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퍅한 후드티 한장 걸치고 나갔다가 학교에서 벌벌 떨었던
그 날이 수능이었더군요.
자취생 방에 티비도 없고, 주변에 급박한 수험생도 없어서
언제가 수능날인지도 잘 몰랐습니다.
제가 수능을 본지도 벌써 4년이나 지났더라구요.
이제는 은근슬쩍 가물가물하지만 가끔씩 떠올려보면
그 긴장감에 몸서리치곤 합니다.
수능 전날 밤, 아빠가 주셨던 편지-
[그동안 준비한것들을 마음껏 펼치라고 써주셨어요]
싸늘하게 입김 서리는 새벽, 교문앞까지 데려다주신 부모님.
무척 추웠을텐데도 교문앞에서 응원해준 후배들.
그리고 응원의 악수를 전해주신 선생님들.
마지막으로 교문을 넘어서 혼자가되었을때 나름 비장했던 나-
이게 제 수능의 추억이죠.
언어영역 보고 나서 뭐 이런 어려운..=ㅅ=;;;; 이러면서
속으로 얼마나 ㅊ ㅕ 울었는지 모릅니다.
덕분에 여파로 수리는 어떻게 풀었는지 기억도 안나요ㅠ
[원래 제일 어려워했던 영역인데ㅠ]
사과탐 풀고, 외국어. 그리고 제 2외국어 까지..
[전 400점세대 입니다..ㅎㅎㅎㅎ, 빅뱅이래 최악의 학력 03학번이지요..ㅋ]
시험이 끝나고 어둑어둑해져서 교실을 나서는데
아직 채점도 안해봤지만, 점수도 모르지만, 왈칵 눈물이 나는겁니다.
이거 내가 정말로 제대로 한걸까, 이걸로 이제 다 끝난걸까.
북적 거리는 인파속에서 아빠가 다가오시더니
말없이 가방을 들어주셨습니다.
척 보기에도 제 표정이 별로였는지 아무 말씀도 안하시더군요.
집에 돌아와서는 한대접 밥을 퍼서 꾸역꾸역 체할때까지 다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채점도 안하고 늘어지게 자려는데...
TV에서는 자꾸 올 수능 쉬워서 점수 소폭 상승 예상..
이런 뉴스만 나오더군요.
그리고 교장선생님이 전화하셔서 부모님과 통화하는데 다 들리더라구요.
귀를 꾹..쳐막고 자려는데 엄마가 오셔서 넌 왜 채점도 안해보냐며 화내시고...
그리고는 엄마도 침대에 드러누우셔서는...
온집안이 초상집분위기...;
그제서야 슬슬 채점을 하기 시작했는데....
결과는 지금 생각하면 나쁘지 않는데, 그 당시에는 정말 못봤구나..
남들은 올랐다는데 나는 이 뭐..ㅠ 더 떨어졌는데!
세상이 다 무너지는것 같죠..
기대하고 계시던 부모님, 선생님, 그리고 다른 가족들..
내가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것이 얼마나 나를 작아지게 하던지..
부모님은 재수 얘기도 꺼내시고, 전 완전 패닉..
그동안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그 수고의 대가가 겨우 이거냐는 생각이 들어서
얼마나 억울했는지 몰라요.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였어요.
수능은 그랬지만, 아무리 가채점이 어쩌고 남들이 어쩌고 한들
정말로 원서를 내고 부딪히고 경쟁해봐야 아는 거더군요.
평소보다 좀 떨어지긴 했지만, 내 성에 다 차지는 않지만
괜히 먼저 우울해하고 겁먹을 필요는 없었는데....
쉬운말로, 합격은 원서 써봐야 아는 겁니다.
논술도 봐야하고 면접도 봐야해요.
수능이면 다 인것처럼 호들갑 떨던 시대도 이제 지났는데...
아직도 수험생들에겐 그게 다 라고 말하는것 같아요.
정말로 수능이 다 였다면,
전 그때 합격못했을지도, 지금 이 학교 못 다녔을지도 몰라요.
