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의 비정규직 법안이 통과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지금 국회에서는 정부가 제출한 비정규직 노동자 관련 법안을 논의하고 있다. ‘계약직’, ‘임시직’ 노동자와 관련된 법률 제정안이 하나이고, ‘파견직’, ‘용역직’ 노동자와 관련된 근로자 파견법 개정안이 다른 하나이다. 정부와 여당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시급히 정부가 제출한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정부의 법안이 통과되면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불안이 더 심해지고 지금보다 더 비정규직이 많아질 것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정부-여당의 비정규직 법안이 통과되면 어떤 일이 생길 것인가에 대해, 실제 사례를 가지고 살펴보자.
1. 계약직노동자들은 2년마다 짤릴 수밖에 없다 - 이랜드 계약직 노동자의 사례
정부-여당은 기업이 계약직을 2년까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2년 이상 근무한 계약직에 대해서는 정당한 이유가 없으면 해고를 할 수 없도록 하자고 주장한다. 얼핏보면 계약직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것같다. 그러나 이런 법안이 통과된다면 내년부터 수십만의 계약직 노동자들이 주기적으로 해고를 당하게 될 것이다. 왜 그럴까?
2000년에 이랜드 노동조합은 파업투쟁을 통해, 계약직 노동자들이 2년 이상 근무하면 정규직화하는 것에 합의했다. 그런데 사측은 이 합의를 악용하여, 계약직 노동자들이 2년 이상 근무할 수 없도록 해고(계약만료통보)를 했다. 지금 이랜드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처음 3개월 계약 후 다음엔 6개월로 재계약, 총 9개월 이상은 계약하지 않는 ‘3,6,9계약’에 묶여 있다. 아무리 일을 잘해도 9개월만 되면 잘리게 된 것이다.
정부 법안이 통과되고 나면 사측은 비정규직의 근속기간이 2년을 넘지 못하도록 계약직을 정리할 것이다. 비정규직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2년이 되면 일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정부 법안은 이에 대한 대책이 전혀 되지 못한다.
2. 계약직, 2년이 지나도 짤린다 - 은행 계약직의 사례
그래도 정부 법안이 통과되면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은 함부로 해고할 수 없게되니 지금보다 나아지는 것이 아닐까?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
제일은행은 3년에서 9년까지 근속한 계약직 텔러(창구여직원)들을 차례차례 해고하고 있다. 제일은행에는 876명의 계약직 텔러들이 일하고 있는데 6개월 단위로 재계약을 하고 있다. 그동안에는 재계약과정에서 특별한 심사절차도 없었고 본인이 원하는 한 계속 근무할 수 있었는데 작년부터 나이가 많고 근속년수가 긴 계약직들이 집중적으로 정리되고 있는 실정이다. 은행측에서는 일방적으로 계약해지통보를 하면서 ‘인적 평정’이 나쁘다는 이유를 들고 있으나 그 근거자료는 밝히지 못하고 있다. 일선에서는 “나이가 많고 근속년수가 오래된 계약직은 부담스럽다”, “젊은 후배들을 위해 알아서 나가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식의 핀잔을 하고 있다. 이들이 해고된 자리에서는 신규채용된 계약직들이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정부 법안은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라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오래 근무했어도 사측은 ‘정당한 이유’가 있으면 재계약을 거부할 수 있다. 이 때 ‘정당한 이유’의 단골 메뉴가 바로 인사평가와 실적이다. 비정규직 재계약의 칼자루는 역시 사측이 쥐고 흔드는 것이고, 정부 법안은 이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다.
