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에는 일정한 대상도 일정한 방법도 없거니와, 철학이 무
엇이라는 것을 규정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이런 점에 이미 철학의 본질이 나타났다고 말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해서 철학은 어떤 대상을 연구해도 괜찮다
는 것이다. 자연이나 신·역사·인간·인식 등 무엇을 연구해도
거기에는 철학이 성립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하여 문자
그대로 어떤 대상이라도 연구하기만 하면 철학이 된다는 이야
기는 아니다. 자연과학은 자연을 연구하지만 그것이 철학은
아니다. 또 역사학은 역사를 연구하지만 그것이 결코 철학일
수는 없다. 자연이나 역사 등 다른 과학도 연구하는 대상을
연구하면서 과학 아닌 철학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과학과는
다른 철학, 고유의 관심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 관심이란 인간이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반드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가장 근원적인 문제와 대결하려고 하는 마음가
짐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자연이라는
것의 탐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된다면, 그 때 자연은
철학의 대상이 된다. 또한 신에 관한 탐구가 중요하다고 생각
된다면, 그 때 철학의 대상은 신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철
학이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
는 것을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원래 이 철학
의 정의는 형식적이고, 그것만으로 철학이 무엇이라는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철학의 대상이 일정한 것이 아닌 이상, 철
학에 관해서 이러한 형식적 정의 이상의 것을 제시할 수는 없
다. 다만 이 경우의 정의는 넓은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세
상을 살아감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대개의
경우 인생관이나 세계관이다. 따라서 위에서 말한 정의를 좁
은 의미로 생각한다면 철학이란 인생관·세계관을 탐구하는 학
문인 셈이다.
예로부터 철학은 대개의 경우 인생관·세계관을 수립하려고 하
였으나, 그렇다고 모든 철학이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다. 철
학은 인생관이나 세계관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철
학도 있다. 과학의 기초부여나 인식 문제를 철학의 중요한 과
제라고 생각하는 철학이 이런 종류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철학도 또한 넓은 의미에서는 역시 인
생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대상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과학의 기초부여를 철학의 대상으로 삼는 철학자
는 과학이나 과학적 사고방식이 이 세상에서 중요한 것이고,
따라서 과학의 기초부여가 인생관 ·세계관의 문제보다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의 의의를 낮게 평가
하면서 과학의 기초부여를 철학의 과제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
을 것이다. 그리고 인식의 연구를 철학의 과제로 생각하는 철
학자는 우리가 어디까지 인식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먼저
해결하지 않고서는 인생관이나 세계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
다고 생각할 것이다.
따라서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가장 중요한’이라고 하는 말을
넓은 의미로 해석한다면 위에서 말한 형식적 정의는 모두 철
학에 합당할 것이며, 철학에는 다른 학문의 경우처럼 일정한
대상이 없는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그것은 차라리 철학이라
고 하는 것의 성격이 필연적으로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