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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빗속을 걷는 음유시인,

김경범 |2006.11.16 17:37
조회 17 |추천 0
백마를 탄 용사의 석상이 가운데 당당히 서있는 광장의 흰 분수대에 앉아 기타를 치고 있다. 그러나 기타 소리에 제대로 집중하는 관중은 없다. 다만 장난기 가득한 꼬마들의 키득거림이 귀 언저리에 아른거릴 뿐.
이제 점심식사를 해야 할 시간이 되었는지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은 더욱더 분주해지고 내 억울한 음률은 이제 막 옆을 지나가는 귀족의 사치스런 마차 가는 소리에 묻혀 흩어진다. 사람들은 지나가며 나를 한 번 스윽 훑어보고는 이내 무관심한 표정을 지으며 가던 길을 이어 걷는다. 사람들의 그런 표정을 볼 때 마다 코드를 바꾸는 내 왼손의 감각은 점점 무뎌지고 아래위로 흔들며 여섯 현을 울리는 오른손은 움직이기에 버거워진다. 어느새 여느 때처럼 긴장감에 배어나오는 식은땀이 등을 서늘하게 하고 이마에 맺힌 말라 굳은 땀은 이따금씩 양 볼을 타고 내려와 턱에 한참을 괴어있어 간드러지게 내 맘을 놀리지만, 이내 때 묻은 낡은 기타 위로 떨어져 내린다. 우습게도 여름은 다 지나 맑고 높기만 한 서늘 가을인데. 등 뒤에는 분수도 있고 북쪽에선 가볍게 스쳐지나가는 기분 좋은 미풍도 불고 있는데.
오른손에 힘을 주어 기타 줄을 세게 튕겼다. 녀석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녀석의 코에서 더운 피가 솟구쳐 올랐다. 기타 줄이 끊어졌다. 개가 듣기에도 우스운 소리가 나고야 말았다. 아이들이 다시 한 번 웃기 시작했다. 까르르. 녀석의 명치를 발로 냅다 차고는 넘어트려 얼굴을 때렸다. 내 손은 허탈감에 멈췄다. 내 손은 비참함에 떨려왔다. 기타 줄이 끊어졌으니 이 이상은 연주할 수가 없다. 녀석의 정강이를 후려쳤지만 패거리들이 있어 그만 턱이 얼얼하게 한 대 맞고 말았다. 난 떨리는 손과 다리를 아이들이 못 봤기를 바라며 터덜터덜 자리에서 일어나 챙이 긴 모자를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푸욱 눌러 쓰고는 기타 케이스를 챙기려 했다. 기타를 들고 케이스에 넣으려 다가갔을 때 열려져 있던 기타 케이스로 돌연 어디선가 동전 몇 개인가 날아 들어와 안착했다. 난 고개를 쓰윽 들어 동전이 날아 들어온 방향을 확인했다. 꼬마 아이들 가운데 유독 그 미소가 톡 쏘는 어린 소년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멋진 공연이었어, 엉터리 거지 씨.”

그러고는 주위에 서너 명인가 아이들을 이끌고는 내 가슴 들쑤시는 웃음소리만 남기고 어둔 골목으로 사라졌다. 한동안 아이들이 사라진 골목을 넋을 잃고 주시하다 고개를 아래로 숙여 케이스 안을 들여다봤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 동전을 주어 셌다. 15 실프. 가까스로, 우유와 바게트 빵을 살 수 있을 듯하다. 결국엔 내가 허리춤에 숨겨 두었던 작은 손칼을 들고 그들을 위협했다. 녀석들 중에서 키가 작은 놈이었을 것이다. 내 칼에 상처가 나 자지러지게 비명을 지르고 죽는 시늉을 한 녀석이. 최초의 칼질이었다.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고 녀석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후로도 내 신경을 건들이던 녀석들은 모두 몸에 어딘가 흠집이 나곤 했다. 누구건 간에. 적어도 그 무렵부터 철이 들 때까지는 그랬다. 동전을 호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케이스에 기타를 넣고 등에 케이스를 졌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진정시키며 이 마을에 처음 온 일주일 전부터 애용하고 있는 후미진 골목 빵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새 내가 앉아 있던 분수 바로 뒤편에서 가락이 붙은 고운 미성이 들려온다. 위대한 용사들의 흥미진진한 모험 이야기를 관중에게 노래하고 있다. 그는 작은 하프를 이따금씩 울리며 허리까지 오는 긴 금발을 흔들고는 꿈결 같은 노래를 하고 있었다. 뾰죽하게 솟아 하늘로 기다랗게 뻗은 귀가 그가 어느 동화 속 공주 마냥 아름다운 얼굴을 갖고 있는 까닭을 깨닫게 해주었다. 아직 초짜인 내가 보기에도 훌륭한 가수다. 곡도 가사도 멋지다. 그리고 그 만큼이나 외모도 수려하고 자태도 우아하다. 그야말로 고결한 음유시인. 꽃을 들고 있는 것은 비단 마을 처녀들뿐만이 아니리라. 아이들도 저도 몰래 입을 떡하니 벌려 그를 멍하니 올려다보고 무뚝뚝한 사내들도 몽롱한 시선을 하고 잔뜩 취해있다. 그러나 톡 쏘는 미소가 유독 눈에 밟히는 어린 소년은 내게 ‘엉터리 거지 씨’라고 했다. 그리고는 나를 위로하는 듯 아니 정확히 나를 비웃으며 딴에는 양질의 동전을 던져 주었다.

“난 아직 엉터리 거지야. 아무도 날 알아주지 않아. 엉터리 거지의 마음은.”

아무도 들어 주지 않을 혼잣말을 낮고 자신감 없게 하고는 꿈뻐억… 원치 않게 한 방울 똑 떨구고 돌아섰다.

============감사합니다=========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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