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대 기초교육대학 특강 시리즈 세번째 특강으로 열린 이날 비공개 강연회에서 손 교수는 "한국사회는 토론문화가 활성화 되지 못했다"며 "그 같은 이유는 일제시대와 이승만 독재정권을 거친 뒤 또 다시 박정희 등의 군인들이 정권을 차지하면서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마음껏 발언할 수 없었던 시대적 배경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한 마디로 '말 못하는 문화'가 정착돼 왔다는 것이다.
나는 이 기사를 접하면서 그동안 손석희라는 한 인간에 대해 사회적 인지도면에서나 개인적 능력면에서 공감을 표했던 나의 믿음이 하루아침에 너무짐과 동시에 분한 마음까지 갖게 했다.
정말 손석희씨가 말한 대로 소위 말하는 박정희 군사정권이 오늘날 우리사회의 토론문화정착을 저해한 원흉이고 ''말 못하는 문화''를 정착하게 했단 말인가?
나는 절대 아님을 단언할 수 있다.
박정희 시대가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대화와 토론 그리고 합일점을 찾게 해 오히려 전국을 토론공화국으로 만든 이가 바로 박정희 시대임을 말 할 수 있다.
박정희 시대가 ''토론공화국'' 이였다는 근거를 찾기 위해선 ''새마을운동''의 발생동기와 과정을 알아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새마을 운동이 위로부터 일방적 운동으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그리고 박정희 죽이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세력들은 ''군사독재정권의 정권 유지''를 위한 운동으로 지금도 지속적으로 폄하하기도 한다.
새마을 운동의 첫 출발은 정부의 정책도 전담기구도 없었다. 단지 피폐해 져있는 농촌을 살려보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그 첫 단계로 전국 33,000개 마을에 시멘트를 내려 보내 농촌 환경개선에 초점을 맞췄다. 첫해 사업실시 후 지방 단체장들과 평가보고회를 갖게 된다. 그 결과 잘 한곳, 중간인 곳, 잘못한곳으로 분류가 되었다. 그 자리에서 박대통령은 평가보고회 정리를 하면서 잘 한곳에 추가지원을 하라 지시하고 잘 한곳은 왜 잘했는지 그 이유를 해당 지방 단체장에게 물어본다. 답하기를 ''잘 한 마을엔 탁월한 지도자가 있었고 평소에도 부지런하고 땀 흘려 노력하며 단합이 잘되어 타의 모범이 되는 마을 이였다''고 보고하자 박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그럼 그것을 새마을 정신으로 삼으면 되겠네.'' ''근면, 자조, 협동으로…….'' 이렇게 해서 새마을 정신의 목표가 설정 되게 된 것이다.
이후 박대통령은 아직 따라오지 못하는 나머지 60%의 전국마을 상대로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함을 인식한다. 당장 물질적 지원보다는 그 당시 아직도 사회 전반에 걸쳐 만연된 고질적 패배주의의식과 게으름을 일소하기위선 의식개혁이 필수임을 생각하고 해당 부처에 교육프로그램을 준비하라 지시를 했다.
해당부처인 농림부 실무진에서 보고서를 박대통령에게 제출한다. 보고서엔 농촌 전반에 걸쳐 교육시킬 알찬 프로그램들이 제시되었다. 그리고 이를 교육시킬 당대 저명인사 30여명을 천거하기도 했다.
박대통령은 올라온 보고서를 검토하시고 의견제시를 했다. ''장관, 전국 33,000개 마을 농민들을 1년에 한 번씩 교육을 시킨다고 한다면, 이를 수용할 교육장소도 없을뿐더러 이런 형식적인 짓은 자유당시절에 수도 없이 했고, 이런 것은 교육이 아니라 궐기대회다.'' 라고 말하며 ''해방 후 30년이 되기까지 전국에 단 1명씩이라도 산간오지에 들어가 농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겠다는 사람이 나섰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30명의 지도자는 있을 것이고 이 나라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 아닌가?
