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아랍의 국가들이 홍해와 걸프해 그리고 지중해를 끼고 모여있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이러한 아랍국가들을 끌어안고 있으며 이슬람의 성지이다.
일본인들은 일반 관광비자를 받아 한정된 날동안 입국이 허용되고 있으나 한국인 일반 관광비자는 아직 불허하고 있다.
이집트와 바레인 그리고 아랍에미레이트와 예멘 주재 사우디 대사관을 방문하여 차례대로 비자를 신청하였으나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다.
기약도 없이 기다리라는뜻의 '인샬라'만 주문하지 구체적 설명이 없다.
그도 그럴것이 리비아와 사우디 비자는 일일이 자료를 본국에 보내어 본국 외무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특이한 절차를 가지고 있다.
원래의 계획으로는 요르단이나 시리아로부터 사우디를 방문할 마음을 가졌으나 결국 불발로 끝이났다.
더구나 내가 비자를 신청할 당시는 이슬람 교도들의 성지 순례 기간이었으므로 더더욱 불가능하였다.
불합리한 사우디의 비자제도를 투덜거리며 아랍의 다른 국가들을 방문하였다.
사우디는 아시아의 중국처럼 많은 주변나라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이슬람교의 순수함을 지키고 있는 정통 이슬람국가이다.
사우디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거리가 멀어질 수록 이슬람 고유의 종교성은 퇴색되고 변형이 되어있다.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와 남아공까지 뻗어있으며
중국의 신장지역과 말레이지아와 인도네시아까지 이슬람교가 전파되어 있다.
사우디를 중심으로한 중동의 이슬람교도들과 기타 중앙아시아나 서남아시아의 이슬람교도들간에는 신체적으로 피부색으로 다르다.
걸프해와 홍해를 끼고있는 이른바 중동의 남자 이슬람교도들은 피부가 하얗고 배가 튀어나온 비만형이나,중동을 벗어난 기타 이슬람교도들은 대체로 검으스르한 피부색에 마른 체구이다.
예멘이나 시리아를 중동에서 부유하지 않은 국가들로 초라한 국민생활상을 보여준다.
반면에 쿠웨이트,바레인,카타르,아랍에미레이트,오만,요르단등은 생활이 여유가 있다.
특히 쿠웨이트와 아랍에미레이트는 눈부신 경제성장과 서구적인 질높은 국민생활을 보여준다.
최근에는 카타르의 괄목할 만한 성장도 눈여겨 보아야 한다.
특히 쿠웨이트나 아랍에미레이트에는 파키스탄인,인도인 그리고 중국인들이 대부분의 허드렛일을 맡아 하고 있다.
식당으로부터 카센타에 이르기까지 손에 기름이나 흙을 만지는 일은 거의 아랍인외의 담당이다.
아랍인들은 오일달러의 도움으로 하루의 일과를 기도와 쇼핑 그리고 찻집에서 길다란 담뱃대를 물고 있는것으로 채운다.
온갖 값비싼 외제차를 타고 다니며 담배나 간단한 물건을 살경우에도 차안에 앉아서 경적만 울린다.
그러면 가게안에서 외국인 고용인이 달려나와 주문을 받아 가져다 준다.
아랍인들의 가정에서도 부엌일부터 화초를 가꾸는일까지 모두 파키스탄인이나 인도인이 담당한다.
아랍의 이슬람 가정의 특징상 여자들의 생활은 베일에 싸여 있어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남자들은 하루 5번 모스크에서 예배를 하고 나머지 시간은 비스듬히 자리에 앉아서 차나 간식을 즐긴다.
운동이나 빠른 발걸음을 하지않는 전통적 문화로 활동이 거의없어서 비만형으로 배둘레가 크다.
아시아의 중국인처럼 음식을 먹는양도 매우 많다.
아랍에미레이트의 두바이에서 아부다비를 거쳐 오만의 수도인 무스캇을 들어가 예멘의 비자를 다시 받았다.
