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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는 이.

조규영 |2006.11.24 17:04
조회 39 |추천 0

 

 

나에게 옷을 사는 일은 여간 성가시고 신경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상하게 매장안에만 들어가면 내 올바른 이성이 마실을 간 것 마냥,

 

점원에게 이리 저리 휘둘리기 일쑤.

 

잔뜩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쇼핑백을 들고 매장을 나서면

 

그 때서야 귀가한 이성이 슬슬 비아냥 거리기 시작한다.

 

산덩이처럼 커진 불안은 집에 돌아와 산 옷을 다시 입고 거울 앞에 섰을 때,

 

결국 터지고 만다. 펑.

 

망연자실.

 

 

우스꽝스럽게 사이즈가 작은 옷을 억지로 입고 있는 모습,

 

어울리지도 않는 색의 옷을 광대처럼 입고 있는가 하면,

 

어떤 땐 과연 이 옷이 남자가 입는 옷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문제는 이것이 끝이 아니다. 환불이나 교환을 하고자 할 때의 끔찍함이란.

 

손님이 벌써 입어서 늘어났다느니,

 

잘 어울리는데 왜 그러냐느니 - 한번은 그 말에 홀려 다시 돌아온 적도 있다.-

 

어제 그 점원이 비번이라는 말만 하며 딴청을 피우는가 하면,

 

잠시 기다리라며, 점심 밥을 먹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 너무 오래 입어 목이 늘어진 옷을 다시 주워 입으며,

 

단 한번 입은 옷을 - 그것도 집안에서 - 옷장에 비축시켜버린다.

 

언젠가 전쟁이라도 나는 날이면 입을 수 있을지도 몰라.

 

포성과 총알 속을 알록달록 무지개 빛 스웨터를 입고 달리는 모습이란..

 

 

어쨌든 나는 또 다시 옷을 사러가야할 시점에 놓였다.

 

이번에는 이성을 단단히 붙들어 매고,

 

절대 그 여시들에게 홀리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백화점 매장으로 발을 들여 놓았다.

 

 

10분 후, 이성이 끈을 풀고 달아난 것도 모르고. 이 옷, 저 옷, 점원이 추천해주는 잘 안 팔리는 옷들을 입어 보느라 정신이 없을 때였다.

 

저 쪽 코너에서 한 점원이 소리를 빽 지른다.

 

"아니 제가 어제 환불 불가능 하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손님! 왜 또 오셨어요? 벌써 입고 늘어져서 교환도 안된다고 했잖아요! 이해 못하셨어요?"

 

점원 앞에는 서 있는 사람은 놀랍게도 윗집에 살고 있는 Kalte Hand씨였다.

 

늘 같은 넝마처럼 낡고 큰 코트를 두른 채였다.

 

흥분한 점원이 뭔가 그에게 다시 쏘아대려 하자, 그가 특유의 느리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아가씨. 난 그저 옷을 사러 왔을 뿐이오."

 

여 점원은 약간 당황한 듯, 작은 소리로 웅얼거리며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고

 

진열된 티셔츠를 둘러보던 Kalte Hand씨의 얼굴엔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평소에 그를 알고 있던 나는, 그가 뭔가 신나는 일을 계획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내가 다시 입었던 옷을 벗고, 점원의 설탕발린 입놀림에 빠져들고 있을 때,

 

Kalte Hand씨는 드디어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을 매몰차게 몰아댔던 점원을 쫓아다니며, 갖가지 주문을 해댔다.

 

입어 보겠다. 더 큰 사이즈를 갖다 달라. 입어 보니 너무 작다. 큰 사이즈는?

 

다른 디자인은 없는지. 혹시 어울리는 바지를 추천해 줄 수 있는가.

 

바지를 입어보니 티셔츠가 바지하고 어울리지 않는다. 다른 티셔츠를 추천해달라.

 

점원이 불쾌함과 화가 뒤섞여 붉으락 푸르락한 얼굴로 옷을 찾아오자 그는 다른 옷을 들고 서서 

 

'이 옷이 더 마음에 드는데.'라는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매장 곳곳을 휘젓고 다니던 그가 어제 샀다던 티셔츠 앞에 섰다.

 

이미 지칠대로 지친 점원을 향해 그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 이 티셔츠 너무 잘 늘어나는 건 아니겠지요?"

 

점원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별로 마음에 드는 옷이 없군요. 귀찮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매장은 정말 친절하군요."

 

곧 울것 같은 표정의 점원 앞에 서 있던 Kalte Hand씨는 매우 만족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멀리 서 있던 나를 발견하곤 한번 손을 흔들더니 빈손으로 매장을 나갔다.

 

 

잠시 후 그에게 한눈을 팔고 있던 나에게, 옆에 서있던 점원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이 옷.. 으로 하시겠어요..?"

 

그녀의 눈엔 약간의 두려움 같은 것이 스쳐 지나간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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