그러니 이런 형식적 교육과 강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10명도 좋고 20명도 좋으니 지난 새마을 사업 1차 평가회에서 거론된 모범적 마을의 지도자가 있을 것 아닌가? 그 사람들을 뽑아 교육을 시키는 것이 오히려 능률적이고 실질적인 산교육이 되어 실전에 적용시킬 수 있지 않겠는가?'' 하며 지시를 내린다.
이것이 바로 새마을 운동의 기치를 높이고 전국적으로 불을 댕기는 동기가 되는 것이다.
▲박대통령 새마을연수원 시찰1976. 7. 6
박정희의 이런 결정은 백 마디 말과 머릿속에 든 지식보다는 실질적 성공사례를 바탕으로 그 성과에 직접 참여해 리더로서 역할을 한 당사자를 교육시켜 살아있는 교본과 강사로 능률을 배가 시키려 한 것이고 이는 새마을 1차 평가보고회장에서 터득한 귀납적 결과물에 의한 의사결정인 것이다. 이런 과정들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농촌뿐만 아니라 기업 사회단체 정부기구……. 사회전반에 걸쳐 ''정신혁명''으로 자발적으로 확산되어 간다.
특히 그 당시 수출입국이라는 국가적 대의에 따라 1분 1초가 아까운 시간에 대기업 총수들을 새마을 연수원에 입교시켜 천금같은 1주일을 교육시킨 결과는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오게 했다. 농민들과 달리 기업인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단 한 가지 ''노사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가 전부였다.
새마을교육 연수는 농민을 상대로 실시한 교육 프로그램 이였기에 기업에는 마땅한 프로그램과 강사진이 없었다. 그 당시 상공부 제의로 기업인 새마을 연수 입교를 연수원장에게 협조 했을 때 처음엔 거부 하였다. 당장 준비된 프로그램도 없고 해서……. 이후 농민들 교육하는 모습을 참관하는 수준과 위에 말한 단 한 가지 과제만을 제시했다.
수료 후 그룹총수들의 수료 소감에 하나같이 ''어려운 시절 가난을 딛고 잘 살아보겠다는 농민들의 성공 사례가 나의 지난 과거를 보는 것 같다.'' 하면서 각종 아이디어를 기술하며 각자 기업에 접목시키겠다고 했다.
''근로자들이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싸와 먹던 것을 사내식당을 지어 먹게 하겠다. 주말에도 작업을 하는 관계로 우체국을 못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니 사내에 우체국을 설치하겠다. 자체 연수원지어 교육프로그램을 실시하겠다. 부설 야간학교를 건립하겠다.……. 등등 엄청난 변화를 가져 오게 한 것이 바로 농. 어촌 새마을운동이 ''직장 새마을 운동'' 으로 확산되게 된 계기가 된 것이고 이것은 가히 ''혁명''에 가까울 정도로 변혁을 가져 왔다.
새마을운동은 교본이 없다. 그리고 구체적 전담부서 및 거창한 정책도 없다. 만약 그 당시 박 정권이 정권 유지를 위해 지금과 같이 정책 홍보에 수천억을 쏟아 붓고 그 근거가 남아 있었다면, 박정희 죽이기에 혈안이 된 세력들에게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새마을 운동과 관련 있지도 않는 일들을 마치 사실인양 모함하는 세력들이 자행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보면 은…….
나는 손석희씨 에게 묻고 싶다. ''당신도 소위 말하는 박정희독재정권이 정권유지를 위해 새마을 운동을 시작했다고'' 그리고 ''박정희 군사정권이 대한민국의 토론문화를 망쳤다고'' 생각하는지.
박정희 정권이 이룩한 고도성장과 그 시대에 동참한 산업화세력들 이들이 전 세계에 유례가 없고 그 어느 경제학자들도 그들이 주장하는 ''모델''로서 풀 수 없는 기적의 성장모델, 그리고 전 국민을 자발적으로 가난극복에 참여케 한 새마을 운동.
