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함없는 스타일 꾸준한 인기
한해 매출 17억달러. 젊어 무심코 들어선 길. 갈등끝에 그 길
을 벗어나 많은 이가 다른 길을 간다. 성가한 뒤, 돌아보면
그가 이룬 것들에는 흔히 처음 가던 길의 흔적이 역력하다.
조르지오 아르마니(70)가 그랬다
아르마니는 원래 의학도였다. 밀라노 외곽 피아첸차에서 운
수회사 매니저 아들로 태어난 그는 비교적 유복한 형편 덕분
에 베간 의대에 진학했다. 2년쯤 다니던 어느날, 피를 보는
게 지겨워졌다.
대학을 때 려 치우고 그는 밀라노 대형백화점 리나센티에 남
성복 바이어 조수로 들어갔다. 평생 업이될 남성복에 대한
안목을 이때 키웠다. 그는 80년대부터 세기말을 바라보는 지
금까지 단순하고 고전적인 수트로 세계 패션을 호령하고 있
다.
지난해 매출 17억달러. 6개 의상 라인과 24개 라이선스 사업
· 전세계에 2천개 넘는 매장· 런던과 밀라 노에 있는 카페· 피렌체 레스토랑에서 벌어들인 돈이다. 하지만 그 성공엔 외과 메스 놀림처럼 꼼꼼한 손길이 있다. 그는 컬렉션에 나가는 옷은 물론, 매장 디스플레이· 레스토랑 종업원이 끼는 장갑에까지 빠짐없이 신경을 쓴다. 그가 직접 디자인하는 품목은 1년에 3천가지가 넘는다. 그는 오전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일하는 일 중독자다. 그렇듯 그는 매우 집요하고 신중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의사와 닮은 직업정신을 지녔다. 그리고 변화를 싫어한다. 혁신을 생명으로 아 는 패션 디자이너로선 금기 같은 성격을 타고난 셈이다. 하지만 숨가쁘게 유행이 돌변하는 속에서 그는 역설적이게도 한결같은 색상과 스타일로 세계 패션을 제패했다.
그의 옷은 베이지나 회색같은 중간톤· 클래식하고 심플한 스타일로 대변된다. 80년대 전성기만큼은 못하지만, 그의 옷은 여전히 높은 인기를 누린다. 성공한 비즈니스 맨들이 가장 입고 싶어하는 옷· 외모 보다 재능과 지적 분위기로
승부하겠다는 할리우드 스타들이 즐겨 찾는 브랜드가 바로 아르마니다.
그는 64년 남성복 디자이너 니노 세루티에게 발탁돼 수업을 받는다. 하지만 그를 디자이너로서 대성시킨 사람은 11살 어린 건축학도 세르지오 가레오티였다. "당신은 누구보다 멋진 옷을 만들수 있다"는 격려에 힘입어 70년 프리랜서로 독립한 그는 75년 카레오티와 함께 회사를 세웠다.
그리고 그해 첫 진출한 75년 밀라노컬렉션. 아르마니풍 재
킷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어깨에 딱딱한 패드를 넣어 역
삼각형으로 경직됐던 기존 재킷을 아르마니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꿨다. 어깨 패드를 없애 부드러운 어깨선을 살
렸다. 흐르는듯 부드러운 소재로 넉넉하면서도 우아한 재
킷을 탄생시켰다. 사람들은 그를 남성복의 샤넬이라 불렀다.
당장 사방에서 아르마니를 흉내낸 재킷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밀라노는 세계 패션 중심지로 떠올랐고 그는 이 업적을 인정받아 82년 타임지 표지를 장식했다. 디자이너가 표지모델로 등장하기는 47년 뉴룩을 선보였던 크리스티앙 디오르에 이어 두번째였다. 그는 여성복에도 카디건처럼 편안한 재킷을 도입했다. 80년대 이래 여성들이 여성다움을 잃지 않으면서 포멀한 비즈니스 웨어를 입게 된 데에는 아르마니 몫이 크다. 동업자 가레오티는 좀 더 젊은 고객을 위한 엠포리오 아르마니(81년)· 향수 아르마니(82년)로 경영폭을 넓혀갔다. 덕분에 아르마니는 디자인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하지만 85년 가레오티가 암으로 떠나자 큰 도전을 받는다. 지안니 베르사체를 비롯한 경쟁 디자이너들로 부터 맹렬한 추격을 받으며 경영까지 떠맡아야 했다.
