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 한잔 앞에 두고
오광수
비 오는 날 산사(山寺)에서
얼굴 잊겠다던 스님께
햇차를 대접받든 날
마주하신 맑은 얼굴이
두 번째 찻물 속에서
나를 향해 파르스름 피어난다
풍경소린 아니 들리고
또르르 차 따르는 소리만
방안에서 눕는데
옷깃을 풀어헤친 비구름이
지리산을 껴안으며
나로 하여금 눈감게 한다
속세 손으로 받았지만
무량가슴으로 이어지는
한없는 이 따스함
세 번째 찻물 따르는 소리가
무욕으로 다가온 산의 순수가 되어
탁한 유혹들을 씻어내고
회한(悔恨)으로 드는 차 한잔
눈가엔 이슬 한 방울
밖에는 비가 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