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 땜에 고생하는 분 계세요?
저도 사랑니 뽑지 않고 그냥 놔두고 있는데 사랑니는 정말 이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입니다. 저의 경우 스무살 무렵에 어금니 안쪽과 턱이 아프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보니 사랑니가 솟아나느라고 그랬더군요. 치과에 가니 그냥 뽑는게 좋다고 하더군요. 그 땐 이미 자연의학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을 때였는데, 어디에 부딪혀서 솟아난 것도 아니어서 그냥 지켜보기로 했죠, 그러다보니 간헐적으로 아팠다 말다 하면서 이가 조금씩 더 나더군요. 수시로 아픔을 주는 그 이가 많은 것을 배우게 하더군요. 도대체 엇다 쓸려고 이렇게 나는 것인가.. 그리고 너의 이름은 왜 사랑니인가..? 첨에 그 이름을 갖다붙인 이는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불렀을까? 그리고 뽑지 않은 것과 뽑은 것과 어떤 차이가 나는걸까?
나중에 가만히 느껴지는 것은 내가 그간 잘못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하나 있던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치아는 음식물을 부수는 작용을 하는 방앗간이라고만 여기고 있던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음식을 잘게 부수어 준다고만 생각한 것은 아주 단편적인 모습만 본 것이더군요.
우리 몸통을 돌아가고 있는 중요한 경락이 임맥과 독맥이라는 것인데 그 경락이 서로 만나는 곳이 윗입과 아랫입이고, 그 결정체가 윗니와 아랫니라는 것이죠.
즉 다시 말해 윗니 아랫니의 부딪힘은 우리 몸통을 순환되게 하는 아주 중요한 펌프와 같은 곳이자 스윗치와 같은 곳이더군요. 위아래 이가 하나도 부딪히지 않게 해서 죽을 먹거나 영양수액을 주사맞거나 하면 그냥 살게 할런지는 몰라도 활기차게 살기는 어려워지리라 생각합니다. 활기가 없을 때 듣는 말이 '너 죽먹었냐' 하기도 하는데 실제 이를 부지런히 쓰지 않으면 분명히 활기가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더군요. 누구나 윗니 아랫니가 힘있게 서로 다물어대는 그런 식사를 하는 것은 전신의 기운을 잘 돌게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작하는 노력은 우리 몸의 음과 양의 조화를 이루어주고 늘 균형을 이루게 하는 아주 중요한 추와 같은 장치라 생각이 들고 이빨과 이빨이 부딪히는 모습은 우리 정신의 모습을 드러내 주는 형태 있는 정신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옛 고서에 보면 선인의 건강법 중에 윗니 아랫니 부딪히기가 있는데 매일 아침마다 자기 나이숫자만큼 이빨 부딪히기를 하라는 것이 있습니다. 선인들은 벽곡식을 거쳐 물이나 공기 등의 차원높은 음식을 먹고 살아가는데 그래도 반드시 입운동을 한 것을 보면 역시 수양을 하는데 입운동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여깁니다. 저도 수시로 딱딱거리며 잇빨 부딪히기를 하는데 정신이 희미할 때 아주 명료한 정신을 갖게 하는 것을 느끼게 되더군요. 추울 때 이가 부딪히고 그럴 때가 있는데 그것은 몸이 추위에 떠는 것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추울 때 일수록 정신을 가다듬고 이겨나가라는 내면의 가르침이라 볼 수도 있다고 여깁니다.
수 년전 음양오행에 관한 탁월한 식견을 갖고 많은 제자를 둔 분이 있었는데 이분이 자기 잇빨을 몽땅 뽑아내고 모두 자석으로 교체했다고 합니다. 이유인즉 이빨과 우리 온 몸의 경락은 모두 연결되어 있고, 그 이빨과 턱이 연결된 통로를 통해서 기운의 흐름을 촉진하면 무병장수할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죠. 그의 이론은 하나는 맞는데 또 하나는 우를 범한 탓에 그는 그 일이 있고 나서 곧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빨은 온 몸의 경락과 연결되어 있고, 그 경락을 강하게 흐르는 스윗치가 되기도 하지만 이를 뽑아내고 자석을 붙이는 것은 결코 '자연'스럽지 못한 어거지 행위일 뿐 아니라 정말 잘못 판단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무병장수는 자연스러움 속에서 절로 나타나는 것외엔 그 모두 허망한 것이 아닐 수 없을텐데 어쩌다 그런 유혹에 빠졌는지 지금도 안타깝게 여겨집니다.
