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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사민주의, 한국에서 설득력 없다.

김광수 |2006.11.23 20:50
조회 160 |추천 0
  
 스웨덴 경제의 본질은 유럽시장 수출 위주 산업구조
 
 인구와 산업구조간의 연관에 대한 하나의 통설은 인구가 2000만명이 넘지 않는 나라는 자동차산업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변을 둘러보면 소위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불렸던, 대한민국, 대만, 싱가폴, 홍콩 중에 자동차 산업을 갖고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그런데 이러한 통설을 뒤집는 나라가 전 세계에 딱 한나라가 있다. 그 나라가 스웨덴이다.
 
 스웨덴의 인구는 고작 800만 남짓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는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가  볼보와 사브 두개나 있다. 게다가 스카이나 같은 대형차 전문회사까지 버젓이 갖고 있다. 게다가 더 황당한 것은 국토가 넓고 인구가 1억은 되어야 가질 수 있다는 항공회사도 갖고 있다. 이것은 스웨덴 경제가 갖고 있는 특수성을 보여준다. 즉 유럽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수출위주의 산업구조가 스웨덴 경제의 본질이다. 그리고 이 경쟁력은 역사적으로 수백년간 형성된 유럽중심부와의 상호의존성이 낳은 결과이다.
 
 한때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로 하여금 유럽여행을 가지 않을 수밖에 만든 나라가 1000년 숙적 스웨덴이었고, 나폴레옹 시대 프랑스의 금속매뉴팩처, 즉 무기산업의 주요 원료공급지이자 동맹국이 스웨덴이었다는 사실은 비록 북구유럽에 속하지만 유럽중심부와의 끊임없는 교역을 통해 19세기 이후에 유럽의 주류중의 하나였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역사적 사례의 일부분이다.
 
 특히 이러한 유럽을 대상으로 하는 수출위주의 경제구조는 소위 '렌(Rehn)모델'을 집권 사민당의 정책 노선으로 채택하고 이를 강력히 시행해 나갔던 1950년대 후반부터 더욱 심화되었다.
 
 고임금과 인플레이션 억제책을 주장한 렌모델에서 기업이윤은 억제될 수밖에 없었다. 이윤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기업은 합리화를 통해서 효율성을 제고하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 도태될 수밖에 없으며, 오직 경쟁력이 강한 기업만이 성장하게 되었다. 렌 모델은 자본에 대해서는 철두철미한 시장의 원리를 적용함으로써 자본으로 하여금 오직 적자생존의 냉혹한 법칙만이 지배하는 경쟁체제로 돌입할 것을 강요했다. 그 결과 부단한 산업합리화는 스웨덴 기업경영의 핵심적인 규범으로 자리잡게 되었으며, 1960년대 이후 스웨덴의 산업구조는 급속도로 변화해 갔다.
 
 특히 렌 모델의 실시에 따라 발생하게 될 기업의 추가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시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민당 정부는 과감한 무역자유화 조치를 취했으며, 그 결과 국제경쟁력을 갖춘 수출주도형 대기업은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지만 내수지향적 중소기업의 몰락이 가속화되었다. 그에 따라 자본의 집중과 독점은 급속도로 진행되어 1970년대 중반에 이르게 되면 스웨덴은 선진자본주의 국가들 가운데 기업의 집중화와 독점화의 수준이 가장 높은 그룹에 속하게 되었다.
 
 스웨덴 사민당, 거대독점 자본과 타협하고 '공동선' 추구
 
 LO라는 한때 조직율이 100%에 가깝던 강력한 노동조합운동의 후원을 통해 정권을 잡은 스웨덴 사민당은 이러한 경제구조의 개편과정에서 시가 총액이 주식시상의 40%를 차지하는 란즈베리 그룹이라는 거대 독점체와 타협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러한 타협은 당내에서 사적소유를 폐절하고, 사회주의로 나가야 한다는 당내 좌파들의 요구를 일정한 선에서 통제하는 것을 필요로 했다.
 
 따라서 스웨덴 사민당은 당내 좌파의 불만을 막고 한편으로 자본가들의 공포를 완화시키기 위해 국민들의 복지와 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소위 “공동선”에 주력하게 된다. 사회임금의 형식으로 무상서비스가 확대되고, 그 결과 스웨덴 노동자들은 전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풍족한 삶(경제적, 문화적)을 살고 있다. 물론 이러한 사민당의 노력이 자본과 노동의 역관계에서 노동의 우위와 이에 근거한 계급타협을 전제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소위 “공동선”은 성장주의적, 경쟁력 강화라는 스웨덴 총자본의 이익과 부합하는 선에서 사민당으로서는 자신의 사회주의적 이상을 통제해야 한다. 즉 케인주의적 선순환 ( 생산력 향상-이에 연동된 임금인상-수요확대-기업이윤확대)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고, 이 선순환이 유지되는 한 급진적인 요구는 통제될 수 있었다.
 
