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입력 : 2006.11.18 21:22 13'
섹시
아이콘 이효리(27)가 다시 연기에 도전한다. 지난 해 1월, 큰 실망을 안겨준 SBS 드라마 ‘세잎 클로버’ 이후 1년 9개월 만이다.
엠넷미디어에 따르면, 이효리는 내달 20일께 방송될 TV 단막극에 출연하게 된다. 70분 분량의 이 드라마는 MBC 드라마 ‘불새’를 집필한 이유진 작가와 이효리 싱글 ‘애니모션’, ‘애니클럽’ 등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차은택 감독의 합작품이다. 공동 출연배우와 방송사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여기서 일단, 가수의 배우 겸업에 대한 지적은 이효리에게 맞지 않는다. 전문 뮤지션과 아이돌 가수는 달리 바라봐야 한다. 아이돌 가수는 일종의 퍼포먼스 아티스트로 보는 편이 옳다. 아이돌 가수의 무대는 가창력의 승부처가 아니다. 곡조와 리듬에 맞춘 몸연기와 이미지의 발산 현장이다. 할리우드에서도 아이돌 가수의 배우 겸업은 1950년대의 ‘랫 팩’ 군단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효리의 두 번째 연기 시도에서 정작 주목되는 것은 이미지 변신에 관한 부분이다. 생각해보면 이효리에게는 항상 이미지 변신의 과제가 암묵적으로 주어졌었다. 이효리 뿐만이 아니다. 강렬한 자기 이미지를 지닌 연예인에게는 항상 변신의 과제가 주어진다.
이효리 ‘이미지의 역사’를 잠시 돌이켜보자. 이효리의 ‘핑클’ 시절 이미지는 섹시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청년다운 발랄함과 건강함 정도였다. 그러나 한국의 ‘프린세스 메이커’식 변신 전략에 따라 매 앨범마다 성숙미를 더해갔다. 이런 성숙화가 정점에 이른 것이 2003년의 솔로 데뷔이다. 이효리는 도발적이고 노골적이면서 소악마적 성격을 띤 섹시 아이콘으로 진화했다. 첫 솔로 싱글 ‘10 미니츠’는 성적으로 분방해진 시대의 표상이 되었다. 모 시사주간지는 그 해, 이효리를 연예계 영향력 1위로 꼽기도 했다.
예기치 못한 대성공 이후 잠시 잠적기를 가진 이효리는 두 가지 급변화를 시도한다. 먼저, 연기자로 활동 영역을 넓히는 것. 그리고, 대폭적인 이미지의 변신이다. 이효리가 출연한 첫 드라마 ‘세잎 클로버’에서 그녀는 얼굴에 기름때를 묻힌 공장노동자 ‘강진아’로 등장한다. 단순히 기본 설정만이 아니라, 인물의 성격과 성향도 기존 이미지와 전연 달랐다. 개인사도 척박하고, 눈물도 많으며, 억척스런 비장함을 지니고 있다.
이효리의 변신은 실패로 돌아갔다. 배우로서의 변신 실패인지 이미지 변신의 실패인지는 아직도 가늠하기 힘들다. 대신 그녀는 자신의 본래 장르, 본래 이미지로 되돌아와 또다시 성공을 거뒀다. 에릭이 랩 피처링을 담당한 디지털 싱글 ‘애니 모션’은 제 2차 이효리 붐을 일으켰다. ‘이효리는 역시 섹시함이 먹힌다’는 통설도 등장했다. 이어진 디지털 싱글 ‘애니 클럽’은 별반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동일 컨셉트 연장의 식상함 정도로 짐작될 수 있었다. 큰 문제는 아니었던 것이다.
진정한 큰 문제는 올 초, 야심차게 준비한 정식 솔로 2집 앨범 ‘다크 에인절’에서 벌어졌다. 싱글 커트된 ‘겟 차’의 표절 시비는 악재일 뿐 근원적 결함은 아니었다. ‘다크 에인절’의 진정한 문제점은 믿었던 섹시 이미지의 피로감 조짐이었다. ‘겟 차’는 확실히 표절 논란 이전에도 ‘10 미니츠’나 ‘애니 모션’처럼 금세 불붙지 않았다. 인지도는 높았지만 인기도는 생각만 못했다. 이효리의 섹시 이미지 소진이 조심스레 점쳐진 것이다.