오만에서 예멘까지 갔다가 사우디 입국이 좌절되자 다시 오만을 거쳐서 아랍에미레이트로 돌아왔다.
예멘의 수도인 사나에서 비행기를 타야만 주변국가나 한국으로 갈수 있는 지리적 제약이 있었다.
자전거를 가지고 있으므로 비행기를 타는 것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습관이 있다.
시간은 다소 걸리더라도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아랍에미레이트를 다시 방문하고 싶었다.
아랍에미레이트의 아부다비 시내에서 말라깽이 인도인이 운전하는 택시에 치었다.
자전거를 임시로 수리하여 두바이로 돌아왔다.
아부다비에는 고급자전거를 취급하는 가게가 없었고 이란으로 가는 배를 타는 항구도 두바이 근처에 있기 때문이다.
두바이에 도착하자 해가 졌다.
공항방면으로 이동하다가 공원을 지나가고 있었다.
현대식 공원에는 불만 켜져있었는데 두명의 아랍인이 조깅을 하며 나타났다.
그중의 말쑥하고 매너있는 한명이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어디에서 왔읍니까?""자전거를 좋아합니까?" 라고 물으며 호기심을 가졌다.
10여분을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정체를 알게되었다.
알고보니 먼저 이야기를 꺼낸 고등학생 정도의 남자아이는 아랍에미레이트의 왕족의 자손이었다.
옆에 따라다니는 또래 아이는 예멘에서 온 시중이었다.
쉭자히드라는 그 아랍 학생은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특별한 스케줄이 없으면 초대하고 싶다고 하였다.
이미 나의 자전거는 그 왕족 학생의 손에 넘어갔다.
자신도 그런 유사한 브랜드 자전거를 가지고 있으며 원하면 자기가 새 자전거를 선물로 줄 수있다라고 하였다.
고등학생정도의 유약한 외모였으나 말과 태도는 사려와 절도가 있었다.
능숙하게 자전거를 다루며 자동차가 있는곳으로 함께 이동하였다.사막에서 적합한 도요타 지프의 문을 열고 자전거를 실었다.
시내에서 다소 벗어나서 한가한 도로를 달리더니 어두컴컴한 가로등이 켜져있고 조용한 주택가로 들어갔다.
옛날 한국 정승들이 살던 집처럼 커다란 대문이 나란히 두개가 열려있었다.
대문의 한쪽은 안채로 들어가는 길다란 정원을 따라 주차장 있었고 또 다른 대문의 안에는 약 300여평짜리 별채가 있었다.
같이 차에서 내려서 일단 별채로 안내를 받았다.
서울의 구청이나 시청 현관문과 같은 형태의 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중앙통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자주색 양탄자가 깔린 온돌방이 보였다.
한쪽방의 크기가 약 60평은 되어 보였다.
이슬람 국가의 모스크 내부처럼 전통적으로 자주색 양탄자가 깔리고 등을 기댈수 있는 딱딱하고 커다란 목침이 놓여있다.
먼저 화장실과 침실 그리고 샤워실을 안내 받았다.
일단 샤워를 하라며 샤워실로 안내를 하였다.
샤워를 하고있는데 옷을 갈아입으라며 이슬람 전통 복장을 들여 보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인도인으로 보이는 집사가 안내를 하였다.
집사는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임에 틀림이 없는 치밀한 언행을 구사하였다.
쉭자히드라는 왕족의 아들처럼 영어를 풍부하게 구사하였다.
안내된 자리에 앉으니 차와 다과가 나왔다.
음식을 먹은지 몇시간도 되지 않은 상태였으나 분위기 탓인지 다시 손이 갔다.
이미 저녁을 먹었으니 다과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이야기를 하였으나 다시 음식이 차려졌다.
그렇게 쉭자히드 왕족집에 몇일동안 머물면서 가장 행복한 고통이라면 처리하지 못할 만큼의 음식이 제공되는 것이었다.