 이 선순환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때 사민당은 위기에 몰리고, 이러한 위기는 당내에서 좌파들의 상상력을 자극시켰다. 그래서 제도적인 방식으로의 사회주의로 이행하려는 마이드너의 임노동기금안이나 연기금안 같은 발상이 등장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좌파적 상상력이 현실에서 제대로 빛을 발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즉 자본측이 그어놓은 일정한 선을 넘어서려는 경우마다 격렬한 저항에 직면했고, 자본측에게 스웨덴 아이스하키팀을 연상시키는 보디첵에 몇 번 당하고 나서는 마이드너는 늙었고 스웨덴 사민당은 상상력이 고갈되었다.
 
 스웨덴은 사민주의가 갖고 있는 약점과 강점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나라다. 사민주의가 추구하는 개량은 그 성과를 영구히 가져갈 수 없다는 면에서 현실성이 의심받는다. 그런 면에서 스웨덴 사민당은 멕시코 제도혁명당에 이어 세계2위의 장기집권(60년)을 누렸기 때문에 개량의 지속이라는 측면에서 다른 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는 성과를 낳았다.
 
 그러나 이 개량이 곳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주의 사회로 점진적으로 이행할 수 없다는 것도 사민당의 장기집권은 보여주었다. 그리고 사민주의가 본질적으로 계급타협의 산물이라는 사실 때문에 한때 사민당이 휘두르는 사회화의 칼부림은 언제나 타격범위가 거대 독점체의 안방까지는 침범하지 못한다. 이는 신자유주의 시대 세계화가 진척되고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것으로 만드는데 주력하고 있는 자본과의 투쟁에서 사태를 극단으로 몰고 가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사민주의가 설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것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자본과 타협 통해 성장의 이중창 부를 가능성 없다
 
 스웨덴 사민주의가 신자유주의 시대 사민주의적 이상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것이 소위 노동자 재교육을 통한 IT 산업의 부흥이다. 재정흑자와 고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정책의 비결은 부자들에게 세금을 걷어 노동자를 이윤율이 높은 산업에 재배치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국가자원의 효율적인 배치를 위해 소위 클러스터라고 부르는 산학지역협동체를 창안했다. 스웨덴은 90년대를 돌파해 지금껏 유럽에서는 고도성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스웨덴의 저력을 이루었던 공동체주의의 전통이 급속도로 해제 중에 있다. 그것은 노동조합 조직율의 급속한 저하(90%대에서 70%대로)로도 설명이 된다. 스웨덴의 성장모델이 지속가능한 것인가는 섣불리 결론을 낼 문제가 아니다.  
 
 민주노동당이 사민주의 정당이 될 것이라는 일부의 예상은 한국정치에서 민주노동당의 가능성을 지나치게 낙관하거나 비관한 것이다. 그것이 지나친 낙관을 한 것이라고 한 것은 한국경제의 기초가 급속히 무너지고 있는 현실과 독점은 강화되고 있으나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있는 독점체들이 노동자와 협력하려는 의사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란즈베리라고 불릴 수 있는 삼성이 무노조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사실을 상기해 보면 그건 쉽사리 이해된다.
 
 그리고 그것이 비관인 것은 한 공기 벼룩은 줄을 세워도 사람 열명은 줄을 못 세운다는 이 나라에서 파업때 마다 오와 열을 맞추는 섬뜩한 규율을 보여주는 역동적인 노동자계급이 있는 나라에서 제 아무리 노사협조주의가 기승을 부린다한들 현장에서 꿈틀대는 전투성이 그리 호락호락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기구에 대한 존경심이 전혀 없는 노동자 대중이 국가기구의 변용, 혹은 개조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다는 것은 지나친 상상이다. 경찰과 검사, 그리고 판사들에 의해 구속과 손해배상으로 모욕당하는 노동자계급이 세상을 뒤집는 것에 대해 못마땅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자본가계급의 정치적 무능은 이 땅에서 역사적인 것이다. 본원적 축적과정이 애시당초 부패의 산물이었고, 지금도 양극화현상으로 배가 터지는 강남부자들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이 존재하는 나라에서 자본과 타협을 통해 성장의 이중창을 민주노동당이 부를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다시피 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여파로 국내 경제의 기초가 산산이 파괴되고, 특히 생산기술의 핵심을 이루는 노동력의 해체를 겪고 있다. 이러한 한국경제가 선순환구조로 전환될 가능성은 사라지고 있다. 게다가 IMF 이후에 노동자들의 가계소득이 계속해서 줄어들면서 내수불황에서 빠져 나갈 방법이 없다. 자본과 노동의 타협의 커녕 적대가 계속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이러한 조건에서 정신을 못 차리면 역으로 자유주의 부르주아 정치세력의 보조세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노동당은 세상을 혁명적으로 바꾸는 세력으로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를 더 고민해야 한다. 어설픈 학자들의 유비적 연구(대응하는 사물의 유사성에 주목하는)에 미혹될 시간도 여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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