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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현의 문제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가수나 작곡가

신민경 |2006.11.17 09:17
조회 37 |추천 0

신중현의 문제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가수나 작곡가

연주가 들이 라디오나 음반 시장과 티브이 매체에서

사라지고 난 후에 무엇을 하고 살았을까 하는 것은

물어 보나 마나 일 것이다.

당시 극장이나 쇼무대가 흥행에 주요 변수 이었던 것은

미팔군이 우리 나라에 5만 군사를 주둔 시키며

그 사병의 사기 진작을 위해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하고

실천에 옮기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때의 한국 실정이 국민 소득 100불도 안 되는 최 빈민국에다

전쟁 폐허로 사회적인 인프라가 없었기에

아무도 주한 미군으로 오는 것을 달갑게 생각치 않았기에,

처후 개선에 최우선 힘쓰며 후생 복지에 올인을 하였지.

그래서 위문 공연을 미국 현지 수준으로 하라는 명령과

함께 엘비스 프레슬리,  마릴린 먼로 등

당대 톱 클래스 연예인공연과 더불어 최고 수준의

미군 악단들이 대거 들어 오게 되었다.

 

그래서 불어 닥친 한국 연주인들의 충격은 말로 다 할 수

없었겠지..

일본의 유럽식 창가에 젖어 있던 클래식 풍의

테크니션들은 바로 미국식 재즈 풍의 빅밴드로

변화를 꾀하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수 많은 브르조아에

편승한 자본가들이 무대를 전국적으로 오픈을 하게 된다.

 

술을 먹고 부킹을 하는 나이트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 때에는 극장식 나이트라고 이름 하여

쇼를 보고 프로그램에 따라 연에인을 줄줄히

지켜 보는 객석의 자리 였다

그러다 작은 규모의 지방 순회 극장 리사이틀이

붐을 이루고 다방에서도 그룹 사운드가 공연을 하는

문화 전성기를 맞이 하게 되었으나,

박정희 정권으로 인해 그 모든게 금지 되고 철폐 되어

모두가 라이브가 아닌 캬바레 밴드로 숨어 들게 된다.

 

조용필은 신중현과 같이 노동을 하며 작곡과 편곡에

몰두 했다고 전해 지지만 실상,

그룹이 없어진 편곡은 시퀀싱과 같아서 몸으로

표현하는데 한계를 가지게 된다.

 

쇼쇼쇼 라는 오래된 프로그램에는 100 % 생음악으로

팝 오케스트라가 반주를 하며 진행 되는 것이었는데,

인터넷에서 찾아 보면 놀라운 연주인들을 자주

발견 하게 되고 그 실력에 소름이 돋기도 한다.

 

미팔군에서 근무했다는 존 콜트레인이 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국의 어느 연주자와 자웅을 겨루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어느정도 기량이 따라갔다는

이야기도 될 수 있다.

 

그렇게 70년대가 지나고 전두환이 얼마의 사람들을

각서를 받고 풀어 줌으로서 한국은 아, 대한민국 같은

애국 가요 천국이 되고 사랑 타령을 해야 먹고 살 수 있고,

뽕짝을 해야 그나마 밤무대에서 불 러 주는

쓰레기 같은 인생이 반복 되다가

비참한 결말을 맞게 된다.

 

바로 노태우 정권의 밤업소 12시 심야 영업 금지 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터져 나옴에 따라

그나마 먹고 살 던 터전을 잃어 버린 연주인들은

올림픽 경제 붐으로 일확천금을 거머 쥐어 흥청 망청

대던 졸부들의 노리개 감으로

룸으로, 룸싸롱으로 모여 들게 된다...

 

배호는 살아서 엘비스 같은 컨츄리 풍의 트로트를

불러서 아직도 애주가들의 기억에 살아 있고,

그의 드럼 연주 실력은 한국 재즈의 대가 들이 영향을

받았다고 하고 특히 몽고메리 기타리스트를

좋아하는 평범한 세계속의 한 음악인 이었다.

 

박정권때 살아 남은 이미자, 남진, 나훈아 같은

사람들은 그냥 가수 일뿐이다.

우리는 20년 세월 속에 아티스트를 잃었고,

또 그 공연을 보고 성장했어야 하는 재능 있는

천재들을 다른 산업 현장으로 빼았겨야만 했었다.

 

지금의 한국 음악계는 균형을 잃은 성장을 하고 있고

유학을 갔다 온 사람들의 전통적인 우리것을 인정하지

않은 풍토로 인해 저변이 생산이 안 되고 있다.

 

플라스틱 판 옆에는 늘 리얼북이 있었고

기지촌으로 새벽잠을 깨우며 달려 가던

레슨 학생이 우리에게는 많았다.

고속도로가 개통을 하고

100억 달러가 돌파 되며 어느 지방 온천의 나이트를

전전하게 되었을 그 시절의 무명 연주자에게

나는,

수고했노라고 말하고 싶다.

그 말 밖에는 전혀 할 말이 없다

무슨 위로의 뜻이 음악인의 생에

구차하게 필요 하겠나..

 

딴따라는 다 그렇치,

하고 체념했을 꿈꾸던 그들에게

시대는 문화를 요구 하지 않았고

이제야 먹고 살 만 하니

뭐 좀 없냐고 한다..

 

속으로는 음악인들을 폄하하면서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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