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근해 보이는 연두색 파카 왼쪽 가슴에 푸른 실로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 “공익근무요원, 소속 용산구청, 성명 김종국”, 검은색 모자를 쓰고 운동화를 신은 그는 더 이상 ‘가수왕’이 아니었다. 웃음 많고 성실한 구민들의 ‘일꾼’. “수능시험 보는 날인데 생각보다 날이 따뜻해요?”, “이 사람아 지금 나가봐 얼마나 추운데”. 16일 오전, 그가 근무하는 용산구 효창종합사회복지관. 식당 아줌마와 주고받는 대화가 정겹다. “종국씨요? 하하 처음에는 시커멓기만 했는데 갈수록 귀엽고 하는 짓도 예뻐요.”
아담하고 소박한 이 복지관에서 김종국은 8개월째 익숙한 ‘풍경’의 하나가 되고 있다. 구청, 병무청, 복지관측 허가를 거쳐 만나게 된 그는 “세상에 어려운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세상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했다.
“독거노인 분들께 반찬 배달하고 안부 전화하는 게 제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예요. 사정을 잘 모를 때는 혼자 사는 어르신을 TV에서 보면 ‘대체 자식들은 뭐하나?’ 생각했는데 와서 보니 다들 사연이 구구절절이에요. 자식이 큰 병에 걸려 도저히 부모님을 모시지 못하는 경우도 꽤 있어요.”
자신이 관리하는 독거노인들과 하루 10여 통의 안부전화를 주고받는 그는 “민망할 정도로 감사해 하는 어르신이 많다”며 “제 인생에 큰 깨달음을 주는 자리에 온 것 같다. 남을 돕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분들을 보며 숙연함을 느낀다”고 했다. 그래서 그 또한 휴식을 줄여가며 조용한 선행에 나섰다. ‘휴일’인 지난 8월 15일에는 사회복지사, 팬, 기획사 직원 등 100여명과 수해를 입은 홍천을 찾아가 복구사업을 도왔다. 최근에는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있는 소아암 환자의 생일파티에 참석했다.
김종국의 등장은 이곳 복지관에 벌어진 대형 사건. 아줌마들은 “사인해달라”며 “꺄악” 소리를 질렀고 아이들은 줄지어 그를 따라다녔다. “쑥스러워 조용히 지나가려고 하면, 아줌마들이 ‘인사 좀 하고 다녀’라며 핀잔 주세요. 이곳을 찾는 분들이 어떻게 보면 제 팬하고 많이 겹쳐요.”
그의 월급은 12만~13만원. 출퇴근은 안양에서 승용차로 한다. “공익 월급으로 차 끌고 다니려니 유지비 감당이 안 된다”며 엄살이다. 입대를 앞두고 지상파 방송3사 연말 가수왕을 휩쓸었던 김종국. 2년 공백에 대한 부담은 없을까? “그건 운이 좋았던 거죠. 그리고 원래 제 꿈이 그렇게 크지 않아요. 최고 가수가 되기보다 노래 잘하는 가수·엔터테이너로 기억되면 충분하다는 생각이었죠. 자리를 사수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으니 부담도 없죠.” 담백하다. 하지만 그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어지는 근무시간 이후, 소속사로 찾아가 노래연습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 “가수 시절보다 시간은 많겠다”고 하자 손사래 친다. “공익은 1시간을 자도, 10시간을 자도 피곤하대요.” 혹시 ‘군기(軍紀)’가 센가? “훈련소 동기들과 한 달에 한 번 만나는데 군기가 있는 근무지도 많더라고요. 그런데 저희는 가족적이에요. 3명이 같이 근무하는데 막내인 제 나이가 가장 많고, 선임의 나이가 가장 어리다는 점도 재미있죠.”

연예계의 소문난 근육질 ‘몸짱’인 김종국. “건강한 그가 왜 현역병이 아니라 공익근무요원이냐?”며 입대 전 논란이 일었다. 어이없다는 표정. “저는 스스로 느끼기에 부끄러운 행동은 절대 못하는 성격”이라며 “허리 ‘수핵탈출증’으로 신체검사에서 4급을 받았는데 그때 저는 유명 연예인도 아니었고 집안에는 돈도 ‘빽’도 없어 형 대학 등록금 내기도 빠듯한 형편이었다”고 했다. “병역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이 나라에서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그 흔한 친구 배웅도 못 받고 입대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입대 앞두고 팬, 취재진이 훈련소로 찾아오는 것도 마다했어요.”
그는 음반시장이 침체인 것도, 연말 시상식에 동료 가수들이 자꾸 불참하겠다고 밝히는 것도 안타깝다고 했다. “공정성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이런 행사가 없어지면 가수들 위상은 자꾸 떨어진다고 생각해요. 문제가 있다면 바로잡아 축제를 만들어나가야죠. 1년간의 활동에 대해 아무도 평가를 내려주지 않는다면 대중의 관심은 자꾸 멀어지는 것 아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