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공정택 교육감님, 우리 학생들에게 교육 정의를 바로 세워주세요.
-동일학원 임시이사파견 촉구를 위한 길거리 교사 무기한 단식농성을 시작하며
저는 동일여중, 동일여고를 졸업하고 다시 모교의 교사로서 동일학원 울타리 안에서 모두 26년을 살아왔습니다.
동일은 돌이켜 생각할 때마다 교정의 훌쩍 큰 목련나무가 되어 제게 꽃과 향기와 맑은 잎사귀의 흔들거림을 가져다줍니다.
가장 큰 향기는 저와 함께 인생과 문학과 자연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눈 맑은 학생들에게서 풍겨나고 있습니다.
지금 비록 학교 울타리 밖으로 나앉아 길거리 교사로 살아가고 있는 처지이지만 제가 살았던 순간들이 저를 이루고 있기에
저는 여전히 학교 울타리 안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일에서의 그 긴 세월동안 기쁨보다는 아픔이 더 많았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이곳에 인연을 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곳은 서러움과 한이 서린 곳이었습니다.
서울에서도 가장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취급된 것은 ‘돈’이었습니다.
교무실 칠판에는 보충수업비, 급식비, 등록금, 각종 잡부금 납부내역이 반별로 등수가 매겨져 있고,
제 때에 내지 못한 학생들의 명단이 게시되어 있었습니다.
직원회의는 각종 잡부금 독촉이 이어졌으며, 뒤처진 반의 담임은 무능한 교사로 매도되었습니다.
담임교사들은 교실에 들어가 주머니에 100원짜리 동전만 있는 학생들 앞에서 각종 잡부금 독촉을 하였으며,
학생들은 엄한 교칙을 지킬 것과 빚 독촉만 하고 있는 담임교사를 바라보며 주눅 들기도 하고, 경멸하기도 하면서
어른들의 무능, 세상의 삭막함에 대하여 배워나갔습니다.
강제 급식을 강요하여 집에서 정성스럽게 만들어준 도시락도 금지시켰으며,
식비를 아끼기 위해 반찬을 남기는 학생들을 엄하게 처벌하였는데, 이사장의 아들이었던 동일여고 교장선생님은
반찬을 남긴 여고생의 뺨을 때리기까지 하였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정부보조금을 받아 점심을 먹는 학생들에게는 공짜로 밥을 먹으니 식당일이라도 하라고 하며
수업시간에도 식당일을 시켰습니다.
부실하고 비정상적인 밥상의 결과로 불과 2년 만에 재단에서는 4억5천만원을 몰래 남겼습니다.
각종 잡부금 징수에 혈안이 되어 있는 학교에서 교사는 잡부금 징수원 이상도 이하도 아닌 취급을 받았습니다.
종이를 아끼기 위해 시험지 글자를 8포인트로 하라고 강요한 학교,
그러면서 이사장 가족들은 자신들의 승용차 유지비를 학생들의 등록금에서 빼돌렸으며,
각종 불법 수당을 챙겨갔습니다.
가난한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주머니와 가슴이 비어가는 동안 부자인 재단 관계자의 커다란 가방은 날로 배불러갔습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이러한 반교육적인 상황 속에서 교사로서 학생들 앞에 떳떳이 서서
그들에게 행복한 웃음을 주기 위한 활동은 우리 교사들에게는 필연적인 과정이었습니다.
처음 비리 시정을 위한 활동을 할 때만 해도 저를 비롯한 동일의 선생님들은 희망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이사장의 잘못을 밝히고 재단은 그에 따른 처벌을 받고 다시는 이러한 일이 생기지 않게만 한다면
학교는 신나는 교육의 장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순진한 발상이었습니다.
동일학원의 경우 중고등학교의 비리로서는 엄청난 규모인 16억여원 정도의 보전,환수조치가 내려졌지만,
재단이사장과 비리 관계자들은 여전히 건재하며 비리 시정을 위해 노력했던 교사들은
담임배제, 직위해제, 각종 협박문서, 파면 등을 당하고 있으며
심지어 복직 판정을 받은 두 분 선생님들에 대한 복직도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학교에서 이러한 반교육적인 일이 저질러 질 수 있었던 배경은 욕심 많은 재단 이사장 한 사람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사장의 배후에는 우리 사회의 총체적 미숙함과 가진 자들이 만든 각종 법과 제도의 벽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사학재단의 비리를 양산해주는 사립학교법, 사립학교는 공공기관이 아니어서 보호해줄 수 없다고 적혀 있는 부패방지법,
재단은 각종 정치활동과 후원을 통해 자신들을 위한 법 개정을 손쉽게 하는데 비해 교사들에게는 이러한 활동이 금지된 교육법,
교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있는 소청심사위원회 위원에 교육관료, 재단 경영자, 교장 출신이 포진하고 있는 소청심사위원회,
각종 비리를 저지른 재단에 임시이사를 파견하는 것이 오로지 교육감 재량에 달려 있다는 것 등
어느 것 하나 인간답게살아보고자 하는 교사들에게 힘이 되어 주는 법과 제도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러한 벽을 만나 잠시 절망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가기로 한 길을 포기한 적은 없었습니다.
사립학교법의 벽을 만나면 ‘여기에 무너뜨려야할 법이 있다’고 외치며
벽을 넘거나 돌아서서 갔으며, 또 다른 장벽이 나타나면 이 또한 세상에 알리며 걸어온 길이 어느새 6년째에 접어들었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동일학원 임시이사파견’이라는 벽을 넘기 위한 또 다른 길 앞에 서 있습니다.
재단의 각종 횡령 및 전용, 계고장 불이행, 내부고발교사 보복 징계 및 교육부의 복직 명령 거부 등
동일학원에 임시이사를 파견할 요건은 필요충분조건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임시이사파견이 오로지 교육감의 재량에 달려 있기에
이 벽 앞에서 우리는 이를 넘기 위해 노끈을 준비하고 심호흡 가다듬고 있습니다.
동일학원에 임시이사 파견은 학교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일입니다.
‘돈’의 자리에 ‘교육’이 들어설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새 생명의 탄생은 산통을 필요로 합니다. 살기 위해 밥까지 굶어야 한다면 굶어주겠습니다.
임시이사파견을 위한 산통으로 목숨이 필요하다고 교육감님이 요구하면 내어놓겠습니다.
농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때죽음에도 변하지 않는 세상이지만
벽이 높다고 돌아설 수는 없습니다.
우리 학생들이 어른이 되어 벽 앞에서 돌아서는 못난이가 아니라,
벽 아래에서 싹을 틔워 넝쿨을 만들어서라도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2006. 10. 17 길거리 교사 조연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