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그저그런 역사이야기

김진영 |2006.12.11 01:59
조회 19 |추천 0

고려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우리 역사상 가장 작은 영토를 지녔던 국가? 힘이 없어 이 나라 저 나라에게 끊임없이 침략당하던 나라? 보통 많은 사람들은 고려의 역사를 수난과 수탈의 역사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너무나 나약했던 고려의 국력 때문이라고 이야기하죠. 사실 고려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작은 영토를 가지고 있었고, 또 끊임없이 외침에 시달렸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고려가 정말 나약한 나라였을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반론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칭기즈칸을 아시나요? 겨우 몇 십 명의 씨족에서 시작하여 거의 반세기만에 세계에서 가장 큰 제국을 건설했던 인물이죠. 단지 2번의 침공만으로 당시 중원의 패자였던 금나라를 굴복시키고, 몇 십 년간 금나라와 경쟁을 해오던 송나라마저 손쉽게 무너트렸죠. 칭기즈칸 사후에도 몽고는 서쪽으로는 러시아를 넘어 동유럽까지 남으로는 지금의 베트남지역인 서하 마저 점령하며 절대 강자의 자리에 군림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몽고제국의 힘이 가장 강성하던 때가 칭기즈칸의 손자인 쿠빌라이 칸이 집권하던 시기였답니다. 한족의 우수한 제도를 받아들여 국가의 기틀을 세운 그는 나라 이름을 원으로 바꾸고, 국가의 체제를 다져나갔습니다. 그리고 아직 자신의 발 밑에 두지 못한 나라. 고려에 대한 정벌을 단행하였죠. 초기 고려와 원의 관계는 원만했습니다. 도망친 여진족의 잔당을 함께 토벌하기도 하며, 꽤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죠. 하지만 원안에서 황금의 나라라 불렸던 일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고려의 국경을 넘던 원의 사신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면서 원의 고려침공을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사신의 죽음은 트집에 불과했죠)

 

하지만 고려의 저력을 실로 막강했습니다. 무적을 자랑하던 몽고의 기병이었지만 고려 궁수의 활과 훈련된 창 병들은 이를 훌륭하게 막아내었고, 만리장성도 가뿐하게 넘었던 원의 공성부대는 고려의 성을 뚫지 못했습니다. 결국 원나라는 7차례나 걸친 침공에도 고려를 점령하지 못하고 오히려 군의 총대장인 살리타이마저 잃게 되자, 고려 전역을 점령하는 것을 포기합니다. 다만 유리한 조건으로 고려와 강화를 맺는 것으로 만족하였습니다. 이는 원국의 역사상 유래 없는 일이었습니다. 실패를 몰랐던 원의 군대는 단지 일개 부장의 군단만으로도 동유럽 전역을 공포에 빠트릴 정도로 강력했고, 원의 기병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 원이 원정에 실패하고, 그 국가의 자치를 인정해 준다는 것은 매우 예외적인 일이었습니다. 비록 고려를 굴복시키기는 하였지만 그 국력을 무시할 수 없었던 원은 고려의 자치권을 인정하고, 매번 왕의 딸을 고려에 시집 보내 동맹관계를 견고히 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모 이런저런 말을 한다 해도 결국 고려가 패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세계 최강의 강대국을 상대로 국가를 유지시켰다는 것은 당시의 고려 역시 상당한 국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사실 원의 침략이전에는 거란족이나 말갈족에게 조공을 받기도 했답니다. 어떠세요? 고려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바뀌지 않으셨나요?

 

 

사실 겨우 대학교 1학년 밖에 되지 않았고, 역사를 전공하는 것도 아닌 제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어쩌면 주제넘은 짓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역사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떠버려 보려고 하네요. 부족하더라도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 www.ankko.com 기자 김진영 -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