음식을 많이 남기면 다음에는 적게 나오겠지하고 하였으나 때만되면 음식은 차고 넘쳤다.
하루 세끼와 가지각색의 음료와 다과로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틀째 되는 날 인도 시중이 정중히 쉭자히드의 부친인 쉭모하메드가 만나고자 하니 준비하고 기다리라고 전갈을 전하였다.
얼마후에 인도인 시중과 함께 쉭모하메드라는 집주인이 나타났다.
자신은 이미 나에 대하여 듣고 있었으며 집처럼 편안히 쉬다가 떠나고 싶을 때 떠나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런저런 질문을 하였는데 주로 한국에서의 생활과 자전거 여행을 하게된 동기와 체험담에 대하여 질문을 하였다.
매 예배때마다 나타나서 살펴보고 모스크로 갔다.
그 집의 주변에는 다른 주택이 두서너밖에 없었으며 거의 모든 대지가 이 왕족의 부속 대지였다.
그 왕족의 장남 소유의 커다란 요트가 도로변에 있었고 그도로변의 맞은편에 있는 500여평 규모의 개인농장 내에 모스크가 있었다.
그러니까 그 왕족의 가족과 일꾼들을 위한 전용 모스크였다.
개인 농장에는 사슴부터 독수리까지 사육이 되고 있었다.
특히 아랍의 왕족들은 독수리를 대리고 사막에 가서 훈련시키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최근에는 왕족들이 서구의 영향을 받아서 대형 요트놀이와 스포츠카를 즐기는 추세로 변하였다.
쉭모하메드의 두아들도 자동차 스피드를 즐겼다.
왕족이라고 하지만 일반인과 차별이나 문턱을 두지는 않았다.
일반인이 출입하는 식당이나 가게를 드나들고 특별히 거리감을 두지는 않았다.
저택의 대문도 24시간 열어두었으며 수위나 간수가 없었다.
누구든지 자유롭게 출입을 할 수있다는 의미이다.
아부다비에 있는 칠성 호텔 역시 아랍의 주변국가 왕족들이 이용할 수 있게 배려 차원에서 만들었지만 일반인이나 관광객들에게도 24시간 열려있다.
얼마전 한국의 모잡지에서 아부다비에 있는 칠성호텔에 대하여 언급을 하였는데 사실과 다른것이 있다.
입장료가 얼마이고 가격이 최하 1000불부터라고 보도를 하였다.
사실과 틀리는 기사이다.
입장료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며 가격도 최저요금은 600불정도로 저렴하다.
아랍에미레이트에서 '쉭'자가 들어가는 이름은 왕족이라는 뜻이다.
크레딧 카드에도 왕족이라는 의미의'쉭'자가 인쇄되어있다.
쉭자히드의 부친인 쉭모하메드는 신중한 자세로 권유하기를 아랍에미레이트에서 남은 일생을 함께 살자는 것이다.
힘들게 자전거로 세계를 다니지말고 자신들과 함께 항공편을 이용하여 편안하게 여행을 하자고 하였으며 원하는 사업도 하며 배우자도 찾아주겠다고 하였다.
고마운 말이었지만 즉시 거절하였다.
행여라도 미련을 남겨주면 서로 고민을 하게 될것이었다.
그러나 쉭모하메드는 좀더 생각을 하라며 방을 나갔다.
그러면서 한국으로 가는 항공편을 확인하여 주겠다고 하였다.
일단 한국에는 항공편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이전에 이야기가 되었다.
고등학생인 쉭자히드가 나를 아주 좋아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왕족의 달콤한 제안을 일거에 거절을 하자 주변에 지켜보던 집사나 시중들은 놀라는 표정이다.
여태껏 왕족이 제안하여 거절하는 사람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고 인도 시중이 귀뜸을 주었다.
사실 아직도 보아야 할 나라들이 남아있었으며 하나의 종교에 나를 묶어두고 싶은생각이 없었다.
나의 마음에는 국가간의 국경도 없었고 종교적 국경도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