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하아시안게임 대표팀 결단식이 열린 지난 22일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 파란색 상의, 베이지색 치마를 입고 왼쪽 가슴에 태극마크를 단 작은 소녀가 눈에 띄었다. 앳된 얼굴과 유달리 작은 키, 그리고 가냘픈 몸매. 체조국가대표 배물음(17·광주체고)이었다. 국기에 대한 경례·애국가·선수단 소개·이어진 선서…. 물음이는 선수 소개 자막에서 자기 이름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초등학교 때 체조를 시작한 뒤 하루도 빼놓지 않고 꿈꿔온 국가대표. 그리고 아시안게임 출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었다.
그러나 물음이와 기쁨을 함께할 사람에 아버지, 어머니는 없었다. 대신 누나따라 체조 국가대표를 꿈꾸는 남동생 가람이와 그동안 도와주신 선생님들이 같이했다.
7살 때 집을 나간 엄마, 엄마가 떠난 뒤 술 때문에 일찍 세상을 떠난 아빠. 남은 건 철모르는 남동생 가람이. 밥짓기·빨래·가람이 뒷바라지·공부와 훈련….
물음이의 생활은 어린 소녀가 버티기에는 벅찼다.
2001년 12월 경향신문 매거진X에 이들 남매의 사연이 소개된 후 십시일반 독지가들의 사랑이 모였고 5년이 지난 지금 자랑스러운 태극마크로 결실을 맺었다.
어머니의 가출에 이어 초등학교 6학년때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 고아가 된 물음이 남매는 잠시 할아버지·할머니와 살았을 뿐, 물음이가 중학교에 입학한 후로는 줄곧 최규동 광주체고 감독 집에서 살고 있다.
“아무 걱정없이 지내며 훈련하고 있어요. 감독님이라고 부르지만 아빠 같은 분이죠.”
물음이는 그간 자신을 도와준 선생님의 이름을 하나씩 되뇌었다. 
“지금도 엄마라고 부르는 나윤경 선생님, 중학교 임영순 선생님, 최규동 감독님, 박철희 코치님…. 고마운 분들이 참으로 많아요. 좋은 성적으로 보답해야 하는데….”
성적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말끝이 흐려졌다. 메달 전망은 밝지 않기 때문이었다. “동메달이라도 따고 싶은데 중국·북한이 너무 세서 잘 모르겠어요.”
메달에 대한 소망만큼 물음이는 “저처럼 어렵게 운동해온 어린이에게 꿈을 주는 체육선생님이 빨리 되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엄마·아빠 같은 선생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진짜 엄마’에 대한 대화로 이어졌다.
“어릴 땐 엄마가 보고 싶어 많이 울었어요. 그래서 ‘엄마 보고 싶으냐’고 묻는 어른들이 싫었고요. 지금도 딱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어요.”
엄마얘기에 물음이는 눈을 깜박거리며 고인 눈물을 눈 속으로 모았다.
“이번 아시안게임 마루, 평균대에서 8위까지 겨루는 결승에 나갔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8등에만 들어도 엄마를 찾을 수 있나요? 엄마를 찾게 도와주세요. 엄마 이름(이경숙)과 주민번호도 알고 있거든요.”
아시안게임 메달보다 엄마를 보고픈 간절한 소망. 그러나 물음이는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메달을 못따면 어떠랴, 엄마를 다시 보지 못하면 또 어떠랴.
이미 어려운 어린 시절을 꿋꿋하게 이겨낸 데 대한 자랑스러운 훈장으로 가슴에 당당히 태극마크를 달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