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드라마 의
해모수로, ‘허셀크로’라는 애칭까지 얻으며 그의 존재를 다시 한 번 대중에게 각인시켰던 배우 허준호가 제작자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첫
작품 제작을 위한 오디션으로 말이다. 그가 공연제작사 장강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한 건 지난 2004년. 아버지(고 허장강
씨)의 이름을 따 회사 이름도 ‘장강’이라 지었다.“공연 제작은 제가 꼭 하고 싶었던 일입니다. 아버지와의 약속이기도 하고요. 아버지 성함을 회사 이름으로 내건 건 그만큼 열심히 하겠다는 의미예요. 쓸데없이 장난치지 않는다는 뜻이죠. 우린 관객에게 돈 받고 공연하잖아요.”
아버지의 이름으로 공연물을 올리는 만큼 첫 작품은 최고의 작품이라야 했다. 그래서 가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 1년 3개월이라는 제작 검토 기간을 거쳤다. 한 번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어 보자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뮤지컬 는 조선시대 일패 기생의 삶과 애환을 다룬 작품. 제목 ‘해어화’는 ‘말하는 꽃’ 즉 기생을 이르는 말이다. 이 작품에선 특히 춤과 노래에 능하고 교양이 뛰어났던 일패 기생을 일컫는다. 남자를 사랑할 수 있었던 이패 기생과 달리 일패 기생은 오로지 무대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쳐야 했다고. 화려하지만 그만큼 아픈 삶을 살아야 했기에 일패 기생의 수는 열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었단다.
“요새 기생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아 나오고 드라마 도 방영되니까 일부에선 를 따라한 거 아니냐는 소리도 있어요. 하지만 우린 이미 그 전부터 준비해왔거든요. 와 경쟁한다 뭐 그런 생각은 없어요. 우린 우리 작품을 아주 잘 만들면 되니까요. 투자가 안 돼 제작비용이 부족해진다면? 제가 밤무대라도 나가서 돈을 만들어 올 겁니다. 하하하. 그만큼 각오가 대단하다는 소리죠.”
는 장강엔터테인먼트와 MBC가 공동 제작하는 창작 뮤지컬로 제작비만 35억 원이 들어갈 예정. 특이할 만 한 점은 국내 최초로 드라마와 뮤지컬을 동시 제작한다는 점. 드라마는 내년 초에 뮤지컬은 내년 가을쯤에 공연될 예정이다.
“우연히 사석에서 제작사(스타맥스) 신병철 사장을 만났어요. 그때 일패 기생에 관한 작품을 구상중이라는 얘길 들었죠. 전 그때 일패 기생에 대해 처음 알았는데, 설명을 들으니 막 끌리더라고요. 그래서 ‘이 작품을 제가 뮤지컬로 만들겠다’고 졸랐어요. MBC측에서 소재를 얻고 또 함께 제작하는 건 사실 홍보 효과를 기대한 측면도 어느 정도 있어요.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죠. 한 번 공연하고 내릴 작품이 아니라 계속 공연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죠.”
그는 이 작품의 무대를 세계에 두었다. 뮤지컬 처럼 세계에서 인정받는 작품을 만들고 싶은 거다. 그래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했지만 우리 전통 리듬과 선율에 팝을 섞어 이른바 동서양 크로스오버 음악을 만들었다. 우리 가락의 멋을 살리면서 세계화를 꾀함이다. 음악 감독은 박칼린 씨가 맡았다.
<STYLE type=text/css> 아버지는 천재, 나는 노력파 드라마 에서 해모수는 죽었지만 그의 몸은 아직도 해모수의 잔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촬영 이후 인대가 늘어나고 체력도 많이 떨어졌기 때문. 그래서 그가 예수 역을 맡은 창작 뮤지컬 의 뉴욕 브로드웨이 공연에는 함께 하지 못했다.
“공연 준비는 계속 해왔지만 팀을 위해 뉴욕 공연은 포기했어요. 체력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라 어설프게 공연하느니 안가는 게 낫겠더라고요. 머리를 기른 것도 해모수 역할 때문이라고 생각하시지만 사실은 예수 역을 위해서였어요.”
이런 완벽주의적인 성향은 아버지의 영향일까? 그러자 그는 피식 웃으며 “아버지는 천재셨다. 하지만 난 머리가 나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며 웃었다. 그의 노력을 보여주는 몇 가지 에피소드. 영화 촬영 땐 NG대왕이란 소리까지 들었다. “여긴 실미도야”를 외치는 장면에서 NG를 스물여섯 번이나 냈단다. 처음 뮤지컬을 했을 때는 그보다 더 처절한 기억도 있다. 서울예술대학 무용학과 출신으로 ‘춤’은 좀 됐던 그. 그러나 노래가 턱없이 부족했단다.
“김지욱 음악 감독님(뮤지컬 국내 연출 담당)과 함께 작품 할 때였어요. 갑자기 저한테 500원을 주시더라고요. 어리둥절해서 ‘이게 뭐예요’하고 물었죠. 그랬더니 오락실 가서 두 시간만 놀다오라고 하시더군요. 저 때문에 합창 연습이 안 된다고 제발 딴 데 있다 오라는 거죠. 너무 창피했지만 나중엔 오기가 생기더군요. 그래서 죽자 사자 연습했어요.”
1950~60년대 한국 영화를 이끌던 전설적인 배우 허장강 선생은 아버지로서 아들 허준호에겐 어떤 모습이었을까?
“저에게 아버지의 모습은 딱 세 가지예요. 평생 연습하시는 분, 또 아버지로서는 아들 손 한 번 안 잡아 주시던 분 그리고 남들 앞에서 (유명인이기 때문에) 함께 나설 수 없는 분이요. 집에서도 분장하고 대사 연습하시고 나가셨으니 얼마나 열심이셨어요. 상대역이 필요하면 어린 저를 붙잡고 연습하셨죠. 어떤 작품을 맡건 항상 그러셨어요. 반면 아버지로선 좀 무심하셨죠. 허허.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돌아가셨는데 그때까지 학교에 딱 두 번 오셨어요. 바쁘기도 하셨지만 그 당시 아버지처럼 감정 표현 잘 안하시던 옛날 분이셨죠.”
그런 탓일까? 배우 허준호는 무대 위에선 그 누구보다도 강한 흡인력을 발산하지만 아홉 살 난 딸아이에겐 더할 나위 없이 다정하다. 그 자신, 아버지가 되면서 인생이나 연기에서나 좀 더 여유가 생긴 거 같다며 딸아이에 대한 진한 사랑을 드러냈다.
김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