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간밤의 사건사고 소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 혹은 부상을 당하는 게 비일비재다.
교통사고, 강도, 강간, 절도, 폭행....
그러한 사실이 나에게 놀라움을 제공할리 만무하며
아침 식사시 무료한 시간을 달래주는 가쉽거리에
불과할 뿐이다.
쓰나미로 아시아인 20만이 죽어갈 때
난 결코 20만번 슬퍼하지 않았다.
유럽인이나 북미인들이 아시아 재난을 지켜보고
안타까워 할 뿐 실제적인 슬픔이나 비탄을 느낄리는
없고 느끼는 것이 더 오버스럽다.
내가 아는 후배가 여자에게 실연당해 울고 있거나
내 친구의 고양이가 죽었다고 하여도
측은함과 동시에 동정론이 커질 진 몰라도
직접적인 슬픔을 나는 감히 가늠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우러나오며
자신이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그 슬픔의 깊이를
논할 자격은 없다 -
에스키모인에게 코끼리를 백날 설명하는 것 보다
한번 보여주는 것이 낫다.
내가 어제 이별했다면 나는 하늘이 노랗게 보일 것이며,
내 고양이가 어제 죽었다면 하루종일 식음을 전폐하고
비통에 잠겨있을 것이다.
그건 단지 "나의 일"이라는 범위에 국한된다.
세상엔 60억의 인구가 살고 있고
그 60억중에 몇만명 죽는다 해도 표시 하나 나진 않는다.
개개인의 힘은 미약하며 그 가치는 실로 하찮은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그 개개인마다 모두 사연은 있고,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다.
부모의 아들, 누나의 동생, 혹자의 친구, 혹자의 아는 오빠,
혹자의 아는 동생, 선배의 후배, 후배의 선배,
그녀의 그, 학교앞 술집 사장님의 고객, 싸이월드의 우수고객,
클럽의 클럽짱, 어느 클럽의 회원, 혹자의 군대선임, 혹자의 군대후임, 직장내에서의 동료, 대한민국의 국민, 충북의 도민, 청주시의 시민, C대학의 졸업생....
단 한사람에 불과한 그 하찮은 존재의 관계는
인간의 세포조직보다 더 복잡한 구조로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그물망처럼 형성한다.
물방울이 모여 폭포수를 이루며
술한잔이 모여 취객을 만든다.
당신들이 무심코 방문한 홈피 Hit 1이 모여
천문학적인 today를 형성하듯이;;
60억중 나하나 쯤 없어도 된다는 옹졸한 생각 이전에
60억분의 1이라는 확률 위에서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걸
자랑스럽게 여겨보자 -
타인은 어떨지 몰라도
당신 자신에겐 자신만큼 소중한 존재는 없더라 -
(+) 자살을 하고 싶다면 혼자서 해라 -
당신의 자살로 인해서 슬퍼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때,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고, 당신과의 관계가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당신의 자살로 인해서 타인에게 슬픔을
안길 수 있다면...
당신은 살아가기에 충분한 이유가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