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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짐보, 구로사와 아키라, 1961

이상원 |2006.11.25 00:26
조회 13 |추천 0

- 유머가 있고, 정의가 있다. 오락영화의 모범이요, 전형이다. 이런 위대한 오락영화를 만들면서도 시대를 배경으로 삼고 정의를 내세울 줄 아는 것이 구로사와 아키라의 특징인 듯 하다.

 

- 여전히 사무라이의 칼은 악당들을 베는 데 사용된다. 일본에서 사무라이 정신은 역시 위대한 것인가 보다. 영화의 배경은 도쿠가와 막부가 막을 내리는 시기이다. 따라서 통치력이 감소하여 폭력을 가진 자가 어떤 지역의 지배세력으로 군림하게 된다. 사무라이는 몰락계급이 되어 이 지역 저 지역을 떠돌면서 칼솜씨로 돈을 벌어야 하는 처량한 신세가 된다. 이 영화는 이렇게 칼잡이가 지배계급이던 막부시대가 저물던 때, 따라서 동시에 새로운 세상인 메이지시대가 태동하던 시기에 사무라이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에 대한 작품이다. 이건 마치 미개척 무법천지 서부가 저물어가고 자본주의와 국가권력이 서부를 지배하기 시작하던 때에 총잡이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에 대한 작품들인 샘 페킨파의 서부영화와 유사한 지점에 있다. 페킨파에게 그것이 은행, 철도, 자동차, 기관총 등으로 등장했다면, 구로사와 아키라에게는 권총으로 등장한다. 사무라이 영화에 등장하는 권총이라, 이것이야말로 충격이다. 동일한 시대에 미국의 서부에서는 총잡이들이 판치고 있었지만, 일본에서는 막 권총이 들어온 것이다. 역사는 어디로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영화들만 보더라도 과학문명을 선도함으로써 근대를 열어제끼고 지배자가 된 서구, 미국과 그렇지 못한 아시아 기타지역, 일본의 역사 그 단면을 알 수 있다. 또한 서구의 문명을 일찌감치 받아들이기로 한 일본의 미래 그 전조를 느낄 수 있다. 바야흐로 명치유신이 눈앞에 온 것이다. 이제 막부는 끝났고 총을 든 천황의 군대가 지역에서 군림하는 폭력배들을 잠재우고 사무라이를 역사 속으로 봉인할 순간이다. 막부를 지키려던 신선조의 칼이 천황 군대의 총에 무너지는 순간이며, 총의 문명이 칼의 문명을 집어삼키는 역사의 순간이다. 따라서 사무라이 산쥬로는 뒷모습으로 등장해 뒷모습으로 떠나간다. 그는 사라져가고 있는 중이다. 요짐보는 이 사라져가는 사무라이가 마지막으로 정의의 칼을 휘두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사무라이에게는 정의가 있고, 소멸에는 방식이 있으며, 역사의 슬픈 순간에도 유머는 있다. 요짐보는 이것을 이야기한다.

 

- 이 영화의 불법리메이크판인 <황야의 무법자>와는 느낌이 다르다. <황야의 무법자>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냉정할 뿐 아니라 냉소와 증오로 찌든 인물이다. 그는 악당들로부터 한 가족을 구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정의롭다는 생각도 딱히 들지 않는다. 그러나 <요짐보>의 산쥬로는 그렇지 않다. 그는 보다 정감이 가고 유머가 있어 보인다. 그는 똑같이 한 가족을 구하지만, 자신의 분노를 드러내며, 그의 행위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보다 정의감이 있어 보인다. 똑같은 행위인데도. 물론 딱딱한 남성성 역시도 시가를 문 클린트 이스트우드 쪽이 강하다. 산쥬로는 성냥을 물고 등장한다. 주윤발이 시초가 아니었던 것이다.

 

- 구로사와 아키라, 샘 페킨파, 세르지오 레오네. 이들의 계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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