디오를 돌려 주고 새로 출시된 다른 비디오를 빌렸다. 기분이 무척 좋다. 오전 10시에는 법정 옆쪽에 있는 낡은 구민 복지관 건물에서 그를 만난다. 감찰국의 그의 방문이 닫혀 있다.
나는 몇 분 동안 기다린다. 나는 괜찮다. 나는 침착하다. 지난 밤에 면도했으며 어제 아침 아니면 그저께 아침에 샤워를 했다. 그의 사무실에 올 때는 언제나 넥타이를 매고 코트를 입고 바지에 벨트를 한다. 다른 한 명도 감찰국 사무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지만 나는 너무 친한 척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그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가 나를 불러 들이고 악수를 청했다.
앉아요, 어떻게 지내요?
그래서 나는 대답을 한다.
일은 어때요?
그래서 나는 대답한다.
수업은 어때요?
그래서 나는 대답한다.
괜찮은 편이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뭐라고 쓴다.
어쨌거나 글을 쓰는 동안은 질문을 하지 않는다.
내가 성실하게 생활하고 있는지 묻고 나는 대답한다.
면담이 끝날 때면 악수를 한다.
나를 관찰해 보면 정중하고 예의바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예, 선생님. 아니오, 선생님. 안녕히 계십시오, 선생님.
...
이런식으로 주인공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아무런 감정이 없는듯, 제3자의 입장처럼 얘기한다.
그렇게 평범하게 흘러가다가도 중간중간 충격적인 주인공의 행동에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진정한 좀비는 영원히 내 것이 될 거다. 그는 어떠한 명령이나 변덕스런 태도에도 복종할 것이다. '예, 주인님' 또는 '아니오, 주인님'이라고 말할거다.
그래서 그런 일이 생길 거다. 그래서 그렇게 될 거다. 왜냐하면 진정한 좀비는 없었던 일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고 있었던 일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두 눈을 맑게 뜨고 있겠지만 그 안에서 내다보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뒤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를 관찰하고 비밀스런 생각을 하고 있는 당신과는 달리.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 판단을 내리고 있는' 당신과는 달리. 좀비는 어떠한 판단도 내리지 않을 거다. 나만의 목표를 위해 좀비를 창조해내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5년 전의 일이다. 내 머리 속에는 내 삶을 바꿔 놓겠다는 생각이 폭풍처럼 몰아치고 있었다.
좀비의 재료로 안전한 것은 이 도시 출신이 아닌 사람일 거다. 다른 사람 차를 얻어타고 여행하는 사람이나 떠돌이나 마약 중독자. 어느 누구 하나 눈꼽 만큼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사람, 절대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그런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전두엽 절제술. 감정, 흥분, 강박 관념에 의한 인식 작용 및 육체적인 행동을 줄여주는 '평면화 효과'. 나는 나의 좀비가 내 눈 앞에서 실현되는 것이 보이는 듯했다. 나의 좀비!
...
정신적 도덕성이 결여된 전형적인 사이코페스를 주인공으로 한다. 아무런 도덕성 없이 인간을 자신만에게 복종하는 좀비로 만들고자하는 상상과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살인하는 과정을 일기를 쓰듯 담담히 묘사한다. 자신의 얘기를 풀어나가는 방법은 독자를 살인마의 심리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함인듯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악마와 함께 공포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끝맺음 없이 계속 살인을 저지를 주인공 '쿠엔틴'을 뒤로한채 우리는 그에게서 빠져나와 이런 질문을 하게될 것이다.
"이 세상에는 얼마나 더 많은 쿠엔틴이 존재하고 있는가?"
문학이나 미술, 영화 등 수많은 예술이 인간의 극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현실과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란 어느 정도는 '쿠엔틴'과 같은 면모를 지니고 있다. 칼만 들지 않았을 뿐이지 아무렇지 않게 허를 찌른다. 무표정하게 무자아적으로 누군가를 공격하고 짓누르며, 일종의 쾌감마저 느낀다. 이기주의와 허무주의는 이러한 행동방식을 대변한다. 적어도 21세기는 더욱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름답고 싶어하는 인간의 희망을 오히려 동정한다. 밝게 포장해보이는 세상의 이면에 어둠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 사랑과 정이 인간의 본질인양 미적으로 승화시키는 내숭을 보이지 않는 것. 그래서 나는 어둠의 미학에 매력을 느끼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