수능은 이제 시작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대학의 문을 두드릴 자격을 얻었습니다.
내가 가진 점수가 성에 안찬다고 대학이 여러분을 밀어낼지도 모릅니다.
그럴땐, 내가 가진 생각과 말과 글을 대학에게 보여주세요.
수능이 다가 아니고 내가 이렇게 멋지고 똑똑한 학생임을 보여주세요.
그러면 그 고깝게 닫아두던 문을 열어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리고, 원하지 않는 과에 억지로 지원하지도 마세요.
남들이 이게 좋다니까, 저기가 더 좋다니까 그렇게 따라가지도 말았으면 합니다.
공부하면서도 늘 생각은 했겠지만...
이제서야 제대로 나의 적성과 전공을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되었으니..
이 post 수능을 진지한 자기 고민의 시간으로 만드시길 바랍니다.
어떤 전공을 선택하든지간에 그 공부가 힘들어질때면
아..대체 내가 왜 이걸 한다 그랬지;;; 라는 생각은 들지만..ㅋㅋㅋ
그래도 처음에 내가 이 전공을 하고자했던 그때를 떠올려보면 또 견딜만 한 일입니다..ㅎㅎ
필요하다면 부모님과도 싸우시고, 담임 선생님과도 싸우세요!
전 싸워 이겼습니다!
수능 망치고, 2학기 수시 면접들어갔다가 떨어지고..
그래도 정시에 또 썼습니다.
부모님은 제 몰래 이과로 교차지원해서 집가까운데 있는 한의대에 원서를 넣으셨더라구요..
보결 3번으로 붙긴했는데... 전 과감히 거절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일도 아니고, 적성도 안맞았거든요..
장난삼아 지금도 아~ 그때 한의대나 갈껄 하지만..
제 결정에 후회 안합니다.
힘들때 스스로를 지키는 것은 결정에 후회하지 않는 마음이거든요!
적성같은거 뭐 있나 그냥 점수 맞춰 대충 가는거지 라는 생각은 딱 버리세요.
고민 안해봤다면 이제부터 하면 되는거니까요~ [원서 쓸때까지!ㅋㅋ]
사실 저리 어렵게 문을 넘은 대학도 여러분에게 많은 것을 보장해 주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이 연예인이 아닌 이상, 흥청망청 놀며하는 대학생에게 남는것은 F뿐이죠.
수능점수가 안좋았다고 원하던 대학에 어떻게 가냐고 같이 고민하던
그때의 제 친구들이... 이제는 어떻게 취직하냐고 앞으로 뭐해먹고 사냐고 고민합니다.
이제는 명문대라는 이름도 아무것도 가져다 주지 않거든요.
몇일전 회사 면접본 친구는 떨어졌다 그러고,
저도 여러분 수능본날 고시 떨어졌습니다..ㅎㅎ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또 해야죠...
친구들이 오늘 수능이었다더라~ 쉬워졌다더라..이럴때..
아..오늘 또 여린 아이들이 몇 죽겠구나하는 생각이 스치더군요..
죽으면 다 아쉽습니다..죽는다는 생각으로 그냥 사는게 나아요.
↑ 요런 쓸데 없는 생각 싹 버리고
그동안 수고했다고, 스스로 대견하다고 칭찬이나 왕창 하세요 ^-^
[대학가면 교수님이 칭찬 잘 안해주십니다..ㅠ 부모님도 잘 안해주시죠..ㅠㅠㅠ]
진짜로 수고들 하셨고, 30몇만명의 수험생주에 100명쯤은 내년에 후배로 만날테니
전 그분들을 기다려보겠습니다!
해주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정리가 잘 안되 두서가 없습니다만...
혹시라도 더 이야기가 필요한 학생분들이 있다면..
싸이 스쿨에서 멘토링을 하고 있으니, 신청해주시거나 혹은 쪽지도 환영합니다.
큰 도움은 못되더라도 이야기를 하고 들어줄는 일 정도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