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포츠의 역사는 전적으로 낭자군에 의해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자는 아시아권을 넘기 위해 안간힘을 쓸 때 낭자군은 세계 수준의 경기력을 뽐냈던 농구가 그렇고, 남자도 그런대로 한다하던 배구의 경우는 낭자군이 월등한 기량을 보였었다. 지금은 옛 추억이 되긴 했지만 ‘박찬숙’과 ‘나는 작은 새 조혜정’을 아는가? 비록 월드컵 4강에 남자가 먼저 들기는 했지만 청소년 축구는 그보다 앞서 세계 4강에 든 바 있고, 앞으로 여자축구의 세계제패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을 아는가?
박세리를 따라 세계무대를 안방으로 만든 여자골프에 비하면 최경주 홀로 뛰는 남자골프는 버겁기만 하고, 김진호와 연이어 나타나는 주몽의 후예들이 벌이는 독식을 막기 위해 룰을 바꿔온 것이 세계양궁의 역사가 아닌가? 쇼트트랙이 또한 그렇다. 한국 1등이 세계 1등이다(물론 양궁과 쇼트트랙이야 남자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
어렵게 복싱강국을 만들었던 남자복싱에 비해 여자복싱은 세계챔피언을 그냥 퍼 담는가 하면 전병관이라는 걸출한 스타 하나에 의존했던 역도에서 장미란은 훌쩍 세계적인 역사로 등장한 지 오래다. 여기에 한창 물오른 피겨 스케이팅의 김연아까지...
그렇게 한국 스포츠는 여성 스포츠 강국으로 면면히 이어오고 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 때만 되면 고개숙인 한국남자들에게 이번 도하 아시안 게임은 변명꺼리를 나름대로 주고 있다. 그것도 둘씩이나 되는 걸출한 슈퍼스타로 인해서 말이다.
유도 종주국 일본을 메다 꽂으면서 유도 그랜드슬럼을 달성한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 그리고 수영불모지에서 세계적 선수로 자랄 싹을 보이고 있는 수영3관왕 박태환을 보자.
지난 5일 '한판승의 사나이', '48연승 신화의 사나이' 등 찬란한 별명을 신화처럼 달고 다니는 이원희가 드디어 유도에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지난 2003년 아시아 선수권과 세계 선수권, 지난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냈던 이원희는 이로써 아시안게임 우승까지 일궈내며 세계 4대 대회에서 정상에 오르는 '유도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올림픽 금메달을 딴 뒤 슬럼프를 겪기도 한 그는 이로써 종주국 일본의 심장에 비수를 꽂으면서 세계 유도계에 그 신화를 깊게 각인시켰다.
이번 도하에서 신화를 매김한 이원희말고도 수영의 박태환도 또 한편의 신화를 썼다. 82년 뉴델리 대회에서 '아시아의 인어' 최윤희가 3관왕에 오른 이후 24년만의 올린 값진 쾌거였다. 그가 이번 대회에서 얻은 메달합계는 무려 7개나 되었다. 금메달이나 메달 갯수보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박태환의 기록이며 그의 성장세다.
세계 10위권 아시아 3위권의 스포츠 강국으로 성장한 한국이지만 여전히 육상과 수영에서 만큼은 변방에 있었던 한국, 그 변방국 수영계에 서광을 비추면서 이번 대회에 화려하게 등장한 스타로 알고 있지만 사실 박태환은 이번 아시안게임에 앞서 이미 세계 수영계를 놀라게 한 바 있다. 세계쇼트코스 수영선수권 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하였고 범태평양 대회에서는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이미 쇼트코스 대회에서만큼은 이미 한국수영이 변방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 바 있다. 그의 이러한 쾌거는 쇼트트랙 스케이팅과 더불어 쇼트하면 무조건 한국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박태환에게 있어, 한국 수영계에 있어서 이번 대회의 의미는 정식 코스에서도 '아시아 스타' 로 등극했다는 것이다. 금메달 세 개를 포함한 7개의 최다메달을 획득했고, 장단거리를 동시에 노리는 그를 보면서 언론은 지난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6관왕 등 8개의 메달을 따낸 당시 19세의 마이클 펠프스를 떠올린다.
이번 대회 기록을 지난 올림픽 수영기록과 비교하면 은메달이 두 개나 된다는 보도도 있었듯이 박태환의 무대는 더 이상 아시아가 아니다. 17살로 발전가능성이 무한한 박태환이 국제대회마다 기록을 경신, 꾸준한 상승세에 있다는 점은 오는 3월 호주 멜버른에서 열리는 2007 세계선수권에서 사상 첫 메달 획득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불과 2년전 아테네올림픽에서 실격당했던 박태환이 한 해만에 쇼트코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신성과 같이 강자로 자리매김하는가 했더니 이제 세계적인 대열에 합류해 차기 북경올림픽을 노리게 된 것이다. 그 이름도 유명한 펠프스, 하켓, 프릴리코프 등과의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이번 아시안게임으로 여성에 이끌려가던 우리 스포츠계에 모처럼 이원희가 박태환이 남성도 제 몫을 하기 시작했다는 기쁜 소식을 들려주니 고맙고 기쁘다. 물론 남녀 편가르자는 말이 아니다. 이제 우리 조금만 참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켜본다면, 특히 언론이 오버만 하지 않는다면 박태환이 수영변방을 탈출할 것이다. 김연아가 빙상 변방을 탈출해가는 것처럼... 그렇게 이제는 여성이 이끌던 스포츠계를 남녀 청소년들이 이끌어 갈 것이다. 그것도 비인기종목의 변방을 중심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