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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olling Stones -As Tears Go By

방영민 |2006.11.26 22:01
조회 71 |추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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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 스톤스는 60년대가 끝날 때까지 언제나 인기 랭킹 2위였다. 최강의 자리는 늘 라이벌인 비틀스에게 빼앗겼다. 그럴만도 했다. 비틀스의 노래가 밝고 깨끗한 데 반하여 그들의 노래는 거의 끈적끈적하고 지저분했다. 비틀스가 아침이라면 롤링 스톤스는 밤이었고 비틀스의 활동무대가 푸른 초원이었다면 롤링 스톤스의 터전은 어두침침한 묘지였다.

 

신분으로 보자면 그들은 결코 록을 해선 안될 위인들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어울리지 않게 악동 노릇을 자처했다. 그것은 노동계급 청춘에 의한 하위문화라는 '록의 헌법'을 거스르는 위헌 사례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도리어 그러한 '저격 미달'을 의식해서인지 비틀스보다 훨씬 강도 높게 록의 규율을 준수했다.

 

롤링 스톤스는 기꺼이 악동이 되기를 희망했다. 말쑥한 헤어스타일과 정장 차림으로 비틀스와 겨룬다는 것은 뱁새가 황새를 쫓는 격이었다. 데뷔 당시 비틀스 흉내를 내다가 참패를 맛본 그들은 매니저 앤드류 루그 올드햄의 권고에 따라 곧바로 정반대 이미지로 '차별화'하여 재도전을 단행했다. 그들은 비틀스에 이어 1965년 마침내 미국 정복에 성공했다. 이때부터 그들은 트레이드마크는 불량, 퇴폐, 반항, 비행, 섹스 그리고 말썽과 같은 '하위정서'가 되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록에 온몸을 던진 대가로 막대한 부와 명성을 쌓기 시작한 뒤부터 록의 '낙오자 정서'와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록이 재도권의 스타가 아닌 거리의 청년들에게 소유권이 있음을 입증한 펑크 밴드들에게 공격 타깃이 되는 것은 당연했다. 이와 관련하여 섹스 피스톨스 자니 로튼이 "롤링 스톤스와 후는 비위에 거슬린다. 그들은 더 이상 젊은이들에게 제시할 것이 없다"고 성토한 것은 유명하다.

 

그들은 순식간에 '록의 공룡'으로 둔갑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들은 일말의 '반성'도 없었다. 오히려 의기양양하게 1978년 당시의 인기 음악인 디스코를 채용한 '네가 그리워'를 노래하며 제도권 한복판에서 유유자적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위기 속에서도 록의 공격성을 잃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펑크 록은 펑크 세대에게 맡기고 자신들은 자신들이 오래 전에 터득한 '그들만의'원시적인 로큰롤을 했다. 록의 뿌리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원형 록을 보존하며 그 '충실성'을 옹호한 것이었다.

 

이제 멤버들 대부분의 나이가 60을 넘어섰다. 롤링 스톤스는 오랫동안 록이 가지는 열정과 흥분에 몸바치면서 쌓은 금자탑에 또 하나의 글귀, '록은 늙어서도 할 수 있다'를 새겨 넣었다. 그러면서 펑크 진영의 지탄도, 얼터너티브 록의 대공세도 거뜬히 극복했다.

 

믹 재거는 1988년 이렇게 말했다.

 

"만약 로큰롤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도 배우나 작가, 감독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렸을 때 록큰롤이 나를 휘어잡았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여기 있는 것이다"

 

그의 롤링 스톤스 앨범에서 밥딜런의 고전 '구르는 돌처럼(Like a rolling stone)'을 불렀다. 이 한 곡이 아마도 이 앨범이 말하려는 바와 그들의 음악과 역사를 축약하는 노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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