이효리는 이미지의 진퇴양난 상황에 빠져있다. 섹시 이미지는 노쇠함을 보이고 있으며, 이미지 파격은 이미 대단한 실패 사례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전략적 혼란의 상황이 새 드라마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새 드라마에서, 이효리는 쌍둥이 자매의 1인 2역을 맡는다. 댄서를 꿈꾸는 ‘끼’ 많은 언니와 공부 밖에 모르는 모범생 여동생. 언니가 불의의 사고로 다치면서 성향이 전혀 다른 여동생이 언니 대신 춤을 추며 언니를 점차 이해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설정 자체부터 너무 노골적이어서 이효리의 절박함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이효리는 여전히 이미지의 행보를 결정하지 못했다. 섹시 이미지도 지키고 싶고, 변신의 필요성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어느 쪽도 이제 더 이상 안전하진 않다. 그 결과, 한 드라마에서 두 가지 다른 이미지를 보여준다는 종합상품적 발상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 ‘뽑기’식 발상은 드라마 뿐 아니라 음반으로도 그대로 이어진다.
이효리는 내달 중 댄스곡과 발라드곡을 함께 디지털 싱글로 낼 예정이다. 단막극 중 언니가 나오는 장면은 댄스곡, 동생 장면은 발라드곡의 뮤직비디오로 쓰인다. 섹시함과 소박함, 연기자와 가수 사이의 이미지적, 장르적 불안이 이번 기획에 모조리 쓸어 담아져 있는 셈이다.
과연 이효리는 그토록 ‘이미지의 위기’에 놓여있는 상황인가. 이런 둔탁하고 일차원적인 발상까지 동원해야 할 정도로 절박한 ‘이미지의 혼란’에 빠져있나. 단적으로 말하자면, 이효리는 이미지 변신을 시도할 필요가 없다. 아니, 시도해선 안 된다. 이효리처럼 시대적 아이콘이 돼버린 인물은 변신이 불필요하고, 오히려 위험하다. 굳이 예를 들자면, 서태지가 머리를 단정히 빗어 넘기고 발라드 가수로 변신하는 것만큼이나 기괴한 일이 돼버린다. 이효리는 이미 ‘섹시함’의 상징이 되어있고, 어떤 식으로든 이를 벗어날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지의 소진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이를 어떤 식으로 우회해 나가느냐이다. 이에 대한 가장 좋은 해결책은 미국의 ‘선배’ 섹시 아이콘 마돈나가 이미 보여줬다. 마돈나는 초기부터 가수와 배우의 겸업을 선언했다. 그러나 마돈나의 초기 커리어는 이미지 전략상으로 실패한 모델이었다. 마돈나는 가수로서의 자기 이미지를 그대로 스크린에 가져갔다. ‘라이크 어 버진’으로 대표되는 퇴폐적 섹시미가 ‘화려한 유혹’(1987)과 같은 영화에 액면 그대로 전이돼 있다. 대중은 MTV에서 하루에도 수차례씩 보여지는 마돈나의 동일 이미지를 보러 극장을 찾지는 않았다.
마돈나가 전략상 오류를 수정한 것은 92년작 ‘그들만의 리그’부터다. 이 영화에서 마돈나는 순박한 백치미 글래머를 연기한다. 머리도 나쁘고 발상도 어리석지만 의도는 선하다. 자신의 고정 이미지를 일정부분 조롱하고, 뒤틀어 보여주는 대담함을 발휘한 것이다. 이후 마돈나의 영화 커리어는 이처럼 자기 고정 이미지의 가벼운 뒤틀림, 소극적 보완으로 이어져있다.
섹시함은 종류가 많다. ‘딕 트레이시’의 ‘마음만은 순결한 요부’ 이미지도, ‘에비타’의 ‘당찬 야심가형 요부’ 이미지도 모두 마돈나 특유의 ‘섹시’ 베이스를 조금 뒤흔드는 것으로 가능했다. 이미지 변신의 위험부담도 없고, 대중도 미묘한 변화에 계속 흥미를 느꼈다. 마돈나는 상당기간 동안 음악과 영화, 양 장르에서 안정적인 입지를 누렸다.
이효리는 여러 가지 면에서 마돈나와 비슷한 입지에 있다. 겪고 있는 딜레마도 마돈나 초기의 그것과 흡사하다. 연예인에게 이미지 변신은 세금처럼 따라붙는 과제이지만, 동일 노선을 걸어온 마돈나의 ‘뿌리를 흔들지는 않는’ 가벼운 이미지 환기 방식을 한번쯤 힌트로 여겨봄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