우리 이빨은 우리 몸에 들어오는 모든 음식물을 관리, 감독, 화합되게 하는 첫 번째 임무를 부여받고 평생동안 노력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우리 몸(모음)은 말 그대로 뭔가를 모으는 역할을 하는 일로 평생을 보내다시피합니다. 그 일의 첫 번째 임무를 수행하는 곳이 입이다 보니 이빨이란 그 입의 대들보이자 입이 있게 하는 근원적 이유를 갖고있기도 합니다. 그러니 내 온몸이 그 입에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고 이빨 하나 하나엔 나의 생명의 은혜로 가득하기도 합니다.
이빨은 매우 단단한데 우리의 부드러운 세포가 그렇게 변한 것이어서, 그 속엔 우리의 성정 또한 담겨 있지 않을 수 없지요. 우리의 세포는 우리의 성정을 다듬기 위해 우리가 창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가 이빨이 나기 시작할 때 사리분별이 시작되며 완전히 다 났을 때 자신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으며 뒤늦게 나는 사랑니를 통해 모든 존재와 하나되고자 하는 갈망과 실천력을 가지게 되지요.
또 씹는 일도 하지 않고 아픔만 주는 사랑니의 존재가 말하는 것은 반드시 입에 넣고 씹어야만 하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아줄 수 있음을, 또 아픔을 사랑할 때 진정한 사랑이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니의 존재는 바로 차원 높은 성숙한 사랑의 정신을 갖게 하는데 있다고 여겨집니다. 물론 사랑니를 뽑는다해서 그런 정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정신은 기운으로 응집되고 그것은 모습으로 드러나는 법이며 또 그 드러난 것이 바깥세상과 부딪힘을 통해 조화로움을 찾아가게 마련이지요. 그래서 우리 정신은 항상 다듬어지고 다시금 성숙되고 변화되어 가는 것이니 사랑니는 스승님의 가르침과 같다고도 여겨집니다.
그러니 사랑니를 빼거나 없애는 일은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겠죠. 사랑니는 물질적 부딪힘을 떠나서 깊은 곳에 자리잡으며 우리의 정신 깊은 곳에 싹트고 있는 영혼의 성숙을 이끌면서 우리를 더욱 더 깊고 높고 넓은 세계로 안내하는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으니 스승님을 모시듯 잘 모셔야 겠죠. 그리고 사랑니가 상하지 않도록 "이를 더럽게하는 음식을 먹지말며 이를 깨끗하게 하는 음식을 먹고", 무엇보다 "사랑니의 정신을 바로 세우는 그런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우며 사랑니라는 스승님을 모신 제자된 도리겠지요.
사랑니를 그냥 두면 턱선이 변해서 좋지 않다고 하는데 그것은 사랑니를 통해서 느끼게 되는 아픔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한데서 오는 이상일 뿐, 그 아픔을 가만히 지켜볼 수만 있다면 새로운 경혈이 열려서 턱선이 더 좋아질 뿐 아니라 기운의 흐름도 뇌를 향해 더욱 많이 흐르게 되어 정신세계를 확장시켜나가는데 한층 쉬워지게 되리라 여깁니다. 아픔을 참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랑할 수 있는 마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어떤 아픔이 오더라도 긴장하지 말며 편안히 고요속에 있을 수 있는 연습을 하는 것이 사랑니의 첫번째 가르침이 아닐까 여깁니다. 사랑니가 아프면 턱을 괴는 모습을 잘 하게도 되는데 그것은 행동에 앞서 생각을 더 깊이하고 신중하라는 그런 메세지도 담고 있다고 보아집니다. 사랑니가 나기시작할 땐 턱주변을 잘 맛사지 해주고, 사랑니가 잘 날 수 있도록 마음으로 염원을 보내며 물질적 세상으로 확장해나가는 것보다 내면적 세계를 돌아보는 시간을 많이가지는 일이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참고로 앞니는 따스한 사랑을 나누게 하는 기운을 가지며 인체의 가장 중심된 기운이 잘 순환하게 하고, 송곳니는 도전력과 추진력을 가지게 하며 소화력을 촉진하며, 어금니는 끈기와 의지력을 증가시키며 흡수력을 좋게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나눌 때 앞니에 힘을 주는 대신 부드러움과 미소를 실어서 나누며, 결단력은 송곳니 끝으로 발산되고 송곳니에 기운을 모을 때 도전력과 순발력이 생기며 어떤 일에 집념과 끈기를 가질 때 어금니에 힘이 들어가는 법이지요. '이'는 참으로 소중하며, 그 이는 바로 나의 모습이고 내가 가야할 길을 보여주는 거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이빨이 뻐덩니여서 앞니가 좀 약한데 그것은 사랑이 지나친 모습을 보여줌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나침은 부족한 것과 다름이 없는데 그렇다보니 삶이 헤프기 마련입니다. 사실 사랑이라는 표현도 맞지 않습니다. 그저 좋아한다거나 남을 생각한다는고 표현하는 게 맞겠지요. 어쨌든 저는 제 자신의 이빨 모양을 보면서 제 속에 담겨있는 무의식적인 마음도 헤아리며 많은 방향제시를 받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안좋을 수 있는 분도 있으시겠지만 가끔가다가 이빨이 아주 옥니(저와 반대)인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베품이 부족하며 사랑을 받는 일에 무척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부족하다거나 헤프다거나 하는 것이 나쁘다 좋다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은 내면의 사랑을 완성시키기 위한 겉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니 조금도 슬퍼하거나 불편해할 필요는 없지요. 사실 이빨이 보여주는 사랑의 모습은 언제나 물질적, 인간적 사랑이고 내면에서 원하는 사랑은 그 모두를 초월한 하늘같은 사랑을 원하니 이러나 저러나 이 몸은 그저 도구일 뿐 다를 건 없겠지요.
