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간해줘요(Rape-me)라는 뜻을 가진 베즈무아.
베즈모아라고도 하더군요.
충격적인 삽입노출로 화제를 일으켰다..
책으로도 볼 수 있다...
프랑스 현지에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 논쟁을 일으키고, 2000년 아시아 및 유럽판 타임즈가 선정한 10대 영화중 하나였던 동명의 영화의 원작 소설이다. 이 책은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포르노그라피와 폭력의 문제를 정면에서 다룸으로써, 제도권에 도전한다. 현대 사회에서 여성이 어떻게 취급받고 우롱당하고 무시당하는지에 대한 반항심으로 이 책을 썼다는 데팡트는 현대사회의 가식과 관습을 벗어던지라고 주장한다. 절망적인 두 여자의 충격적인 행로가 현기증이 나도록 스피디하게 서술된다.
비르지니 데팡트 지음 / 최경란 옮김 / 8천원 / 책세상
잠깐 책에 대한 평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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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수고 파괴하고 조롱한다
여자들이 칼을 휘두르거나 뛰어다니며 적을 처치하는 책이나 영화를 보면서 속이 시원한 것은, 여자이기 때문에 억울함을 참고 타인을 배려할 것을 요구 받은 기억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어떤 상황에서는 미덕일 수 있다. 타자에 대한 포용력이 부족한 한국 사회에서는 장려해야 할 덕목일지도 모른다. 한때 ‘똘레랑스’와 같은 단어들이 주목을 받은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그러나 여기서 유의할 점은 역사적으로 배려 혹은 인내, 참을성과 같은 행위들이 모든 주체에게 똑같이 요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성 역시 그 같은 덕목을 불평등하게 교육받아온 집단이다. 그래서 가정폭력과 같은, 정작 화를 내야 할 상황에서도 참고 견디면서 자신을 억압하고 분노를 내면으로 꼭꼭 눌러 넣는 여성들이 많은 것이다.
비르지니 데팡트의 가 눈에 띄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여자들이 기존의 윤리들-불합리한 것이든 정의로운 것이든 존재하는 모든 윤리들-에 신경 쓰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총알을 날린다는 것이다. 게다가 총을 휘두르는 여자들은 여자들에게 기대되는, 얌전하고 순종적인 주체와는 거리가 멀다. 책 제목 ‘베즈 무아’는 ‘나를 강간해줘’(Rape-me)라는 뜻. 커트 코베인의 노래 ‘Rape-me’가 떠오르면서, 강간의 고통을 질적으로 다른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슬쩍 전유해버린 책이 아닐까 의심이 생기기도 한다. 어떤 계기 때문에 이 여성들에게 그 같은 제목이 어울리게 됐을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왜 ‘베즈 무아’인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포르노 영화를 보는 취미를 지닌, ‘창녀’ 나딘과 마약과 술에 찌들어 사는 마뉘, 이 두 여자는 소위 ‘하층계급’ 출신의 변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나딘은 성매매 상황 때마다 포르노 영화와 같은 몸짓을 연기하며 몸과 마음이 분리되는 것에서 지루함을 느낀다. 그녀의 유일한 활력은 사랑하는 사람 프랑시스와의 만남이다. 그런데 그 프랑시스가 어이없이 죽어버렸다. 한편 마뉘는 평소처럼 바에 가서 친구 카를라와 술을 마신 후 강변에 누워 있다가 근처를 지나던 남자들에게 강간을 당한다. 카를라는 ‘창녀’로 취급 당했다는 분노와 수치심을 참지 못하고 그들에게 화를 내다가 도리어 차에 치여 죽고 만다. 이쯤 되면 그 어떤 사람도 제정신을 차리기 힘들다. 삶의 중요한 것들이 여지없이 부서진 그녀들은 우연히 만나서, 차를 타고 달리면서 여행을 시작한다.
