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904
요시모토 바나나 - 불륜과 남미
내가 늘 두려워한 것은 사람의 마음의 움직임이지 운명이니 자연의 위협이니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인생이 따분하고 시시해서가 아니라,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내내 그랬다. 할머니와 엄마 사이의 험악한 분위기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지혜를 짜다 보니 그렇게 되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내게 하루란 늘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 커다란 고무공 같은 것이었고, 그 안에서 어쩌다 가끔 무언가를 바라볼 때, 아무런 맥락도 없이 불쑥 꿀처럼 달콤하고 풍요로운 순간이 찾아오곤 했다.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황홀한 느낌...... 그 아름다움이 느껴지면 나는 넋을 잃고 온몸으로 언제까지나 그것을 만끽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예컨데 오늘 오후, 조용한 박물관 복도에서 한없이 울려 퍼지는 내 구두 굽 소리, 항아리 속에 서로 몸을 기대고 있는 두 구의 갓난아기 미라를 봤을 때, 그 조그만 손의 뼈와 조그만 두개골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박물관 전체가 소리 없이 숨을 쉬는 듯한 착각이 들었을 때. 나는 세계의 일부였고, 결코 분리돼 있지 않았다.
내게 산다는 것은 그런 순간을 되풀이하는 것이지 이어지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어디에서 끊어지든 나는 수긍하지 않을까, 하고 여겼다.
내가 먼저, 가령 오늘 죽었다면 그는 둘이서 살며 정든 그 방에서 계속 살아가리라. 그는 나의 기척이 구석구석 스며 있는 그 거실에서, 매일 아침 커피를 끓이리라. 둘의 몫이 아니라 한 사람의 몫. 그 커다란 손으로 숟가락을 들고, 남편은 늘 냉장고에서 꺼낸 병에서 커피 가루를 덜어 필터에 담는다. 그 모습을 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 상상했다. 내가 맛있다고 해서, 남편이 항상 커피를 끓여준다. 하지만 내가 없으면 칭찬해 주는 이 하나 없는데도, 그 방에서 그 빛 속에서 음악을 쾅쾅 틀어놓고 말없이 맛있는 커피를 끓이리라.
그 광경에, 가슴이 메었다.
그리고 올해 오늘 이 밤, 어렸을 적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그런 일로 가슴이 멜 수 있는, 이런 순간이 내 인생에 찾아왔다는 것이 그저 한없이 기뻤다.
(...)나는 낮 시간을 매일 어슬렁거리며 지냈다. 자유롭고 즐겁고, 내내 이렇게 지내면 좋겠는데, 하고 생각했다. 특히 그녀의 집이 있는 레클레타 지구는 녹음이 울창해서 그냥 걸어만 다녀도 기분이 좋았다. 나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마냥 걸었다. 밤에는 포도주를 조금 마시고 침대에 쓰러져 잤다.
이래도 괜찮아, 지금은 이것으로 충분해. 낯선 도시에서 낯선 소리를 들으면서, 타인의 집의 딱딱한 소파베드에서 나는 매일 밤 생각했다. 시간을 버는 거야, 그것밖에 할 수 없으니까. 야생 동물이 열이 나는 몸을 치유하기 위해 어둠 속에서 꼼짝하지 않고 상처를 핥으며 기다리는 것처럼, 정신이 서서히 회복되어 제대로 숨을 쉬고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이렇게 지내는 게 가장 좋아. 그렇게 생각했다.
슬픔이란 결코 치유되지 않는다. 단지 엷어지는 듯한 인상을 주어 그것으로 위로 삼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