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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메티와 페기 구겐하임, 그들의 삶과 예술

윤동희 |2006.11.20 14:13
조회 207 |추천 0

 

[Art Book]

 

자코메티와 페기 구겐하임, 그들의 삶과 예술

--- 20세기를 풍미한, 두 예술가의 진실성, 그리고 창조성


 

『현대예술의 거장』 시리즈가 갈수록 그 외연을 넓히고 있다. 이번에는 자코메티와 페기 구겐하임, 즉 ‘미술’로 그 지평을 넓혔다.

 

 

 

 

메리 v.디어본 지음, 최일성 옮김, 『페기 구겐하임: 모더니즘의 여왕』, 을유문화사, 2만5천원, 2006년 10월  


내가 아는 어떤 이는 자신의 책장에 꽂혀 있는 ‘현대예술의 거장’ 시리즈(을유문화사)만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고 한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글렌 굴드, 히치콕, 트뤼포, 헬무트 뉴튼, 마일즈 데이비스, 빌 에반스, 피나 바우쉬, 피아졸라, 토스카니니 등 클래식, 영화, 재즈, 사진, 무용 등 20세기를 빛낸 예술가를 깊이 있게 조망한 이 시리즈를 보고 있노라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정도란다. 책을 만들고, 책에 관한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내가 보아도 이 시리즈는 부럽기 짝이 없다. 책의 겉과 속을 찬찬히 볼 때마다, ‘이거 만드는 데 고생 좀 했겠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되지만, 세상에 이런 책을 내놓는다는 건 정말 괜찮은 일이다. 

 


‘현대 예술의 거장’ 시리즈가 11권과 12권을 연달아 펴냈다. 20세기 현대 미술계의 전설적인 컬렉터 ‘페기 구겐하임’의 생애를 다룬 『페기 구겐하임: 모더니즘의 여왕』과 키 크고 빼빼 마른 조각으로 유명한 자코메티의 삶과 예술을 묘사한 『자코메티, 영혼을 빚어낸 손길』이 그것.
페기 구겐하임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립한 솔로몬 구겐하임의 - 그녀가 평생 동안 경쟁해야만 했던 - 조카딸이다. 20세기 현대미술사를 수놓은 유명 작가들의 네트워킹을 따라가다 보면 그녀의 이름을 만날 수밖에 없는, 대표적인 후원가이자 수집가이다. 그녀로 인해 잭슨 폴록과 로버트 머더웰이 우리를 찾아올 수 있었고, 그녀의 열정적인 컬렉션이 있었기에 자코메티, 파울 클레, 몬드리안, 데 키리코, 달리, 막스 에른스트, 이브 탕기 등 당대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2001년 베니스비엔날레를 현장 취재할 때, 그녀가 살았던 집, 즉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을 방문하는 행운을 잡을 수 있었다(그녀는 1946년 전쟁이 끝나자 뉴욕 생활을 정리하고, 베니스에 정착했다. 1948년 자신의 소장품을 베니스비엔날레에 전시했다). 머리 위 천장에 칼더의 작품이 마치 아이들 장난감처럼 떠 있고, 이름만 듣던 거장들의 작품이 집안 곳곳에 그야말로 ‘아무렇지 않게’ 걸려 있었다. 그녀가 없었다면, 미국 미술계가 활력을 잃었을 것이라는 얘기가 결코 과장이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페기 구겐하임: 모더니즘의 여왕』은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메리 V. 디어본의 꼼꼼한 관찰과 고증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영문학과 비교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페기 구겐하임의 가족과 친구와의 인터뷰 등 자료 조사에 상당한 시간을 바쳤음을 숨기지 않는다. 무엇보다 저자는 평생을 얼마든지 유유자적할 수 있는, 그렇게 살아도 될 권리를 가진 그녀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했다는 사실에 반한 것 같다. 『코코 샤넬』(앙리 지델 지음, 작가정신)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역시 ‘평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철저한 자료 조사에 있는 듯하다.

 


 

제임스 로드 지음, 신길수 옮김, 『자코메티: 영혼을 빚어낸 손길』, 을유문화사, 3만원, 2006년 10월  



 

▶▶ 『자코메티, 영혼을 빚어낸 손길』, 앙상한 그의 작품에 살을 붙이다

 

 

취리히의 한 미술관에서 만난 자코메티의 작품. 부피도 무게감도 없는 길고 가느다란 형상. 자코메티의 작품은 위태로운 현실에 처한 인간의 실체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자코메티의 조각 작품을 최근에 본 건, 지난 봄 스위스 아트 기행에서였다. 취리히의 어느 미술관을 찾은 나는 내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그 유명한 자코메티의 조각 작품이 미술관 복도, 그것도 아이들이 뛰어놀고, 많은 사람들이 담배와 커피를 즐기며 담소를 나누는 한복판에 떡 하니 서 있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뻬뻬로’처럼 마른 그의 작품이 넘어지지나 않을까 걱정하던 나와 달리, 그곳의 사람들에게 자코메티의 작품은 거의 친구나 다름없었다.

 

이 책은 1985년에 출간되었다. 저자(제임스 로드)는 2차 대전 당시 파리에 거주하면서 자코메티와 직접 교류를 가졌다. 자코메티 역시 1920년대 초에 파리에 정착했으니, 제대로 된 전기인 셈이다. 그 시절이 어떤 때던가. 피카소, 마티스, 달리 등 20세기 미술사를 좌지우지한 대가들의 에너지가 유럽에 자욱하던 때가 아니던가. 동시에 제 1, 2차 세계대전의 화약 냄새가 불안과 허무라는 이름으로 유럽 대륙에 내려앉던 때가 아니었던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앵글에 잡힌 자코메티.


 

이 책이 자코메티가 초현실주의에 경도되고, 그로부터 다시 벗어나는 과정, 그리고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자신만의 스타일에 이르는 시간을 추적할 뿐만 아니라, 혼돈스런, 그렇기에 자꾸 되돌아보게 되는 20세기 초 유럽의 예술사를 함께 조망한 이유가 십분 이해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시대가 작품을 만든다는 말이 새삼 와닿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 책이 자코메티의 예술세계에 책의 전부를 할애한 건 아니다. 저자는 그의 여자 관계 등 우리가 미처 몰랐던, 아니 알 수 없었던 그의 삶을 과감히 ‘공개’하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길.

 

 

『자코메티, 영혼을 빚어낸 손길』을 읽는다는 것은 삐쩍 마른 자코메티의 조각 작품에 보이지 않는 ‘살’을 붙여나가는 것과 같다. 물론 책장을 다 덮어도, 삶과 죽음, 존재와 비존재를 고민하던, 아니 고통스러워하던 자코메티라는 한 예술가가 그토록 찾고자 했던 ‘예술의 진실’은 발견하기 힘들 테지만….

 

 

| 윤동희 _ 미술전문기자, www.abcpap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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