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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를 위한 퀴어영화가 아닌, 사람을 위한 멜로영화.

이영진 |2006.11.04 11:35
조회 103 |추천 0
 

멜로는 호흡이 길어야 제 맛이라 생각한다.

혹자는 지루하다고 하기도 하겠지만 나는 그런 영화를 좋아한다.

내가 브로크백 마운틴을 상당히 재미없게 본 이유도 둘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거의 생략되어 있고, 그 이후의 감정변화에만 너무 집중을 한 것 때문이었는데, (사실 원작 소설에서도 둘이 첫 섹스를 하게 되는 시점에 개연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이 영화에서는 수민과 재민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아주 느린 호흡으로 진행되어서 마음에 쏙 들었다.

 

이영훈에 대한 이송희일 감독의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영화.

이한은 꽤 알려진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내에서 그다지 매력적인 남자로 그려지지 못했다. 수민보다 형이고, 수민보다 키도 크고, 실제로 섹스할 때도 탑이었지만, 그는 그저 나약한 존재이기만 했다. (흔히 '여자들이 못하고 남자들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치부될만한 - 안테나 달기 정도는 했다.)

반면에 이영훈은 영화 속에서 왕자님이자 공주님이 되었다. 다분히 마쵸적인 색깔도 띄고 있으며, 영화 내내 눈망울은 항상 젖어있을 정도로 풍부한 감성의 소유자로 그려졌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호감을 갖는 몸매에, 그를 스쳐가는 '손님' 도 그에게 빠져들고, 수민이 친절을 베풀어 준 가람도 그를 사랑하게 되고, 재벌 2세 재민은 그에게 죽을 각오로 구애를 한다.

영화 속 수민은 대다수의 게이들이 좋아할 만한 이상형, '게이 판타지' 였다.

물론, 그가 이토록 영화 속에서 빛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연기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이송희일 감독이 이영훈의 연기에 대해 극찬을 하였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다.)

이영훈은 실제로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나도 어느 날 일기에 영훈이형이랑 술 마신 날을 돌이키며 "그가 게이가 아닌것이 상당히 아쉬웠다." 라는 글을 쓴 적이 있었을 정도로.

 

이송희일 감독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것이다.

영화는 생각보다 길었다. 앞서 말한 것 처럼 사랑에 빠지기까지의 도입부가 상당히 느리게 진행되었고, 그 외에도 영화에는 참 많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안타깝게 잘려나간 부분이 상당히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수민과 재민의 사랑, 가람의 짝사랑과 죽음, 재민의 피앙세, 그리고 그 외의 많은 내용들이 담기려면 이 정도의 러닝타임도 많이 부족한 듯 싶다.

마치 신인 밴드의 첫 앨범을 들으면, 그들이 음악을 꿈꿔오면서 하고 싶었던 것들이 모두 담겨 있는 것 처럼,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그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게이를 위한 퀴어영화가 아닌, 사람을 위한 멜로영화.

게이로서 이 영화를 볼 때, 스크린을 통해 내 자신의 삶을 비춰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껏 여러 퀴어물을 접해 오면서 미국판 QAF가 가장 현실적이고 적나라한 드라마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내용으로는 영화가 될 수 없다. 아줌마들이 흔히 보는 신파극 드라마가 현실에는 가까울지언정 영화가 될 수는 없듯, '후회하지 않아' 는 영화적 허구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감상하는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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