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현재 배심원제는 아니다. 미국에서 채택하고 있는 이 배심원 제도는 존 그리샴에게서
그 허점을 들키고 만다. 법관이 판결하는 재판이 아니라 피고와 원고 사이의 변론을 듣고,
판결을 하는 배심원들은 단 하나의 인간일 뿐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해내고 진정한 자유와 정의를 위해 싸우기도 하지만
단순한 인간이기 때문에 자신이 아닌 일에 이러쿵 저러쿵 판단하기 싫어하며 정의라고 일컫는
단어는 영화에서 들어봤음직한 단어에 불과하고 차라리 남의 고통을 듣는니 집에서 케이블
채널에 의존해 쇼파에 앉아 피자를 먹고싶어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대립되는 양면은 바로 이러한 것이다. 영화 중반부에 진 핵크만, 더스틴 호프만이
화장실에서 논쟁하는 부분이 이 영화의 백미이다!!
만일 이 두사람의 싸움이였다면 그냥 진부한 법정드라마가 되었겠지만 존 쿠삭이 아주 큰
반전을 제공한다. 결국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도 언제나 선과 정의가 성공한다는 블락버스터의
이념상 더스틴 호프만이 승리하게 된다. 그 원동력의 역할이 존 쿠삭이며, 결국 이 부분이
없다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결국 힘없는 약자가 지게되어있다라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
감히 나도 발언을 해본다. 나약하고 옹졸하고 치졸한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는 내 일이 아닌
다른사람의 일에는 관심이 없다. 아니 관심이 없는 것에 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신문에
가십된 이야기로 수다를 떠는 일에만 치중할 것이다. 그렇지만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한 공동체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서로로 도와 살아야 되는 인간의 본질을 무시할 수 없는
점이다. 과연 내가 협박을 당하고 외부에 힘이 개입되어있는 현실에 진정한 정의를 위하여
진지하게 타인을 생각해 낼 수 있는 인간이 될수 있을까라는 물음표를 제시해주는 영화
단순한 법정드라마를 넘어선 그 이상을 런어웨이에서 맛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