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꿈 속 모험을 그린 동화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어릴 때부터 나는 마치 인형놀이를 하듯- 머리 속으로 여러가지 모험을 즐기는 공상을 즐기곤 했다. 때론 공주님이 되어보기도 하고, 역경을 이겨내고 악의 무리를 해치우는 세일러문도 되어보기도 하는, 그런 공상들 말이다.
처음에는 잠들기 전의 어둠이 항상 익숙치 않은 내가 두려움을 이기는 묘책이었다. 유난히 내 상상은 실감났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나는 스릴 있는 청룡열차는 환호하면서도 만들어낸 이야기인 줄 아는 공포영화의 귀신은 너무도 무섭다. 지은 죄가 많아서일까?
공상놀이를 즐기는 내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더할 나위없이 신나는 이야기다. 내가 닮고 싶은 인생의 한 부분이기도 하고 또 사실은 내가 절대 이룰 수 없는 꿈이기도 하다. -_ - 사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동화라고는 하지만 어린이들을 위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 동화의 작가 루이스의 숨겨진 뜻이 가득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옥스퍼드의 수학 교수였던 루이스 캐럴은 알려진 대로 "앨리스 리델"에게 이 책을 바쳤다. 어린 아이었던 소녀 앨리스. 이 소녀에게 루이스는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걸까.
루이스는 이 동화를 쓰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용했다. 수학자이며, 목회자이자 교수였던 그가 쓴 이 동화는 온갖 말장난과 수학적 수수께끼가 난무한다. 실제 어린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고 그들에게 놀이를 만들어 알려주려 항상 가방에 장난감을 가지고 다니던 그답지 않은 이 동화. 어린이들에게 너무 어려운 이 동화.
루이스는 앨리스를 단지 귀여운 아이 수준이 아니라 이성으로써 매우 사랑했다. 이에 대해선 여러가지 말이 많은데 현대 성심리학에선 소심하고 스스로 콤플렉스가 있다고여기는 남성일수록 마를린먼로나 마돈나로 대표되는 섹스심블적 여성보다는 성적으로 미성숙한 여성 또는 그렇게 보이는 여성에게 더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실제로도 루이스는 그 당시의 흔히 있었던 사교모임에서도 잘 나서지 않았고 스스로 얼굴의 좌우가 비대칭이라면서 불평을 하곤했다고 한다. 실제로는 잘생긴 얼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당시 빅토리아 시대에서의 영국은 성에대해 두가지 상반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성에 대한 것에 무지하며 언급조차 금기시 하였으나, 매춘업과 음란물, 그리고 아동의 성적인 이용이 되고 있던 시대이다. 음란물과 성적 아동 학대가 비일비제하는 하층민들의 삶과는 달리 성에 무지하며 금기시하는 상류층. 더욱이 목회자인 루이스로써는 자신의 마음과 규율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했을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이러한 사회적 환경과 루이스의 앨리스에 대한 생각이 이 동화를 쓰게 했다고 볼수는 없으나. 그 당시에는 어린(여자)아이를 순백의천사의 개념으로 보던 시각처럼. 루이스에겐 앨리스가 천사였던 것이다.
루이스는 앨리스를 사랑하는 마음을 여러군데에 암호처럼 숨겨왔는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것은 그가 동화를 쓰면서 그속에 뭔가 암호를 남긴것이 아니라 동화 그 자체가 그에게 있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바치는 선물이었다는것이다. 실제론 동화 속엔 지금의 많은 수학자들과 언어학자등이 풀어내고 있는것처럼 많은 은유과 유희가 있다. 하지만 이런것은 모두 앨리스에게 루리스 자신의 능력을 알려주고 자신을 알아봐달라는 몸짓일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앞에서 자신의 모든 잘난 부분을 보여주려 쓴것이 바로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감추기위해서 출판이라는 방식으로 여러사람이 볼수있게 하였지만 루이스에게 동화는 앨리스에게 바치는 고백이었던 것(실제로 앨리스가 받은 책엔 앨리스의 사진 밑에 루이스가 그린것으로 추정되는 앨리스의 초상이 들어있다.)
그리고 또 하나 그가 앨리스를 좋아해서 한것으로는 사진을 찍은것이 있는데. 루이스는 사진가로써도 이름을 날렸는데 그의 사진중에는 어린(여자)아이의 누드 사진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을 루이스의 잘못된 성적 관념의 몰건이라 할수는 없는것이 당시에는 어린아이의 순수하고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많은 그림과 조각들이 있었는데 루이스의 사진도 이러한 맥락에서 보아야 할것이다. 다만 내가 언급하고 싶은 것은 아래의 사진인데 아래는 많은 앨리스의 사진중 한 장은 앨리스가 거지의 차림을 하고 있는것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그 당시에는 어린(여자)아이를 아직 때 묻지 않은 순백의 미로써 여겼었는데. 이는 좋은 집안의 영애이거나 귀족이나 죵교인의 딸일때나 통하는 말로써 당시의 하층민의 아이들은 재 아무리 예쁘고 잘나도 그러한 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러한 시대에 루이스는 앨리스를 거지분장을 시켜놓았다. 왜일까?
실제로 앨리스는 신학교 학장의 딸로서 높은 계급의 딸이다. 그리고 루이스는 목회자로써 상류층에는 들지만 그다지 인정받는 계급은 아니었다. 실제로도 루이스가 앨리스에게 청혼을 했을때 앨리스의 어머니가 루이스에게 어떠한 조치를 내려 그가 물러난적이 있는데. 아마도 이때 나이의 차이와 더불어 계급의 차이가 일조했을거라 생각할수 있다. 사실 이 청혼이라할것도 루이스가 허락을 기대해서 했다기 보다는 너무나 앨리스를 갖고싶은 나머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않된다 생각을 해서인것 같은것이, 그 스스로 생각을 해도 퇴짜 맡을것은 너무나도 뻔한 상황이었기 때문인데.
루이스는 결국(사진이 청혼보다 먼저지만.)앨리스에 대한 마음-자신과 앨리스사이의 나이와 계급의 차이와 상류층의 규율과 도덕을 넘어서서 앨리스와 맺어지고자 하는 마음-을 앨리스를 거지분장시켜 사진을 찍는것으로 표현한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는 실제로 많은 어린아이들의 친구이자 성실한 종교인이며 훌륭한 교육인이었다. 루이스 캐럴은 앨리스에 대한 연정은 있었지만 이를 가지고 그의 생과 업적을 누가 뭐라 할수 없는것이고. 오히려 그의 한 여인에 대한 마음은 다시 빅토리아(에도) 시대로 돌아 가고있는것 같은 현대의 페르소나를 뒤집어쓴 군상들보단 백배 순수해 보인다.(!네이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