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쾌하고 발랄한 문장을 쓰는, 하지만 여성을 향한 뼈 있는 쓴소리를 쏟아내는데 특기를 지닌 작가가 이번에는 삼십대 초반 결혼 적령기의 마지노 선에 다다른 여성들의 일상을 (연애와 사랑으로 얼룩진) 전투처럼 다루고 있다. 영화《처녀들의 저녁식사》를 색다른 방식의 소설로 풀어놓는 식, 혹은 한국판으로 버전업된《브리짓 존스의 일기》라고나 할까...
주인공인 서른한 살 오은수에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헤어진 지 반년이 지난 남자 친구의 결혼식이 있는 날인 것... 결혼 같은 걸 왜 하느냐고 묻던 고릴라 같은 남친이 이렇게 얼렁뚱땅 장가를 가버리다니...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둘도 없는 친구이며 미혼의 동지라고 여겼던 재인은 하필이면 옛날 애인의 결혼식이 있는 바로 그날, 오은수에게 자신의 임박한 결혼 소식을 알린다. 이럴 수가...
“일부일처제 사회의 위대한 규칙 한 가지.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결혼하는 건 아니지만, 결혼하는 사람들은 모두 사랑해야 한다.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사랑할 수도 있고, 그 사람이 가진 무엇인가를 사랑할 수도 있으며, 그 사람의 무엇을 사랑하는지 모르면서 사랑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맞선에서 만난 비뇨기과 의사를 대관절 ‘왜’ 사랑하느냐는, 재인을 향한 유희의 질문은 애초부터 성립하기 어려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남자를 왜 사랑하는 것이냐고 묻는 친구 유희, 그런 물음에 ‘못 들을 말’을 들은 것처럼 반응하는 재인, 그리고 청천벽력 같은 하루를 보낸 나로 이루어진 이 소설의 삼각 편대는 어찌 보면 무척 평균적인 대한민국의 삼십대 초반 미혼 여성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년을 넘어서면서 경력은 쌓였지만 육체는 상대적으로 쇠락해버린 캐리어 우먼인 나, 머리도 좋고 잘 나가는 직장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뮤지컬 배우의 꿈을 이루겠다며 사표를 던진 유희, 그리고 오매불망 결혼을 통해 결혼 이후 생의 안전을 꾀하는데 올인을 한 재인...
일과 꿈과 결혼의 삼각편대이기도 한 이들에게 또 한 가지 공통적으로 통용되는 언어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사랑 혹은 연애라는 이름의 언어... 옛 애인의 결혼식날 만난 새파랗게 젊은 연하남 윤태오와 어영부영 동거 관계로까지 들어가게 되는 나도 그렇고, 이혼남이 된 옛 남자와 다시 만나며 그의 아이와 경쟁해야 하는 유희도 그렇고, 결혼에 올인 하였으나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온 거짓 사랑에 뒤통수를 맞아야 하는 재인도 그렇고...
“쇼핑과 연애는 경이로울 만큼 흡사하다.... 한 개인의 파워를 입증하는 장(場)일뿐더러, 그 안에서 자신과 비슷한 취향을 가진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정서적 안도감을 느낀다. 여유로운 시간과 젊음이 있을 때는 경제력이 받쳐주지 않고, 경제력이 생겼을 때는 여유로운 시간과 젊음을 돌이킬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재화의 양이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쇼핑도 연애도 인간을 고뇌하게 한다...”
쇼핑을 하듯 연애를 하고, 소비를 하듯 사랑을 하는 이 시대 결혼 적령기 여성들의 현대판 환타지 혹은 환타지로 치장된 환부에 작가는 말의 성찬으로 소금을 뿌린다. 그것이 소독제가 될지 그저 통증을 강화시키는 작용에 그칠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작가는 자신의 특기에 충실하다. (또래 연령대의) 여성이 아니라면 도저히 잡아내기 불가능할 소소한 일상의 찰나들과 대사들을 통해 작가는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래, 결혼하니 좋아?” “그런 걸 초월한 어떤 단계에 진입했다고 할까. 작은 감정들에 예민하게 일일이 신경을 쏟으면 힘들어서 살아갈 수가 없어. 뭐랄까, 업무가 지루하고 반복적이라는 단점이 있지만 꽤나 안정적으로 신분 보장이 된다는 장점이 있는 회사에 취직한 기분이야.”』
사랑과 결혼 혹은 연애와 동거 혹은 일과 꿈...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다면 좋았겠지만, 소설 속 여성들의 모습이 부차적으로 다루어질 뿐이거나 그저 알량한 감정 놀음의 대상으로만 다루는 다른 소설들에 비한다면 여하튼 의미심장하다. 중간 중간 보여지는 참신한 표현도 좋고, “... 읽지 않은 척, 지금이라도 얼른 메일을 닫아버릴까. 그러나 이메일에는 ‘수신 확인’이 라는 잔인한 기능이 있었다... 그 기능을 처음 고안해낸 이는, 객관적으로 증명 가능한 것만을 믿는 슬픈 실증주의자임에 분명했다...”, 안정되어 있으면서 어렵지 않은 문장들도 좋다.
ps. 조선일보라는 신문사에 소설을 연재했다는 사실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런 소설을 연재할 생각을 한 조선일보의 의도 또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젊은 세대를 향한 혹은 여성을 향한 보수 진영의 뜨거운 러브콜은 획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중인 것이다. 그에 비하면 진보 진영의 발걸음은 어째 더디기만 한 것 같다. 아이러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