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렁이가 울던 날
오늘은 오랜만에 제가 쓴 동화를 띄워드립니다. 소와 사람이 식구처럼 한 집에서 살았던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마을에서 고개 하나 너머에 도살장이 있었습니다. 신작로에서 백 미터쯤 떨어져 있었습니다. 장날 새벽이면 소를 잡았습니다. 소는 도살장 안으로 끌려 들어가면서 "우∼ 우∼" 하고 울었습니다. 그 울음소리가 마을까지 내려오기도 했습니다.
소는 사람들을 위해 온갖 험한 일을 다하고 마지막에는 사람의 먹이가 되었습니다. 인간을 위해 뼈와 가죽까지 아낌없이 주고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흔적 하나 남지 않았습니다. 소는 죽어서 귀신이 된다고 했습니다. 아마 사람과 친해서 그런가 봅니다. 그런데 소귀신은 해코지를 안했습니다. 아마 순해서 그런가 봅니다.
소는 그 집 식구였습니다. 병수네 소도 그랬습니다. 마땅히 부쳐먹을 땅뙈기도 없이 소가 전 재산이었습니다. 남의 논과 밭을 갈아주고 삯을 받았습니다. 소가 품을 팔아주어서 먹고 사는 것이나 같았습니다. 털 색깔이 누렇기에 누렁이라 불렀습니다. 봄, 여름에는 주로 논밭 일을 했고 가을과 겨울에는 수레를 끌었습니다. 병수는 누렁이와 붙어살았습니다. 어렸을 때에는 누렁이를 타고 놀았습니다.
일은 병수 아버지가 시켰지만 누렁이를 보살펴주는 것은 병수 몫이었습니다. 누렁이가 쉬는 날이면 끌고 나가 논두렁이나 강둑에서 풀을 뜯겼습니다. 먼 마을에서 저녁연기가 피어오르고 어둠이 조금씩 내리는 시간은 정말 평화로웠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소울음을 앞세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매일 걸어도 정겨웠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누렁이가 있어 듬직했습니다. 누렁이는 마을의 충실한 일꾼이었습니다.
지지난 여름에는 누렁이를 잃어버려 혼이 난 적도 있었습니다. 꼴망태에 풀을 가득 채우고 잠깐 누워있다 그만 깜박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누렁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풀밭에 박아놓은 쇠말뚝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미 사방은 어두워졌습니다. 병수는 깜짝 놀라 누렁이를 찾아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지만 허사였습니다. 아버지에게 알려야했습니다. 이제는 죽었구나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마당에 들어서자 외양간에서 "음메!"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소리가 눈물이 나도록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그러다 가만 생각해보니 부아가 치밀었습니다.
`해 넘어갔다고 저 혼자 집에 오다니…."
괘씸한 생각에 주먹을 쥐어보이며 눈을 흘겼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누렁이는 미안한지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언제부턴가 누렁이는 일이 힘든지 침을 많이 흘렸습니다. 눈곱도 많이 끼고, 쟁기질을 할 때도 자꾸 헛발을 디뎠습니다. 어른들은 혀를 끌끌 찼습니다. 누렁이가 늙은 것이지요.
가을걷이가 끝날 즈음 읍내로 고구마를 싣고 가다 기어이 일이 벌어졌습니다. 비탈길에서 그만 수레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앞다리를 꿇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누렁이보다 병수 아버지가 더 크게 비명을 질렀습니다. 수레를 벗기고 누렁이를 일으켰지만 꼼짝 못했습니다. 한참 후에야 일어났는데 한쪽 다리를 절었습니다.
그 소식이 전해지자 온 마을이 놀랐습니다. 사람들은 병수네 집을 찾아와 아버지를 위로했고 외양간에 들러 누렁이를 살펴봤습니다. 그 때마다 누렁이는 음메∼하고 소리치며 눈을 껌벅거렸습니다. 고맙다는 인사처럼 들렸습니다.
제일 마음이 아픈 사람은 병수였습니다. 빨리 나으라고 소죽에 별의별 것을 다 타주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수의사가 와서 진찰을 하더니 역시 고개를 저었습니다. 병수네 집은 시름에 잠겼습니다. 마을에도 걱정이 내려 앉았습니다. 당분간은 아쉬운 소리를 해가며 이웃마을 소에게 밭갈이를 부탁해야 했습니다.
그때 마을 이장이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누렁이가 회복될 기미가 없으니 돈을 거둬 누렁이를 잡아먹자는 것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사람들은 고기로 목구멍 때를 벗기고, 그 돈으로 병수네는 튼튼한 송아지를 사면 서로 좋은 것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대뜸 의견이 모아졌고 모두 열네 집이 돈을 냈습니다.
누렁이를 잡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병수 아버지가 소를 끌고 도살장으로 향했습니다. 그 뒤를 병수가 따라갔습니다. 그 뒤로는 마을 사람들이 따랐습니다. 도살장 앞에서 누렁이가 그 큰 눈으로 눈물을 주르르 흘렸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뒤로 돌려 병수를 쳐다봤습니다. 병수가 달려가 누렁이 목을 껴안고 흐느꼈습니다. 둘러선 사람들은 먼산을 바라봤습니다. 병수 아버지가 억지로 병수를 떼어놨습니다.
이윽고 소 잡는 아저씨가 돌치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한 아저씨는 누렁이가 꼼짝 못하게 코뚜레를 붙들고 다른 아저씨는 돌치를 쳐들었습니다. 돌치를 쳐다보고 있는 누렁이의 한쪽 눈을 손으로 가리고, 아저씨는 뿔과 뿔 사이를 정통으로 내리쳤습니다.
그 순간은 모두 눈을 감았습니다. 누렁이는 앞무릎을 꿇더니 쿵 하고 넘어졌습니다.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고기는 사람들이 나눠갖고 코뚜레만 남았습니다. 그 코뚜레를 들고 병수 아버지는 터벅터벅 걸어가고, 병수는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
바람이 불면 도살장에서는 소울음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이들은 그것이 소귀신이라 했지만, 병수에게는 누렁이 울음으로 들렸습니다.
-김택근의 동화가게 `벌거벗은 수박도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