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물 두 살의 그녀가,
세상엔 해야 할 일도 너무 많고, 만나볼 사람도 너무 많다며
두 사람만의 좁은 울타리에서 뛰쳐나갔을 때,
그는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
서른 살의 그는
자기가 보았던 세상을 그녀도 봐야한다고 생각했고,
자기가 여러 여자를 만나봤듯 그녀에게도 권리가 있다고 인정했다.
보고 싶은 만큼 다 본 다음, 이십대 후반이 되면 돌아오라고,
그는 말했다.
그때까지 그의 사랑은 변함이 없을 거라고.
사실은 그를 잊고 있었다.
서른 살의 생일에 불현듯, 그가 했던 약속이 떠오르면서,
그녀는 자기가 그를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상도 볼만큼 봤고, 사람도 만날 만큼 만났다.
물론 아직도 더 봐야 할 세상이, 또 만나볼 사람이 남아있겠지만,
그것은 더 이상 그녀에게 열망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녀는 뭔가 다른 것을 원했다. 두 사람만의 좁은 울타리 같은 것을.
바로 그때, 시기적절하게도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하는 남자가 있었다.
그녀도 그가 좋았고,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왠지 8년 전의 그 남자친구가 자꾸만 마음에 걸리고 있었다.
“그 사람은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그 오랜 기다림을 배신하는 게 너무나 미안해서,
그녀는 한 달이 넘도록 고민을 하다가 그 남자를 받아들였다.
“내가 그 사람 찾아내서 남자끼리 남자답게 말할게.
넌 걱정하지 마.”
그녀의 남자친구는, 인터넷의 바다를 끝없이 헤엄친 끝에
그 남자의 최근 사진을 간신히 찾아낼 수 있었다.
상당한 괴짜일 거라고 생각했던 그 남자의 모습은 의외로 평범했고,
눈에 띄는 것이라곤, 튀어나오려는 기색이 역력한 배와
그의 양손에 매달린, 그의 축소판 같은 두 아들이었다.
슈퍼맨이 죽은지가 언젠데...슈퍼맨을 만나게 해달라는 아이처럼 .
사랑의 불씨도 영원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