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말대로, 지금 예비교사들이 투쟁을 하는 이유 중에,
우리에게 직접적인 이번 문제의 핵심은 교원 임용 축소입니다. 다른 문제들에는 가만히 있다가, 꼭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린 일에만 나서는 것은 결국 치졸하고 이기적인 밥그릇 싸움이 아닌가? 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네, 조금 치졸한 감은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몇몇 이익단체들끼리의 싸움처럼 그렇게 이기적이거나 남의 밥을 빼앗아 오는 파렴치하고 노골적인 밥그릇 싸움은 결코 아닌 것 같습니다. 문젯거리가 나타난다고 모두가 거기에 민감히 반응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어떤 임계치에 이를 때에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으로 뭉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여기에는 몇 가지 중요한 교육적이고 공공적인 명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교원임용의 축소가 왜 문제가 될까요? 경쟁률이 높아지는 것이 왜 교육정상화와 교육의 공공성과 관계가 있을까요? 어차피 합격할 사람은 합격하고 높은 경쟁률을 통해서 뽑힌 ‘우수한’교사가 높은 경쟁률을 통해 증명된 능력으로 가르친다는데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아, 전 이런 생각들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 옵니다.
임용경쟁의 심화가 가져올 파괴력은 엄청납니다. 그것은 결국 교대마저도 더 이상 교사의 길을 진지하게 탐구하고 배우는 곳이 아니라 치열한 생존경쟁의 투쟁터로 만들고 대학교육을 학원화하며 황폐화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학생들 스스로도 더 이상 예비교사로서의 마음가짐을 가질 수 없고 오로지 경쟁에 대한 투쟁의식과 두려움에 억눌려 4년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교사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오로지 임용고사를 남들보다 더 잘 보고 그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기계적으로 훈련된 마음을 가진 교사들에게서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두려움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는 자유로운 탐구와 실험이 있을 수 없습니다. 폭넓은 경험이란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날카로운 지성도, 섬세한 감성도 자랄 수 없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멍청해지고 점점 무감각해 질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고통스럽고 불행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고등학교 시절을 통해서 이런 경험을 해 왔습니다. 대학 조차도 이렇게 보내고 나면, 그래서 이런 정신상태가 만성화되고 나면 그 폐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달됩니다.
불행한 교사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가르칠 수 없습니다. 억압된 교사는 아이들을 자유롭게 가르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성적이지도 감성적이지도 못한 죽은 정신을 가진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똑 같은 사람으로 키워내게 되겠지요. 늘 경쟁 속에 살아왔고 경쟁을 당연시 하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줄 세우고 선착순 달리기를 시키게 되겠지요. 왜냐하면, 그런 교사는 경쟁 없는 자유가 무엇인지 강제가 없는 자율이 무엇인지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순수한 호기심에서 나온 지적 탐구가 무엇인지, 삶과 사람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친구들간의 우정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배운 대로 우리가 살아온 그대로 가르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임용시험의 경쟁의 심화는 분명히 교육계 이런 불행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에, 현재의 상황은 분명 교대생들만의 위기가 아니라 초등 교육계 전체의 위기입니다. 그나마 인간적인 분위기와 여유가 있던 교육대와 초등학교에 경제와 효율성의 논리가 밀려들기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경쟁이 모든 문제 해결의 근본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