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현대 기술은 우리에게 많은 이점을 가져다주었다. 쉽게 찾을 수 있는 예가 바로 인터넷이다. 인터넷의 등장은 그야말로 전 세계의 지구촌화를 이룩했다. 대한민국의 인터넷만 연결된 컴퓨터라면 누구든지 너무나 쉽게 미국 시골에 있는 대학 도서관에 있는 책을 검색할 수 있다. 또, 몇 번의 마우스 클릭만으로도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소식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 전까지만 해도 집에서 혼자, 혹은 친구랑 둘이서만 즐길 수 있었던 게임을 이제는 인터넷 서버에 접속함으로써 전 세계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의 등장이 비단 전 세계를 하나로 만드는 역할만 한 것은 아니다. 사무, 교육, 쇼핑에서도 탁월하게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었다. 인터넷의 등장은 재택근무를 가능하게 하였다. 또한 이메일로 해외 지사나, 외국 기업과의 소통도 훨씬 좋아졌다. 그 전까지 해외 지사나 외국 기업가 서신을 주고받으려면 팩스를 이용했어야만 했다. 팩스를 보낼 때는 상대방의 업무시간까지 맞춰가면서 보내야한다는 단점과 불완전하다는 너무도 큰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도 쉽게 이메일 한통을 보내면 상대방은 원하는 시간에 내용을 읽게 된다. 교육면에서도 역시 집에서 쉽게 동영상 강의를 들을 수 있게 되었고, 원하는 자료는 언제든지 인터넷을 이용해 쉽게 검색할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쇼핑도 귀찮게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가격비교와 물건비교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현재 우리나라만 해도 엄청나게 많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가격, 성능, 디자인 비교를 너무도 잘 해놓은 상태이다. 우리는 충분히 적은 힘을 들이고도 쇼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인터넷은 우리 삶의 많은 이점을 가져다주었다. 위에서 언급한 것은 인터넷의 장점 중 극히 일부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 인터넷도 양면성이 존재한다. 인터넷의 폐해를 우리는 간과할 수가 없다. 개인정보의 노출, 각종 인터넷 범죄, 세대 간의 극심한 차이 심화, 그리고 정보의 가벼움 등이 있을 것이다. 특히 요즈음 인터넷에 있는 정보가 모두 고급의, 양질의 정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인터넷의 익명성과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다는 자유를 이용해 자신의 생각을 쉽게 다른 사람들한테 설득하려고 들고, 너무도 쉽게 글을 유포한다. 쉽게 말해 쓰레기 정보인 이런 글을 사람들이 공감해버리고 그 글을 믿어버린다면 사회 전체가 쓰레기 정보로 뒤덮일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인터넷의 정보 공유와 익명성에 대해 반기를 들고 저항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인터넷의 저급한 정보가 사람들을 현혹시켜 더 무지하게 만들고 수동적인 인간으로 만든다고 하는 것이 그 사람들의 의견이다.
아직 반인터넷 운동이 대규모로 확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국가의 단체에서 인터넷이 쉽게 이용되고 불온전한 저질의 정보가 유통되는 것을 염려하고 이를 막기 위한 많은 대처와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이런 행동 자체를 반인터넷 운동으로 부르는 것을 비약이 아니냐 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태까지 우리 인류 역사에서 모든 기술이 발달을 하고 새로운 기술이 등장 할 때 항상 저항이 있었다. 가까운 예로, 인간복제가 있다. 인간복제의 장점은 인간복제를 통해 이식용 장기나 조직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복제는 일치하는 장기나 조직을 가진 제공자를 찾아야 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이식거부 반응이 일어날 위협을 아예 없애거나 현저하게 줄일 수 있다. 장기나 조직 이식수술이 필요한 매우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좋아 보이고 최고의 과학기술로 보이는 인간복제도 역시 윤리성이라는 엄청난 문제 때문에 저항운동이 전 세계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또한 핵발전소와 핵무기에 관한 기술의 발전 또한 이 기술들이 방사능을 유출해서 치명적인 위해를 가져오고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며 인간 사회와 생태계를 파괴할 위험이 있다는 저항단체의 소식도 많이 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술에 대해서 인간들이 언제부터 저항을 하고 반기술적인 행동을 보였을까? 초창기 기술에 대한 저항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일 것이다. 러다이트 운동은 산업 혁명 당시 방직 공장에 대규모로 기계가 도입되면서 일할 거리를 잃게 된 공장 노동자들이 기계를 부수면서 시작된 운동이다. 