3. 저임금! 무권리! 노예노동 - 파견제가 대폭 확대된다
1998년 경제위기 가운데 통과된 근로자파견법은 중간착취를 낳는 파견제를 합법화시켰지만, 노동계의 반대를 의식해 26개의 업종에 한해 파견제를 허용하였다. 그런데 작년 정부는 파견제 허용업종에 대한 규제를 전면 삭제하여 모든 업종에 파견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개정안을 제출하였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끈질긴 투쟁으로 현재 정부,여당의 태도는 한 발 물러서 현행 파견법의 틀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 그렇지만 허용업종을 현재의 26개에서 보다 늘려야 한다는 입장은 견지하고 있다.
지금 파견노동자들은 파견업체의 중간착취로 인한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으며 2년마다 한 번씩 주기적으로 해고를 당하고 있다. 실제 일하는 사업장에서는 파견직이라는 이유로 직원 취급을 받지 못하면서도 사용사업체 관리자의 직접적 지시를 받으며 일할 수밖에 없다. 사용사업체에서 해고를 당해도 파견업체는 전혀 책임을 지지 않고, 그렇다고 사용사업체를 상대로 복직을 요구할 수도 없다.
정부,여당안대로 파견허용업종이 확대되면 이런 무권리 상태의 비정규직이 대폭 확산되게 될 것이다. 기업은 정규직을 채용하는 대신 부려먹기 쉬운 비정규직, 특히 아무런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파견직을 사용하려 할 것이다.
4. 불법파견을 사용한 기업이 노동자를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현대자동차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사내하청) 노동자들이 2003년부터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노동조건 개선과 정규직화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 2004년 노동부는 현대자동차의 사내하청 노동자 1만여명이 현행 파견법상 허용되지 않는 ‘불법파견’이라고 판정을 내렸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조는 현대자동차 사측이 불법을 저지른 당사자이므로 사내하청노동자를 정규직화할 것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파견제는 중간착취/무권리의 반인권적 고용형태이므로 철폐되는 것이 마땅하다. 실제 1998년 이전까지 파견제는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왔다. 이러한 반대여론을 의식하여 현행 파견법은 규제장치들을 갖추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2년 이상 파견근로를 사용한 경우 사용사업주(원청)이 해당 파견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정부는 이 규제장치마저도 없애 파견제를 무한히 확대하려 하고 있다. 정부법안대로 하면 기업이 불법 파견을 사용해도 3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만 부과될 뿐, 사용사업주와의 직접고용관계의 성립은 인정되지 않는다.
5. 상시적으로 필요한 인력도 비정규직으로만 채용한다. 그것도 더 열악한 비정규직으로만!
지난 8월8일 당정협의를 거쳐 발표된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보면, 정부가 앞장서서 상시업무에도 비정규직을 채용하고 게다가 더욱 열악한 비정규직 형태인 외주화,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늘리겠다는 계획을 노골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최근 공개된 철도공사 기획조정본부의 “비정규계약직 대책 검토(안)”이라는 문건을 보면, 온통 “비정규직 전원 외주화(위탁)” “업무 모두를 외주화(위탁)” “전원 외주화(위탁)”이란 말로 가득 차 있다.
이 문서가 작성된 시점이 정부 대책 초안이 마련된 7월24일이었다는 사실과, 철도공사가 공공부문에서 차지하는 막대한 비중을 감안하면, 정부의 종합대책이 바로 ‘전면 외주화’ 정책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정부 종합대책의 ‘외주화’ 관련 항목을 보면 올해 9월까지 “각 기관별 검토 및 중앙행정기관에 요구”하도록 하고 있는데, 철도공사가 작성한 이 문서가 바로 외주화를 위한 검토자료임을 알 수 있다.
2003년 이용석 열사의 분신을 가져왔던 근로복지공단의 경우 공단업무의 증가에 따라 필요인력의 규모가 늘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약직의 신규채용마저도 동결하고 있다. 계약직들이 근로복지공단 비정규노조의 주축이 되었던만큼, 충원이 불가피한 경우에도 계약직이 아니라 파견직이나 파트타임으로만 채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정규직 신규채용은 고사하고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계약직 대신 더욱 열악한 비정규직으로 대체하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