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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에 빌붙어 사는 개 따위와 말을 섞을 마음은 없어. 나는 관청이 벌레보다 싫어."
아버지는 점점 더 큰소리를 냈다.
"국민 세금의 떡고물로 연명하겠다는 그 근성이 영 맘에 안 들어.
저런 인간들은 착취자와 가장 악질적인 한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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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 저런. 나처럼 걸출한 인물의 자식이란 것들이 국가 따위에 만만하게
길이 들어서는. 학교에서 너희 머릿속에 주입하는 건 체제에 적당히 써먹을
인간을 양성하기 위한 최면술 같은 것이야. 어떤 시대에나 학교는 일종의
교정 시설이었어. 예전에는 나라를 위해 죽어서 돌아오라고 가르쳤지.
요즘은 일을 많이 해서 세금을 많이 내라고 가르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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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울지 도망칠지, 네 뱃심을 딱 정해" 라는 아버지.
지로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이대로 끝날 리가 없잖아? 우에하라 지로, 인생의 중대한 기로에 섰구나."
"중대한 기로?"
"스스로를 시험하는 무대라는 얘기야."
아버지는 교정지에 눈을 떨군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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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다보니 가쓰가 쓰러진 그대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머리 밑의 자갈이 피로 물들어있었다. 피라는 게 이렇게도 붉었던가.
지로는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몹시도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늘에서 까마귀가 까악까악 울었다.
와세다 큰길의 자동차 소리가 서서히 크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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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로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미나미 선생님의 감정적인 모습을 보고 말았다.
선생님과 학생이라는 관계를 넘어선 것이다.
선생님은 한 사람의 젊은 여자로서 어쩔 줄 모르며 분개하고,
그것을 그대로 지로에게 내밀었다.
나를 미워하시는 걸까, 목 안 쪽에서 답답함이 치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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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어디, 어디 보자." 발을 잡아당긴다. 방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오랜만에 프로레슬링 한 판 해볼까?" 팔을 목에 감고, 뒤로 드러누운 자세에서
헤드록을 먹이고 들어왔다. 아버지에게는 따귀 한번 맞은 적이 없지만 이따금
걸어오는 프로레슬링 기술은 도저히 농담이라고 할 수 없을만큼 위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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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로, 모모코, 밖에 나가서 놀까?" 느닷없이 아키라 아저씨가 말했다.
무슨 소리람. 나도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인데.
"응, 그게 좋겠다. 구청 앞의 동상에 이번에는 팬티를 입혀줘라."
아버지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아버지도 찾아온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고
지로는 짐작했다. 모모코가 컵을 넘어뜨렸다. 우유가 주르르 흘렀다.
급히 행주를 집으려던 아키라 아저씨가 의자에 걸려 넘어졌다.
벽시계가 댕댕 울었다. 집 안 전체가 당황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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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는 성인식 때, 남들 다 입는 전통의상을 입지 않았다.
지로가 알기로는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사달라고 조른 일도 없었다.
처음부터 아예 포기했던 것이다.
어린애들은 어딘가 부모를 보고 미리 포기하는 구석이 있다.
지로 역시 사립중학교는 절대로 못 간다든가, 내 방이 없는 건 어쩔 수 없다든가,
스스로 미리감치 틀을 만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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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운동으로는 안 일어나.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속으로 일으키는 것이라고!"
아버지가 부르짖었다. 점점 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집단은 어차피 집단이라고. 부르주아지도 프롤레타리아도 집단이 되면 다 똑같아.
권력을 탐하고 그것을 못 지켜서 안달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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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학교에서 배우는 거, 실은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야.
공부하는 내용도 그렇고 집단생활의 규칙 같은 것도 그래.
정해진 통학로로만 다녀야 하다니, 그런 건 명백하게 아무 의미도 없는 규칙이잖니?
나라에서는 국민을, 어른은 어린애들을 그저 편리하게 관리하겠다는 것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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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지로!" 준의 목소리였다. 돌아보니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나한테도 전화해야 돼."
"알았어."
"빨리 목욕하라니까!" 안쪽에서 아주머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리는 것과 동시에
준의 얼굴이 쏙 들어갔다. 복도를 두두두 내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따스한 기분이 되었다. 이별은 쓸쓸한 것이 아니다.
서로 만나 함께 어울리다가 와 닿게 된 결승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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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학교 선생님하고 무슨 이야기 했어?"
"응, 글쎄?" 어머니는 눈을 내리깔고 웃었다.
"늘 하던 대로 아버지가 야마시타 선생님을 끽 소리 못하게 눌러버렸지 뭐.
이 세상에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동이 몇 만 명이나 있으니까 그중
두 명이라고 생각해두쇼, 아마 그런 말을 했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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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지로네 누나가 왔다면서?"
"어떻게 아셨어요?"
"소식통 히라라 스토어 아주머니가 알려주셨지.
스물한 살이고 키가 큰 미인, 직업은 '그래익 데나이라' 라던데?"
"그래익 데나이라가 아니라 그래픽 디자이너인데. . ."
"히라라 아줌마가 그러시더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