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죽은 척하는 물고기와 모른 척하는 오리

이장연 |2006.11.04 15:41
조회 58 |추천 0

죽은 척하는 물고기와 모른 척하는 오리
물고기와 오리의 숨막히는 신경전 대단해!!!

 

리장

 


이솝우화에 나오는 '곰과 친구' 이야기 아시죠?
산에서 곰을 만난 두 친구 중 미처 나무 위로 피신치 못한 한 친구가 '곰은 죽은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할머니의 말씀대로 죽은 척하는 기지를 발휘,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갑자기 왜? 뜬금없이 곰 이야기를 꺼냈냐 하면, 제가 살고 있는 동네, 밭과 논을 가로지르는 냇갈-어렸을 적부터 냇갈이라 불리웠지만, 지금은 '지방2급 하천 공촌천'이라 불립니다-에서 곰 이야기와 똑같은 상황을 두눈으로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커다란 곰을 본 것은 아니고요.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오리와 물고기입니다.


 

완연한 가을빛의 냇갈

 

완연한 가을빛으로 세상이 온통 알록달록한, 어느 가을날이었습니다.

저 멀리 골프장이 들어선다는 인천 계양산을 뒤로하고 자전거를 타고 농로를 따라 가면서, 유명한 여행지 못지 않은 냇갈의 가을 풍경을 만끽했습니다.
 

냇갈에는 가을 바람에 하늘거리는 갈대도 있었고, 노랗게 말라가는 강아지풀도 있었습니다.

농로 옆 밭에서는 고구마를 캐는 농부도 있었고, 반대편 농로를 따라 트랙터가 움직이는 것도 보였습니다. 그리고 뜰채를 가지고 물고기를 잡는 아이들과 어른들도 눈에 띄였습니다.


 멀리 가을빛으로 가득한 계양산이 보인다


강이지풀도 노랗게 물들었다


키보다 더 큰 갈대들이 파란하늘을 수놓고 있다


가을걷이한 곡식을 트랙터가 옮기고 있다



 

살짝 갈대밭에 들어가 홀로 고독과 황홀경에 빠져있다 올라와, 다시 천천히 페달을 밟아 농로를 따라 내려갔습니다. 100m 정도 내려오니, 콘크리트 턱에서 멈춰선 물길이 아래로 내리치는 물웅덩이가 보였습니다. 그 물웅덩이에 오리 가족들이 '꽥-꽥-꽥'하며 헤엄을 치고 있었습니다.
 

이 오리들은 근처 농가에서 놓아 기르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여름날에도 냇갈을 지나가다 본 오리들이었는데요.

다들 무사히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반갑기 그지없었습니다. 

 

 

우스꽝스런 오리와 죽은 척하는 물고기

 

갈 길을 멈추고, 살아있는 야생의(?) 오리들이 노는 모습을 찬찬히 보았습니다.

오리들은 물가 한 켠에 주인이 놓아준 사료를 주둥이로 '텁-텁'하고 채어 먹고는, 물 한 모금을 '후루릅' 마시고는 다시 물웅덩이로 뛰어들어 헤엄을 치며 놀았습니다. 물이 맑아 '바둥바둥' 거리며 물갈퀴질을 하는 것도 보였고, 먹이를 서로 먹으려고 다투는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보였습니다.


물웅덩이에서 오리들이 놀고 있다

 

물웅덩이는 오리들이 차지해 버렸다

 

  

물가로 더 다가가 한참동안 요놈들을 지켜보다가, 물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자세히 보니 물고기였습니다. 

물웅덩이를 요란스럽게 헤집고 다니던 오리떼가 잠시 물가로 나가 깃털을 고르며 휴식을 취하자, 어디서 숨어 있었는지 모르는 물고기들이 떼지어 자유롭게 헤엄을 치기 시작하더군요.

 

헌데 물고기들의 그 자유와 평화의 시간은 너무나 짧았습니다.

또다시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웅덩이로 뛰어든 오리떼로 인해, 물고기들은 혼비백산하고 말았습니다.
자신을 잡아먹기 위해 달려는 오리의 날카로운 부리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물고기들은 그 작은 몸을 숨길 만한 곳도 피할 곳도 없었습니다.

헤엄치던 웅덩이는 바닥이 콘크리트라 수초가 자라지 못했고, 몸을 피할 커다란 큰 돌덩이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물고기들은 오리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갑자기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바닥에 착 달라붙어 버렸습니다. 마치 죽은 척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나운 곰을 피하기 위해 죽은 척한 친구처럼 말이죠.


물 속에 물고기들이 바닥에 착 달라붙었다(사진 위 점들이 물고기다)

 

 

오리들이 물 속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오리가 가까이 헤엄쳐 오면, 물고기들은 정말 숨을 '합--'하고 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예전 중국영화에 종종 등장했던 '강시'라고 아시죠? 두 발로 '콩-콩-콩'하며 뛰어 다니던 귀신.

이 강시는 사람들의 숨(호흡)을 감지해 공격하곤 해서, 영화의 주인공인 퇴마사들은 종종 숨을 참아 위기를 모면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모양을 물 속의 물고기들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습니다.

 

 

어느 가을날, 살아있는 자연과 생명을 느끼다!


물고기들은 오리가 멀리 떨어졌다 싶으면, 살금살금 오리의 영역에서 빠져나왔습니다.

어느 하나라도 혼자 살려고 헤엄쳐 도망치게 되면, 그것을 눈치챈 오리들이 몰려올 것이 뻔했기에 다들 움직임을 자제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살살 오리가 눈치채지 못하게, 헤엄친다기보다 낮은 포복으로 물바닥을 기어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 나갔습니다. 


오리의 날카로운 부리를 피해 안전한 곳으로 살금살금 이동하는 물고기들

 

 

살기 위한 물고기들의 저 처절한 몸부림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리떼들은 먹이 탐을 내며 뛰어다니더군요. 아마 알면서도 모른척 하는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암튼 물웅덩이를 둘러싼 물고기와 오리들의 이런 집요하고 대단한 신경전을 보면서, 작은 물웅덩이에 살아있는 자연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명이 살아있는 냇갈의 가을은 깊어만 갔습니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