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게는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나의 '연애전선'에 심각한 균열이 생겼다.
그녀가 나를 부끄럽게 여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좀 충격적이었다. 적응이 안되더라. 난 그녀와 다니면 어디를 가더라도 그녀에게 '자랑'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어디서 그런 믿음이 생겼는지,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내 머리 속을 언제 부턴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자랑 이라고 믿었던 내가 그녀에게 부끄러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나의 황당한 착각이, 내가 그렇게 생각한 것도 모두 '그녀'입에서 나온 얘기였다. '누가 너보고 괜찮다고 하더라' '사람들이 너 보고 멋지다고 하더라' 내가 직접들을 얘기 없이 모두 그녀의 입으로 전해 들은 얘기였다. 어쩌면(아니 분명히) 난 속고, 착각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녀 덕분에 기분좋게 착각하고 있었(다)는지도 모르겠다.
여자 친구도 '남'이라는 사실, 결혼하기 전에는 '남'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가족 보다 가까운 사이라고 믿었지만, 사실은 남인 것이다. 가족에게 못 할 얘기를 여자친구에게 얘기한다고 해서 여자친구가 '가족'이상이 될 수는 없는 것이라는 사실. 결혼이라는 사회적, 물리적, 법적으로 얽혀있기 전까지는, 결혼을 통해서 '가족'이 되기 전까지 말이다.
그녀가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해 준다고 생각했다. 가족 보다 더 나를 이해 해준다고 믿었지만, 냉정히 그건 아니더라. 그리고 실제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피한방울 섞이지 않았고, 같이 살지도 않았으며, 가족들과 함깨한 시간에 비하면 미비할 정도로 짧은 시간을 함께 했을 뿐이지 않은가.
내게 싫은 소리를 할 수도 있다. 내가 부끄러울 수도 있다. 당연한 것을 잊고 있었다. 아직 '남'이기 떄문이다. 남이기 때문에 또한 가족보다 조심해야 되고, 잘 보여야 한다.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티비 드라마에서는 남녀의 연애관계가 가히 종교적으로 까지 묘사되곤 한다. 티비 드라마는 그 속성상 '동화'와 같은 면이 있기 때문에 충족되지 못한 현실을 장밋빛 이야기로, 그것도 이왕 거짓말을 할 바에는 확실하게 해버리는 경향이 있어서 실제 연애와는 지구와 달만큼의 큰 거리감과 괴리감이 있다.
여자 친구도 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서로를 힘들게 하지 않는 길일 것이다. 우린 서로 관계를 맺고 있고, 생득적으로 얻어진 관계가 아닌 후천적으로, 그리고 선택적으로 얻은 관계이다. 관리가 필요한 관계이며, 서로에게 '베네피트'가 존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