이 모든 근본 바탕은 밤낮없이 대안 제시에 의한 대화와 토론 그리고 분임토의, 이런 민주적 절차에 의해 얻어진 결과물들은 최단시간 고도성장의 결과를 낳았고 이것은 그 당시 가장 선진적 조직체계인 군(軍)이 개입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 당시 정부는 ''하루 일과가 브리핑에서 시작하여 브리핑으로 업무가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브리핑 이란 게 무엇인가?
-문제소재
-해결방안(1, 2, 3, 4안)
-위 방안 중 하나를 선택, 이런 유로서 저희부처는 사업을 실시하겠으니 각하의 재가를 부탁합니다.
이런 것이 기본 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절차가 대통령에게 올라갈 때 까진 해당 실무진에선 열악한 국가 재정 속에서 난상토론 끝에 최선의 결과물을 돌출 대통령께 브리핑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박대통령은 각 정부 중앙, 지방 초도순시를 특정한날 정해 놓고 순시를 하지 않았다. 현안과 사안에 따라 지속적으로 실무진들과 해당지역을 직접 목격하고 현장에서 아니면 관공서에서 브리핑을 듣고 그에 따른 문제들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다. 그리고 서거 하실 때 까지 단 한 번도 거르지 않았던 월간경제동향보고회, 지금과 같이 청와대에 틀어 박혀 허접한 게시 글이나 올리고 공무원들에게 협박성에 가까운 정부정책 홍보에 열 올리지 않았다. 이런 정부 내 브리핑문화는 ''실질과 능률의 극대화''를 가져왔고 정책의 비능률성을 개혁했다. 이 역시 미국에서 전수받은 선진군대 작전브리핑을 접목시킨 것이다.
박대통령이 73년 1월 중화학공업육성책과 80초까지 수출 100억불을 달성하겠다고 했을 때 정부부처 내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극심한 반발을 할 때 관계 장관과 정책입안자들을 청와대 내 국산병기 전시실의 좁은 방에 모여, 당시 오원철 청와대 경제수석이 4시간에 걸쳐 브리핑을 했다. 그 당시 박대통령은 안된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확신을 갖고 엉뚱하게 탁자하나에 소파3개만 있는 비좁은 청와대 내 병기전시실에 모이게 했던 것이다.
그 당시 국산병기 개발에 따른 브리핑도 있었고 그 때까지 국산신무기가 어느 수준까지 왔는지 정부각료들 조차도 모르는 이들이 있어 직접 보여주고 몸소 느끼게 하기 위해서 옅다. 오비서관의 4시간여의 브리핑에 참여 장관들은 오금이 저렸다고 한다. 브리핑이 끝나고 대통령이 앉으신 탁자 위 재떨이엔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밀폐된 비좁은 공간에서 대한민국의 미래가 결정된 순간이고 참여한 장관들도 그동안 몰랐던 것을 그날의 마라톤 브리핑에서 모두 공감과 고무되어 당장 돌아가 해당 부처에 맞게 기획안을 세웠다고 한다. 이 역시 문제소재에 대한 밤낮 토론으로 대안제시가 되고 그 결과물에 의해 정책을 가장 효율적으로 시행한 결과 조기에 수출 100억 달러 달성의 성과를 이룩하였다.
농촌과 직장새마을 운동에 있어서 우리의 토론문화는 어떠했는가?
새마을 운동 실시와 함께 전국 33,000개 마을에 마을회관이 다 지어졌다. 그곳은 지금과 같이 경로당으로 전락한 것이 아니라 마을 주민 남녀노소가 참여하여 마을 현안에 대해 밤낮으로 토론한 민주주의의 실천도장 이였다.
그 당시 정부가 한 역할은 마을 현안문제 해결에 대해 별로 한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즉, 이 말은 극단적으로 말해 ''농민 너희들이 알아서 마을 현안문제에 대해 대화와 토론으로 합일점을 찾고 그 대안제시로 정부 측에 지원협조를 구하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정책 이였다.
