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흔히 정략결혼하면 ‘아주 나쁜 것’으로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정략결혼이 나빠? 정말이야? 그런데 왜 정략결혼이 나쁜지 생각해 봤는가? 뻔하다고? 그래, 뻔하지. 인생지사중대사건으로 치부되는 결혼인데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아주 나쁜 짓’이다. 그런데 유비와 손상향의 결혼이 그렇게 ‘욕 먹을만한 정략결혼’인가 하는 점이다.
사랑이란 왕좌도 버릴 만한 강력한 러브 임팩트를 발산하는 감정의 지배욕망이다. 그러나 그 ‘감정의 지배욕망’이라 불리우는 사랑조차도 상대를 딱봐서 3초면 ‘사랑할 상대’인지 아닌지 그 즉각 결판이 나며, 그렇게 해서 사랑을 했다손 치더라도 3년이면 ‘사랑 호르몬’이 사라지게 되는 허망한 감정 역시도 사랑이라는 감정이다.
더군다나 삼국시대의 ‘정략결혼’이라는 것은 굳이 '정략결혼‘이라는 말을 붙여야만 할 상황인가하는 점이다. 그 시대 ’결혼‘이라는 것은 가문대 가문의 만남의 결합이 ’결혼‘이라는 것이거늘 그것이 어찌 ’정략결혼‘이겠는가. 결혼자체가 정략결혼인데 말이다. 노예들은 주인이 결정해준 이들과 결혼을 해야하는 바요, 자식들은 아비가 정해준 베필과 결혼해야 하는 바이다. 그것이 굳이 조선, 중국, 일본으로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 여자만 손해를 본다는 페미니즘 시각에서만 볼 필요도 없다. 아들이라고 자기 멋대로 결혼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닌 시대이니 말이다. 따라서 당시의 ’정략결혼‘이 욕먹을 것은 아닌 것이다.
더군다나 조조라는 강대한 적을 코앞에 둔 약소국 들로서는 ‘연합, 동맹’이라는 언제 깨어질지 모르는 외교적 서약에만 의지할 것이 아닌 무언가가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결혼’이지 않은가. 손권의 동생 손상향과 촉의 우두머리 유비와의 결혼은 약소국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그네들이 헤어지지 않으면 깨어질 수 없는 영구불변한 동맹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론일 수 밖에 없는 셈이다.
당시에 어느 누가 ‘자기 멋대로 결혼’을 할 수 있는 세대가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없다. 자유연애라는 개념이 언제 발생했는가? 우리나라에서는 1920년대에 등장한 사상이면서 전세계적으로는 부르조아 혁명 이후 ‘남자’의 자유연애 사상이 장착을 하고 - 남자의 자유연애 사상이란 남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와 결혼할 수 있고, 여자는 아버지나 혹은 집안에서 정해준 사람이랑 결혼을 해야하는 - 1850년대 여성의 참정권을 주의주장하기 시작한 페미니즘이 등장하면서 ‘여성도 남성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라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해서 1900년대 초반에 ‘남녀자유연애사상’이 기반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자유연애사상은 이광수의 ‘무정’에서 드러나고 있지만 그보다 훨씬 전인 1460년대 김시습의 ‘금오신화’에서도 자유연애사상은 드러나고 있으며, 서양에서도 1597년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나타나고 있으니, 이념의 연혁은 그다지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왠 쓸데없는 사상이야기를...
당대의 ‘결혼’이라는 것은, 더군다나 한 국가를 대표하는 이들의 결혼이라는 것은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국가적 필요에 의한 결혼이었음은 두말할 이유도 없다. 여포가 자신의 딸을 원술과 결혼시키려고 했던 거나, 손권이 관우의 딸과 결혼을 시키려고 했던 것들 모두가 나라의 앞날을 위한 결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손권의 동생 손상향의 결혼이 ‘정략결혼’으로서 욕 먹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이는 오국태가 손권을 불러다 혼내는 것에서 나타나듯이 ‘나라의 가장 어른인 자신이 내 딸의 결혼식을 모른다는 것’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오국태는 유비와 손상향의 결혼에 대해서는 무한한 애정과 깊은 신뢰감을 보여주지만 그 ‘사기결혼’을 계획한 주유는 마음에 내켜하지 않는 이중성을 보인다. 물론 결혼을 위시로 한 사기행각을 벌리려던 것에 대해서 주유가 이뻐보이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대국적인 차원에서 오라는 나라의 앞날을 위해서는 그 정도는 속고 속여서 우리가 더 이득보는 방책을 택하는 외교수단의 한 방법일 수 있거늘 오국태의 그러한 행동은 오의 앞날이라 보기도 그렇고 더군다나 그 시대에 일언반구의 의결권이 없었던 자식에 대한 모성애라고 보기에도 마뜩찮은 면이 있다. 20대의 손상향을 50대의 유비에게 시집보낸 것을 보면 오국태도 딸아이의 생각에 대해서는 그다지 생각하고 있지 않은 셈이다. 뭐 그 당시에 자식의 생각이 무에 그리 중요하겠으며, 더군다나 딸의 생각 같은 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지 않은가.
이야기가 또 외따로 갔다. 정략결혼은 그래서 나쁜 것인가, 좋은 것인가? 서두에서는 뭐가 나빠라고 소리질렀다. 그래, 그 당시에 무슨 인권 운운인가 말이다. 당시의 결혼은 ‘정략결혼’이다. 지금이라고 없는가? 있잖은가. 그들만의 리그라고 불리우는 정재계 자제들의 그네들만의 결혼을 올리는 것은 ‘사랑’이 아닌 오직 부모들의 끼리끼리 인맥 형성 아닌가 말이다. 지금도 그러할진대 당시라고 아니하겠는가. 자유연애는 권력이나 파워엘리트와는 상관없는 이들끼리의 연애에 불과함이요, 힘이 있는 집안은 그 힘을 유지하기 위한 인맥의 노선으로서 취하는 것이 결혼인 것이다.
정재계 파워엘리트 자녀들의 결혼이 정략결혼이라고 하여 ‘인권’ 운운 하는 우리네들을 난 본 적이 없다. 그네들의 ‘상속세’, ‘증여세’, ‘탈세’에 대해서만 운운할뿐 그네들 자녀들의 ‘정략결혼’에 대하여 ‘의도하지 않은 결혼’에 대해서 ‘인권’ 운운 하기에 그네들은 돈이 너무 많고, 힘을 너무 많이 가진 것에 대한 시기인가? 질투인가? 그들만의 리그에서 벌어지는 결혼까지 우리가 뭐라 말할 꺼리는 아니지만 그러한 ‘정략결혼’에 대해서 우리는 입을 다무면서 과거의 ‘정략결혼’에 대해서 ‘인권’ 운운 하는 것은 치사한 행위일 따름이다. 당시의 그네들의 인권보다는 차라리 지금의 가진 자들의 자식들이 겪는 그네들의 인권이야 말로 지금같은 자유연애시대에서, 개인의 생각과 선택이 우선시 되는 사회에서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니겠는가.
정략결혼 - 과거는 당연할 수 밖에 없는 결혼 제도였으며, 현재에는 가진 자들의 권력 유지를 위한 수단의 방편이다. 자녀들의 선택? 그네들이 자기의 선택을 중시한다면 부모의 권력과 힘을 포기해야 하는데 그럴만한 배포를 그네들은 지니지 못했다. 온실 속의 화초가 무슨 배포를 지녔겠는가?
Written by 나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