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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의 분단현실, JSA견학.

김태영 |2006.12.08 16:33
조회 105 |추천 5

지난 8월4일 오전 7시 반 양재역,

나는 국가정보원 미니홈피에서 주최한

JSA투어에 당첨되어서 친구와 함께 관광버스에 올랐다.

 

국정원분들이 직접 투어가이드로 나서주셨고,

우리를 비롯한 40여명의 기행단은 당일치기 일정으로

JSA투어에 나섰다.

 


 

어느새 서울의 모습은 이렇게 휙휙 지나가고 있었고

우리는 서울을 지나, 파주까지.. 점점 북쪽으로 가고 있었다.

 

 

투어는 크게 JSA와 도라산역, 통일전망대, 제3땅굴 등으로

되어 있었는데 제일 먼저 부대안으로 진입했다.

사진촬영이 다소 제한적인 부분이 많고 군사시설이 많은지라

함부로 카메라에 모습을 담아올 수는 없었고

촬영이 가능한곳에서만, 그것도 아주 단시간내에

신속하게 촬영을 마치고 오는 형식으로 투어는 진행되었다.

 

 

 

▲ 출입증: 방문자가 왼쪽 가슴 상단에 차야할 표찰.

이것이 없어지면 투어가 중단된다..덜덜덜..-_-

 

 

방문자 표시증을 받고 왼쪽 가슴 상단에 찬 후,

부대내의 캠프 보니파스에 들어가서 관련교육을 받았다.

JSA의 역사와 많은 사건사고들, 그리고 현재상황과 위치까지.

그리고 투어를 하면서 염두해야 할 안내사항까지.

 

[청바지나 반바지, 나시 티셔츠나 군복을 입은 일반인들은 출입이 통제된다. 그리고 만8세 이하도 입장이 불가능하다. 모자도 X]

 

 


▲ 남측과 북측의 살벌한 대치상황

북측의 관광객들 때문에 회담장 내부로는 들어가 볼 수가 없었다.


 


▲ 옆의 팔각정위에서 남측을 바라본 모습.

 

 

사진도 정해진 시간 내에 찍을 수 밖에 없다. 일정이 있으므로.

 

 


▲ JSA 남쪽에서 바라본 북쪽의 모습.

 

 

예전에는 JSA 만은 국경이 없이 자유왕래가 가능했다고 하는데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으로 인해서 이곳에도 국경이 생겼다고 한다.

 

 

 

전시 생존률은 거의 제로라는 이곳,

북쪽에 보이는것이 판문각, 그리고 내가 서있던 이 곳은

남측 평화의 집 이었다. 

이곳에 오니 비로소 분단국가라는 현실이 느껴졌다.

후방 부대에서 열심히 실력을 갈고 닦는 많은 국군들을 볼 때는

군대라는것이 있으니깐 그냥 하는 것,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곳에서 대치상황을 보고 있자니

군대라는것이 우리나라같은 분단국가에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생각되었다.

 


▲ 북한군의 1초소,

 

밑에 자세히 보면 북측 장교가 북측을 향해서 근무를 서고 있다.

 

 


▲ 버스를 타고 지나갈 때 찍은 모습,

한국군은 사병들이지만 사진속의 북한군들은 모두 장교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사진속에 보이는것은 북측의 기정동 마을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160M 위치에 인공기가 걸려있다고 하는데

남측의 대성동 평화의 마을과 알 수 없는 경쟁을 하다가

결국 160M 에서 멈추었다는 전설이.

인공기 무게만 해도 25KG 이 되어서 웬만한 바람이 불지 않는 이상 펄럭이지도 않는다고 한다.

 

 

 


▲ 왼쪽에 보이는것이 북측의 기정동 마을.

 

 

사진 오른쪽 하단에 파란 지붕의 초소가 보이는데 그 곳이 바로 '공동경비구역 JSA'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돌아올 수 없는 다리' 이다. 

 

 

버스를 타고 이동해서

직접 그곳에 가 보았다.

군사지역이라서 내릴 수는 없었고 사진만 몇장 찍었다.

 

 

 


▲ 돌아올 수 없는 다리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에 있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

한국전쟁이 끝나고 이 곳에서 포로교환이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한번 건너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어서

이렇게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영화 JSA에서도 이 장소에서 총격전이 벌어진다.

다리의 절반까지는 한국이다.

 

 

 

 


▲ 미루나무 터-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 있었던 제4초소..

 

공동경비구역 만큼은 국경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

건물을 제외, 4개의 초소를 남,북한 각각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우리측에는 북쪽에 단 하나의 초소도 없었지만 북측은 남쪽에

3개의 초소를 세워두었다고 한다.

 

 

남한의 4초소가 북측의 3개의 초소에 둘러쌓여 있어

우리나라의 3초소가 감시를 해주는 역할을 하여야 하는데

4초소 앞에 미루나무때문에 감시가 어려웠다고 한다.

 

 

그리하여 1976년 8월18일, 

4초소 앞의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러던 도중 갑자기 도끼를 든 북한군이 달려와

미군 장교 2명을 도끼로 살해했다고 한다.

 

 

이것이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이라고 한다.

 

이 사건 이후에 공동경비구역 내에서도

남북한의 확실한 경계가 생겼다고 한다.

사진에 있는 비석은 미루나무의 터이다.

 

 

 

 

이렇게 JSA투어를 마쳤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역시나, 기념품 샵.

하지만 투어차량으로 갈아탈 때,

카메라를 제외한 온갖 소지품은 버스에 두고 왔기 때문에

살 수 없었다. 사진으로나마 아쉬움을 달래고.

 

 


 

▲ 기념품샵. 정말 이곳에서밖에 살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이렇게 1시간여의 JSA투어를 하면서

가이드 헌병의 안내로 많은 정보도 듣고 놀라기도 하며

우리나라 역사, 그리고 분단국가의 현실에 대해

뼈저리게 느끼면서 꼭 국방과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다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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