포멀 웨어로 이름을 냈으면서도 아르마니 자신은 예순 넘도록 티셔츠와 청바지를 즐겨 입는다. 젊은 시절 우상이 반항적 영화배우 제 임스 딘이었다는 술회와 관련이 없지않다. 아르마니는 사업가로도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90년대 초세계적 불황기에는 유행을 타지 않는 그의 옷이 연간 20%씩 성장세를 타기도 했다.
사람들을 미치지 않게 만들면서 잘 차려 입었다는 만족감을 줄 수 있는 편안하고 품격있는 옷 "그가 평생을 추구해온 패션 이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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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아르마니 스타일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의 디자인은 결코 화려하거나 과장되지 않는다. 일체의 기교를 배제한 심플하고 자연스러운 실루엣을 선호한다. 아르마니의 대표적인 칼라가 없는 슈트는 해마다 조금씩 변형되어 꾸준한 인기를 누리며 90년대를 풍미했다. 또 다른 특징적인 스타일로는 언밸런스하게 커팅되어 어깨에 리본을 묶는 디자인인데, 95년 이후 팬츠 슈트· 스커트 슈트· 재킷· 코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아이템에 적용되어 왔다. 어깨의 리본과 피트된 허리선이 여성스러움을 한껏 강조해 젊은 층에서 중년까지 폭넓게 사랑받았다. 70년대부터 지금껏 성공한 남성들의 꿈의 슈트로 알려진 아르마니 슈트로는 싱글 투 또는 스리버튼의 블랙슈트와 짙은 카키컬러의 슈트 등이 히트 아이템으로 인정받고 있다.
국내에는 92년부터 신세계 인터내셔날에 의해 소개된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특유의 절제된 디자인과 차분한 무채색 계열의 컬러 코디네이션을 통해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결혼 예복으로도 많이 사용되며, 넥타이· 스카프 등 액세서리의 인기도 높다.
자난해 전세계적으로 1조 5천억원의 매출을 올린 거대 패션 그룹 조르지오 아르마니· 지안 프랑코 페레· 지아니 베르사체와 함께 이태리가 낳은 유명 디자이너로 손꼽히는 그는 앞으로 세계적으로 진과 잡화류에 좀더 비중을 두고 사업을 전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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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디자이너 아르마니 "왜 이제서야 한국왔을까"
"디자이너로서 제 목표는 옷 안에서 사람의 몸이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고 그 옷을 통해 인체가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의상을 디자인하는 것입니다." 지난 2일 이탈리아 패션 거장 조르지오 아르마니(71)가 패션 인생 30년과 한국 내 아르마니 브랜드 전개 10주년을 기념해 방한했다.
그는 쓸데없는 군더더기를 없앤 편안하면서도 세련된 스타일의 의상을 선보이며 세계적인 톱스타들을 단골 고객으로 둔 패션 디자이너다.
이날 오후 남산 한옥 마을을 둘러보고 청담동 엠포리오 아르마니, 조르지오 아르마니 매장 등을 둘러본 뒤 그는 아르마니 매장 3층에서 기자들과 만나 자신의 디자인 철학에 대해 밝혔다.