그녀들의 여행은 욕망을 여지없이 토해낸다. 그렇기 때문에 비극적인 결말이 예정되어 있다. 나딘과 마뉘는 어른이건 아이건 가리지 않고 두들겨 패고, 총알을 날리고, 돈을 빼앗는다. 그녀들의 일상 역시 ‘하고 싶은 대로’다. 그녀들은 호텔에 머물면서 마음에 드는 남자들을 유혹하고, 포르노 잡지를 사서 보며, 술을 잔뜩 마시고 잠이 든다. 같은 고전적인 여성로드무비 영화들은 와 비교하면, 얌전한 축에 속할 것이다.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분석하자면, 그녀들이 총을 잡게 된 계기는 여성들의 몸에 가해지는 구조적인 억압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들은 으레 억압된 여성주체에게 기대하게 되는, 성차별적인 사회에 대한 저항행위를 하지 않는다.
나딘과 마뉘는 사람을 죽이는 쾌감 그 자체에 빠져든다. 또한 마뉘의 경우, 일부러 진한 화장의 ‘매춘부’ 복장을 하고 다니면서 사람들의 반응을 관찰하고, 자신을 유혹하려 드는 남성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함께 사람을 죽이고 강도 짓을 했기 때문일까? 길에서 만난 여자 파티마는 그녀들을 ‘머리 둘 달린 짐승’이라고 표현한다. 나딘과 마니 사이에 흐르는 욕지거리 가득한 농도 높은 친밀함을 자매애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이렇게 막 나가는 자매애도 보기 드물 것이다. 어찌 보면 그녀들은 아무 이유 없이 사람들을 죽이고 난동을 부리는, 사회에 대한 불만을 범죄로 표출하는 전형적인 남성상을 모방하는 것 같다. 윤리의식 없음-욕망의 분출-파괴로 이어지는 연쇄고리에서 남성이건 여성이건 젠더(gender)에 따라 행위 자체가 달라지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나 그녀들의 모방은 역설적으로 진부하지 않은 자극적인 면모를 과시하며, 어느 한 방향으로 모아지지 않는 쾌감을 부르기도 한다. 나딘과 마뉘가 ‘영혼에서 가장 도발적인 부분’을 분출하자고 다짐하는 모습이나 총을 쥐면서 손을 가리켜 ‘총을 쥐기 위해 만들어진 부분’이라고 묘사하는 부분, 남자들을 유혹한 후 제멋대로 굴다가 호텔방에서 내쫓는 부분은 참으로 속이 시원하다. 거칠 것 없이 길을 달리는 그녀들이기 때문에, 파티마의 근친상간 경험을 주저 없이 솔직하게 들어줄 수 있었다. 즉 모방의 결과가 그녀들이 한번도 구체화하지 못했던 욕망을 생애 처음으로 풀어낸 여성 주체임을 끊임없이 드러내기 때문에 여성독자들에게 쾌감을 전달하는 것이 아닐까.
그녀들이 욕망을 풀어내는 방식이 이미 존재하는 남성적이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모방하면서 그녀들은 힘을 획득하며 그래서 이전에는 여자로서 기대할 수 없었던 모습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마뉘가 자신의 ‘천한’ 복장에 쏟아지는 시선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다. ‘천한’ 복장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러나 그 복장을 적극적으로 따름으로써 마뉘는 사람들에게 ‘나는 당신들의 시선 따위에는 상관없이 나를 통제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던지는 것이다. 그 같은 당당함은 성매매 되는 여성들에 가해지는, 도덕의 외피를 쓴 위선적인 경멸을 폭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여성들이 전사 혹은 복수의 주체로 등장하는 책이나 영화는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처럼 그 어떤 것이든 부수고, 파괴하면서 사회의 위선적인 면모를 가차 없이 폭로하는 책은 보기 드문 것 같다. 는 독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방식의 자극을 전달한다. 이는 처럼 ‘Angel’이라는 칭호가 붙어있는 착하고 섹시한 여성들의 매끈한 액션이 선사하는 한정적인 쾌락과도 거리가 멀고, 처럼 여성주체의 복수보다는 그 복수의 칼바람이 현란하게 그려지는 영화와도 거리가 멀다. 그렇기 때문에 읽어 볼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