다시 말해 그 당시 새마을 사업을 하면서 해당마을 에 마을 공용도로를 시행하면서 개인사유지가 포함된다고 보상을 한 적도 없다. 다 마을 사람들의 합의에 의해 마을에 기부채납형식이 난상토론에 의해 합의가 되면 정부는 도로를 만들 수 있는 건설자재를 지원했던 것이다. 요즘과 같이 자기 땅이라고 마을 공로에 말뚝을 박고 재산권형사를 하는 짓거리는 없었다. 끝까지 대화와 타협으로 결과물을 돌출해 공동의 이익과 마을의 단합을 이뤄 냈다.
이런 밑으로부터의 새마을운동의 대 혁명은 비록 배우지는 못했지만은 대화로 토론으로 민주주의의 원리를 알았고 이는 철밥통 공무원들의 인식전환의 계기를 마련했다.
해당지역의 무사안일주의에 빠진 면장, 지서장의 새마을 연수교육입소를 시켜야 한다고 수료소감문에 빗발쳤고, 면장, 지서장들 연수는 군수, 경찰서장의 입소를 유도해 마침내 정부 장관까지 새마을 연수를 받게 한 장본인들이 바로 농민들의 새마을 연수교육의 결과에서 나온 것이다. 이것은 정신혁명이고 주. 야로 대화와 토론이 바탕이 된 주민들의 적극적 참여로 문명과 무지에서 입을 열게 하여 세상을 보는 눈과 귀를 열게 했다.
기업의 직장새마을 운동은 어떠했는가? 소위 말하는 분임토의가 뭔가 자기가 소속된 직장에서 모든 현안문제와 개인적 문제까지 공론의 장으로 끄집어 낸 것이 아닌가? 이런 분임토의는 근로자 개인에 있어서는 기업복지의 개혁으로 발전 되었고 기업에게는 생산과 능률에 있어서 전사적 대응이 이뤄지고 창의성까지 나와 기술혁신을 이뤄나가지 않았는가?
그러데 손석희씨는 무슨 근거로 박정희 시대가 ''토론문화 망쳤다''고 하는가? 그리고 박정희정권이 ''대화와 토론하라'' 정책적으로 홍보를 했는가? 그렇다고 수천억의 국민혈세를 퍼부었는가? 단지 박정희정권이 한 것이 있다면 비가오든 눈이 오든 전천후 장소에서 대화하고 토론할 수 있는 장소, 즉 마을회관을 전국 33,000개 지어준 것 밖에 없다. 그 외에는 극단적으로 말해 ''알아서 해라''였다.
소위 말하는 박정희 군사정권이 대안으로 제시한 ''알아서 해라'' 정책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 무지와 게으름과 분열의 나라를 하나로 통합시키지 않았는가? 스스로 판단하고 똘똘 뭉쳐 5000년의 숙원인 가난을 몰아 내지 않았는가?
그럼 산업화세대들이 이룩한 풍요 속에서 안락한 배움과 지식으로 그대들은 무엇을 했는가? 노무현 정권 들어와 집권 첫 일설이 무엇이었는가? ''우리 사회의 대화와 토론문화를 강조하지 않았는가?'' 결과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는가? 지역은 지역대로 계층은 계층대로 세대는 세대별로 갈기갈기 찢겨 사분오열의 전형을 보지 않는가? 철저하게 이 사회를 분열과 갈등으로 몰고 간 원죄들을 나두고 어찌 박정희정권를 물고 늘어지는가?
손석희씨, 당신과 같은 편협한 사고와 의식을 가진 세력들이 철저하게 박정희정권이 전국 33,000개 민주주의 실천 도장인 새마을회관과 직장 새마을회관에서 밤낮 토론과 분임토론으로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배양한 국민들을 완전히 얼치기 삼류데모꾼으로 전락시킨 작자들이 바로 당신과 같은 의식을 가진 세력들이며 작금의 대한민국 토론문화가 이렇게 되기까지 망쳐 놓았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기 바란다. 그리고 역사 앞에 통렬한 반성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