그는 현재 자신만의 패션 철학과 사업 노하우를 토대로 세계 4천700여 명의 직원과 13개의 공장을 거느린 거대 패션 그룹 조르지오 아르마니 SpA를 설립해 CEO이자 디자이너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최근 한국· 일본· 중국· 인도 등 급부상하고 있는 아시아 시장과 문화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는 그는 이날 저녁 국내 문화· 예술계 인사와 VIP 고객들을 초청해 칵테일 리셉션을 가진 후 3일 출국한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에서 브랜드를 전개한 지 10년이 됐는데 이제야 첫 방문을 했다
한국에 대한 인상은
▲ 내가 왜 이제야 왔나 생각 중이다(웃음). 한국에 매장을 연 이후직접 방문하지는 못했지만 사진과 자료들을 통해 정기적으로 매장 상황을 관찰해왔다. 직접 둘러보니 매장이 아주 잘 돼 있어 기분이 좋다. 회견장에 오기 전에 한옥 마을을 둘러보고 한복도 입어보고 화보 촬영을 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짧은 시간이라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본 몇 명만으로도 한국인들이 좋은 의상과 유행에 관심이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번 방문으로 한국이 내 마음속에 한 자리를 차지하게된 것 같다.
지난 시즌 파리 오뜨꾸띠르에 진출했는데 뒤늦게 진출한 이유는 뭔가. 성과는 있었나
▲ 지금까지는 일을 위해 일했고, 새로운 의상과 유행을 추구하기 위해 일을 해왔다. 이번엔 나를 위해 일하고 싶었고 이를 통해 여성들에게도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고 싶었다. 여성들은 뭔가 아름답고 특별하고 희소 가치가 있는 것을 원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세계에서 2~3벌만 존재하는 의상을 통해 특별해질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했다. 어제 도쿄 패션쇼에서도 오뜨꾸띠르 의상 30벌을 선보였는데 관객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등 반응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완성도 높은 의상으로 유명한데 인체와 옷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가
▲ 처음 옷을 만들 때는 남자와 여자 모두 그 옷을 통해 멋있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디자인을 했고 자연히 의상과 인체의 관계를 연구하게 됐다. 사람의 몸이 아름답게 보이는 방법에는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인체 그대로의 모습으로, 즉 옷을 벗김으로써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옷으로 몸을 아름답게 꾸밈으로써 인체가 멋지게 보이게 하는 것이다. 나는 후자를 택했기 때문에 옷 안에서 사람의 몸이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고 그 옷을 통해 인체가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디자인을 추구해왔다.
아르마니는 디자인이 안정적이고 클래식한 반면 변화와 개혁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 30년전부터 만든 내 수트 스타일은 변하지 않았다. 활동적인 직장 여성을 위해 편안한 재킷과 통이 넓은 바지를 디자인 해왔고 그러다보니 "아르마니는 클래식하다"는 말도 들었지만 반대로 "유행에 뒤처진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나는 의상을 만들 때 옷을 입는 사람, 그 사람의 직업과 활동 시간 등을 고려해 인체에 맞는 편안한 옷을 만들려고 하긴 했지만 매번 디자인할 때마다 조금씩 새로운 부분을 첨가하는 것이 디자이너의 의무라고 여겨 그렇게 해왔다고 생각한다.
일흔이 넘었는데 은퇴 후 후계 구도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 아직은 너무나 일을 하고 싶고 내 일을 통해 평가도 받고 싶기 때문에 당장 은퇴할 생각은 없다. 지금으로서는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아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과 추구하는 바를 알려줘 내가 없더라도 아르마니 그룹이 지금의 스타일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기 위해 노력중이다. 내 역사를 계속 이어갈 사람들을 찾아낼 생각이다.
최근 아시아 시장과 문화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 아시아 시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고 최근 일본, 중국, 한국을 보면서 놀라곤 한다. 지난 시즌 내 의상에 동양적인 면을 가미해 동양에서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오히려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오랫동안 유럽인들에게 있어 동양은 부유한 사람들만이 한번쯤 올 수 있는 꿈같은 곳이었다. 이들이 직접 접하지 못했던 동양의 매력을 의상을 통해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동양의 미는 많은 디자이너들을 매혹시켜 왔다. 샤넬 뿐 아니라 존 갈리아노가 중국에서 장 폴 고티에가 인도에서 영감을 얻어 컬렉션에 동양적 색채를 가미한 것만 봐도 그러한 사실을 잘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