공장 노동자들은 기계의 도입은 자신들의 실업뿐 만아니라 질 낮은 옷을 생산하고, 기존의 수공업자들이 자신의 작업장에서 주문을 받고 미리 돈을 받은 뒤에 물건을 만들어 공급했던 상품생산 방식 경제 체제마저 붕괴시킨다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가장의 권위를 침해해 가족과 사회의 도덕을 붕괴시킨다고 생각했다. 노동자들은 이러한 자신의 입장을 정부에 청원하였지만, 통하지 않았다. 그 결과, 기계파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했던 것이다. 이것이 러다이트 운동이다. 러다이트 운동은 아마도 우리가 알고 있는 저항운동 중 얼마 안 되는 기계에 대한, 즉 기술에 대한 저항운동일 것이다. 과연 이런 러다이트 운동이 옳은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겪었던 기술에 대한 저항운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나도 그랬지만, 러다이트 운동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공장 노동자들이 기계의 도입에 대해 자신의 일자리가 없어진 것에 폭력적으로 대항해 결국 기계를 모두 부쉈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영국 방직 산업의 강점인 고급옷감의 제조가 기계의 도입으로 인해 옷감의 질이 떨어져 해외시장에서 영국 옷감의 경쟁력의 하락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었다. 또한 노동자들은 기계가 보조자의 역할을 해야지 100% 대체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그들의 생각을 정부에 청원을 해보고 파업도 해보았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그래서 결국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게 된 것이었다. 이러한 러다이트 운동은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 기계가 도입되었기 때문에 실패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러다이트 운동은 기계의 도입 속도를 늦추는 역할을 하였다. 기술에 대한 저항이 기술의 도입을 지연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기술의 저항이 기술의 도입을 지연시켰다는 것에 대한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섣부른 기술의 도입이 위험한 상황을 초래한 상황을 많이 알고 있다. 보팔 사고, 스리마일 섬의 핵발전소 사고와 챌린저 호 폭파 사고가 그 예일 것이다. 이런 사고들은 위험한 기술이 너무도 섣부르게 도입된 부정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이런 기술이 도입될 때에도 저항이 있어서 도입 속도를 늦췄다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러다이트 운동에서 기계의 도입 속도를 늦췄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우리는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기술에 대한 저항이 위험한 기술을 도입하는 것을 늦추면서 이 기술에 대해 사회 구성원들이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런 기회가 앞에서 말한 위험한 결과의 발생 확률을 확연히 낮춰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서두에 말한 인터넷에서 반인터넷 운동을 생각해보자. 반인터넷 운동이 궁극적으로 하려는 것을 무엇일까? 러다이트 운동과 그 의도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반인터넷 운동은 인터넷이 많이 보급되고 자리를 많이 잡은 후 일어난 운동이다. 즉 어쩌면 사후 운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에 반에 러다이트 운동은 공장에 기계가 보급되자마자 일어난 운동이란 점에서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러다이트 운동은 노동자의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라서 저항운동이 바로 일어났을 것이다. 보급시기에 따른 저항 운동 시작 시기에 따른 차이점은 있지만 두 운동은 모두 기술의 빠른 흐름을 늦춘다는 점에서 기술에 대한 저항운동으로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반인터넷 운동은 앞서 말했던 인터넷의 보급에 따른 문제점을 때문에 인터넷을 없애버리자는 것이 아니다. 이런 운동을 함으로써 다시 한 번 전 세계 인터넷 유저들에게 각인 시키고 좀 더 좋은 방향 쪽으로 기술의 발전을 이끄는 것이다. 이것이 올바른 기술에 대한 저항일 것이다. 기술의 양면성을 모든 사람은 알고 있기에 이러한 올바른 저항운동이 있다면 새로 발견된 기술이라 할지라도 그 기술의 도입을 늦춤으로써 다시 한 번 생각할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항상 부정적으로 인식되어 오던 기술에 대한 저항을 운동을 위험한 기술에 대해 엔지니어와 시민들이 다시 함께 생각해 볼 기회라고 인식해야 한다. 앞으로의 저항 운동은 러다이트 운동처럼 극단적이기보다는, 기술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엔지니어가 인정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이에 대해서 사회 시민들과 적극적이고 열린 대화를 나누고 타협을 해나가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