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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읽고 있는 정신분석학 에세이집 - 김형경의 <

강민정 |2006.11.29 01:52
조회 66 |추천 0

 

 

 요즘 읽고 있는 정신분석학 에세이집 - 김형경의 .

 

 일전에 그녀의 소설 을 읽은 적이 있다. 정신병리학 임상보고서로 보아도 손색없을 정도로 치밀한 구성을 자랑하는 소설이었지만 인간들의 다양한 감정인 우울, 불안, 공포의 근원을 모조리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결핍'으로 보는 것이  불편했다.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의 원인을 '결핍'으로 보는 것은 동의 하지만 '아이와 어머니의 관계'에서 아버지가 부재하는 사실이 못마땅스러웠다. 결핍 원인의 책임을 어머니에게로 모두 전가하고 아버지의 자리는 비워둔 이 지점에서  정신분석학의 아버지인 프로이트는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정신분석학에 '집착'하는 김형경 역시 이런 비판을 피할 수는 없어보인다.

 

 그녀의 책 에서 '어머니(엄마)'를 '부모'로 대체하여 읽는 다면 책의 내용은 적극 권장할 만한다. 특히 '분노', '의존'. '중독'에 대한 부분에서는 나는 한줄 한줄을 대충 지나갈 수 없었다. 정식분석학에 따르면 분노는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하나가 '대상 상실에서 오는 분노' 라면 또 다른 하나는 '자기애적 분노'이다. 전자는 많은 사람들이 연인과의 이별을 통해서 느끼는 감정으로 이별한 현재를 받아 들일 수 없어 분노하는 것이다.

 

 후자인 자기애적 분노의 예로는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이 자신에게 인사를 하지 않고 지나가거나(렌즈를 착용하지 않아 보지 못 할 수도 있는데),  자신의 결과물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김형경에 따르면 자기애적 분노의 원인은 유아시기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사랑이 충분하지 못해 결핍의 상황에 놓인 아이가 자기애적 분노의 감정을 자주 겪는 다는 것이다.

 

 나와 자주 마주치는 감정 중에 하나가 자기애적 분노이다.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헌신하는 어머니를 둔 나로서는 왜 이런 감정을 겪게 되는지 쉽게 납득할 수 없었다. 나름의 추론 끝에 얻은 결론은 이렇다.

 

 내가 태어났을 무렵 어머니는 작은 음식점을 운영하셨기에 육아와 가게운영을 동시에 병행해야했다. 언제간 어머니는 " 내가 가게 일 때문에 바빠서 너를 방안에 혼자 놓아둔 적이 많아. 그런데 너는 방바닥이 뜨거운데도 울지 않고 땀만 뻘뻘 흘리고 있는거야. 엄마 바쁜 걸 어렸을 때 부터 알았던 거지, 어린 것이 얼마나  애처롭던지.."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렸을 때 부터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어머니의 노동이 힘든 것을 알았던 나, 더구나 여동생이 태어나면서 더더욱 나는 어머니에게 투정을 부릴 수가 없었다. 그러한 상황이 지속되다보니 나는 어머니를 필요로 하는 욕망을 드러낼 수 없었고  혼자서 그 욕망을 억눌러야 했다.

 

 여기다  '인정욕구'가 더해져 나의 '자기애적 분노'는 커져만 갔을 것이다. 중노동에 시달리는 어머니를 위해 어려서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아 어머니를 기쁘게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를 보다 더 기쁘게 하기 위해 선생님이든 이웃 어른들이든, '타인으로부터 인정' 욕구는 날로 커져갔고, 그 인정 욕구가 거절당했을 때 나는 극도록 심한 분노감에 휩싸여야 했다.
 


 '그랬구나, 내가  의식하지 못했지만 나의 유년시절의 결핍이 지금의 나의 분노를 만들었구나.'

 

 

 김형경은 책에서 '의존'감정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상대방을 위해 사는 사람과 자신의 모든 일을 다른 사람이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두 사람이 있다. 이 두 사람  중 누가 더 의존적일까? 많은 사람들은 후자인 사람을 택하겠지만 김형경에 의하면 둘 다 의존적인 사람이다. 희생을 감수하는 사람 역시  자신의 희생을 받을 대상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그 역시 의존적인 사람이다. 단지 그는 '헌신성', '자주성'이라는 가면을 쓰고 '의존성'을 은폐하는 것이다. 의존의 상태가  심각하면 '중독'이 된다. 나는 여태 내가 자립적이고 헌식전인 사람이라 생각해왔다. 그리고 언제나 조직을 위해서 내 개인을 희생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그런 감정의 이면에 '의존적인 나'가 있다는 것이 몹시 놀랍다.

 

 

 '나 역시 그토록 의존적인 사람이었구나, 그래서 쉽게 무언가를 위해 희생하고, 그것에 의존하고 중독되었구나'

 

 

 을 읽으면서 과거의 수많은 나 -'불안해하는 나', '분노하는 나'-와 직면할 수 있었다. 불안과 공포, 분노의 원인은 외부에 있지 않았다. 내부에 있었던 것이다. 바로 나에게 말이다.

 

 탓닉한 선생님의 말이 기억난다. 

 "화는 적대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 안의 '아기'이다."

 이젠 내안의 분노와 불안을 적대의 대상으로 여겨 없애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그 감정들을 아이로 보고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간구해야겠다. 이렇게 나는 '나'와 화해하면서 살아가려고 애쓰는 중이다. 왜 진작 나는 '나'와 화해하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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