저는 또 어릴 때 설탕든 것을 많이 먹기도 했고, 또 양치도 잘 하지 않아서 그런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의지가 빈약하고 끈기가 약한 탓에 어금니가 빨리 상하고 충치가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몸은 언제나 자기 거울이니까요. 게다가 도전력이나 추진력이 빈약하여 송곳니가 잘 부러지고 송곳니까지 충치가 생기고 그러더군요. 요새 아이들은 정말 의지가 약하여 이가 형편없이 약하고 또 거기에다 정신을 더 빈약하게 하는 달콤한 음식을 즐겨 먹으니 이가 더 나빠지고 치과만 자꾸 번성을 하는 것 같아서 참 안타깝습니다.
어금니가 좋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강한 끈기와 집념을 엿볼 수 있고, 또 초원의 동물들은 모두 어금니가 잘 발달되어 있는데 이들은 어금니와 앞니가 발달되어 있어서 도전력만 부족할뿐 사랑과 끈기 하나는 참 끝내줍니다. 그러나 사자와 같은 육식동물들은 온통 송곳니 투성이니 오직 도전력과 순발력만 가득합니다. 일설에 의하면 호랑이 이빨을 다 뽑아버렸더니 아주 양처럼 순해졌다는 말이 있더군요. 이빨 빠진 호랑이에 발톱까지 빠지면 그 정신이 설자리가 없어졌다고 봐야 할려나요.
심기혈정의 원칙이라 해서 그 마음이 먼저 있음에 기운이 흘러 피를 돌게하고 형태를 이루게 되니 이를 뽑는다고 정신이 달라지기는 어렵겠지요. 다만 드러낼 곳이 없어져서 좀 자중할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끈기와 인내심을 강하게 가지며 그것이 습관화되면 빠진 어금니가 다시 나게 될 것이고, 모험정신과 도전정신이 강인할 때 송곳니가 분명해지며 그것이 자신의 내부로 향한 정신이면 잇속에 숨어서 잘 보이지 않는 송곳니가 될 것이고, 바깥세상으로 향한 정신이면 바깥에서 잘 보이겠죠. 또 인간관계에 있어 원만함을 터득해 나가면 뻐덩니나 옥니도 자꾸 바로잡아져 나가겠지요.
제가 아는 분 중에 해월선사라는 분이 있는데 이분은 연세가 일흔이 넘어서 빠진 어금니가 모두 새로난 분입니다. 오랫동안 도를 닦아온 분인데 그 분 말씀인즉 도를 닦고 양생을 잘 하다보니 이도 새로나고 머리도 다시 검어지는구나 하십니다. 제가 보기에는 오랜 세월동안 한우물을 파는 집념의 정신이 어금니로 발현되어 어금니가 새로 났고, 그 검은 머리카락은 세상에 대한 겸손함의 회복으로 다시 검어진 것이라 생각되어지더군요. 우리 몸은 언제나 마음의 작용에 따라 음식물을 활용하여 만들어내니까요.
우리가 먹는 음식 중에 어떤 것은 이를 청소해주고 어떤 것은 찌끼가 쌓이게 해줍니다. 대부분의 야채나 과일은 언제나 이를 청소해주지만 대부분의 인스탄트 식품, 백미, 백밀, 빵, 과자 등의 가공식품은 언제나 이를 더럽게 합니다. 저도 오랫동안 그런 추한 음식을 많이 먹고, 또 정신까지 연약하여 끈기와 현실에 안주하는 약한 마음, 쓰일 데 없는 헤픈 사랑의 마음을 갖고 살다보니 이가 많이 상했습니다. 지금은 이 모든 것을 고치기 위해 무척 노력하고 있는 중이어서 그런지 수년전부터 이빨 때문에 고생하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 드문 드문나 있는 이빨과 뻐덩니, 충치가 말하는 보디랭귀지를 듣게 되는 것은 제 끈을 조여매라는 내면의 소리라 생각하고 오늘도 운동화끈을 조여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