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에 심방을 다녀왔습니다.
이태 전 연로한 몸을 의귀할 데를 찾아 위탁되어진 권사님을 뵙기 위해서이지요.
어르신들의 하루는 날마다 달라서 자주 들르지 못하기에 갈 때마다 적이 긴장을 지니고 가게 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얼굴을 마주 대했는데 알아보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염려 때문에 그렇습니다.
1층에 계셨는데 이틀 전에 F층으로 옮기셨답니다.
(노인 병원에서는 4층을 F층이라 하고 호실은 510호, 511호~ 이렇게 부른다네요)
512 호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창가에 앉으신 권사님이 단번에 나를 알아보시고 함박웃음을 지으시며 "아이고 목사님 오셨네"하시면서 반갑게 맞이해 주십니다.
건강해 보이셔서 얼마나 감사하던지......
8학년 7반이신 권사님을 꼭 안아 드렸는데,
이젠 거의 뼈만 남았다 할 정도로 여윈 몸이어서 몸에 닿는 느낌이 마음까지 전해져 아파졌습니다.
같은 방에 계신 할머니들께서 누군가 궁금해 연신 물어보시더군요.
아들이여? 손자여?
우리 목사님이고 사모님이셔. 목사님 오셨네.
누군 좋겠구만. 참 좋겠네.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거드시는 통에 아예 방을 한바퀴 돌며 한분씩 인사를 드렸답니다.
여덟 분이 한 방에 계시는데 손을 잡으면 쉽게 놓지 않으시고 계속 이런 질문 저런 질문을 하시더군요.
두루 선 인사를 하고 재차 안부를 묻고 몸을 살피는데,
침대 위 벽에 큰 글씨로 써 붙여 놓은 종이가 눈에 들어옵니다.
"○○○할머니 음식을 잘 삼키지 못함. 식사 때는 꼭 보조해 주세요.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보조'란 말에 쳐진 빨간색 동그라미가 눈에 박힙니다.
식사하는 게 힘드신 가 여쭈었더니 목구멍으로 뭣이 잘 안내려 간다고 하십니다.
입이 자주 마르고, 긴 말씀을 이어가기 여의치 않아 보였습니다.
물병을 잡고 입으로 가져가는 손이 지난 번 보다 더 많이 떨립니다.
마음이 아파옵니다.
다른 사람들을 볼 때, 틀니를 빼고 넣고 하는 모습이 보기 싫어 당신은 하지 않았는데 치아가 다 빠져서 요즘은 통 음식을 씹을 수가 없답니다.
해서 깨죽을 쑤어 주는데도 목에서 잘 받아 주질 않는다고 합니다.
이런 저런 안부와 말씀을 한참 나누는데 주변 할머니들께서 목사님 바쁘시니까 기도하고 가시라 하라고 채근하더군요.
권사님을 뵈면,
저는 늘 권사님께 먼저 기도를 하시도록 합니다.
모질고 험한 세월을 살아 오시면서도 기도하는 힘으로 그 세월을 이겨냈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기도 꾼이셨기에 그 기도가 그리울 때가 많거든요.
권사님의 기도는 제가 외울 만큼 됩니다.
교회를 위해서, 목사인 저와 저희 가정을 위해서, 장로님들과 교우들 하나씩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를 하셨는데......
오늘 권사님의 기도는 여느 때와는 달랐습니다.
불렀던 이름을 또 부르고, 했던 기도를 또 하면서 계속 같은 기도 자리에서 맴돌고 계십니다.
저와 저희 집을 위해서는 세 번째 기도를 하셨습니다.
입이 마르면 물을 입에 넣고는 한참을 굴린 다음 삼키고 또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하고......
벌써 시간이 제법 지났던 가 봅니다.
건너 편 침대에 교회를 다니신다며 반갑게 인사를 나눴던 할머니 한 분이 버럭 소리를 합니다.
아, 기도 좀 짧게 하고 끝내요.
잠시 머뭇하시는 가 했는데 갑자기 "점심 식사는 하고 오셨다 했지? 아이고 식사를 한번 대접해야 할 텐데"하시는 겁니다.
오잉, 이건 기도가 아닌데... 하며 눈을 떴더니 권사님은 제 집사람의 손을 잡고 흔들며 말을 건네고 있었습니다.
기도를 하시다가 옆에서 소리를 치니까 깜빡 잊어버리셨던 것입니다.
제 아내가 웃으면서 "권사님 기도하시던 것 마저 끝내고 말씀하세요."했더니,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내가 기도하던 중이었지" 하시면서 서둘러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하고 긴 긴 기도가 끝났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 주변엔 다른 방에 계시면서 믿음을 가진 여러 분들이 모여와 있었습니다.
권사님을 이어 제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심령부흥회가 따로 있을까요?
우리 권사님을 위해 그리고 함께 살고계신 할머니들을 위해 뜨겁게 기도를 하였습니다.
상한 마음을 치유하시고,
아픈 몸과 팔과 다리를 하나님께서 만지시고 치유해 주실 것을 위해서,
그리고 이곳에서 서로 섬기며 의지하며 지내시도록 남은 여년을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아가게 해주시기를 기도 하였습니다.
기도하는 매듭마다 아멘으로 화답하는 할머니들과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로하실 뿐 아니라 오히려 나를 만지시고 위로하시며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였답니다.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섭섭함을 남겨 두고 방을 나왔습니다.
원목 되시는 강목사님을 만나 잠간 얘기를 나눴습니다.
우리 서로 받은 기쁨,
어르신들의 순수한 열정과 믿음 그것을 통해 늘 느끼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고백하였지요.
권사님의 기도는 여느 때와 다르고,
단순하고 반복적이고 더 길어졌지만,
까짓것......
기도의 끝마무리 말을 하지 않는다 한들 어떻습니까?
그렇게 기도하다가 하나님 앞에서면 되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내가 기도하던 중이었네.
기도 가운데 드려진 이 기막힌 추임새를 하나님께서는 너무 기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흐르는 세월 앞에 어찌해 볼 수 없는 우리들이지만,
하나님께서 다음 만남을 허락하신다면 권사님의 기도와 함께 찬송하다가 예배하다가 웃다가 울다가 그렇게 또 새로운 추임새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기를 새벽에 제단 앞에서 기도를 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