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너가 우리반에서 제일 못생겼어!”
아니, 맑은 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저 계집애가 익은 밥 먹고 선 소리를 멋대로 지껄이다니! 내 당장 멱살이라도 잡아 주고 싶었지만… 그는 일명 ‘짱’이었기에 못 들은 척할 수밖에 없었던 나의 여고 1학년 5반 때의 처절한 사건…. 정확히 12년이 지났지만 나는 그 상처로 인해 풀꽃 냄새를 나부끼며 지나가는 여고생들만 보면 가슴이 아직도 벌렁거린다.
이제 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못된 ‘짱’의 말에 동의를 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뭐 100% 반기를 드는 것도 아니다. 자라면서 기본적 인사성 멘트인 “예쁘게 생겼네”란 말을 들어보지 못했던 것은 물론이고 성인이 된 뒤에까지 신께서는 울 아부지 자식이 확실하다는 유전자 확인을 오렌지와 견줄 수 없는 피부로 시켜 주었으니, 그야말로 환장할 노릇이다.
“웬 꽃이 이렇게 많아?”
“생일이라고 영수 철수 민우 석현 그리고 음…. 또 누가 있더라?”
초등학교 시절부터 단짝인 친구는 원래 그렇게 예뻤던 것은 아니었다. 길가에 돌들처럼 흔한 외모였는데 2차 성장기를 고단백질로 보냈는지 어쨌는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S라인 몸매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그 증거가 생일이라고 보내준 숱한 남정네들의 꽃바구니들.
“돈이 썩어 난다 야!” 퉁박이라도 주고 싶었지만
“팔아 엿 바꿔 먹자”라는 식의 장난 섞인 멘트로 넘겨버리게 만드는 건 나의 콤플렉스 있는 자존심.
“못생겼다”는 말에 상처받고, 남자친구 많은 ‘단짝’에겐 열등감…부러움·질투로 점철된 숱한 날, 이젠 외친다 “난 괜찮은 숙녀야”
죽마고우와 미모에 대한 열등감은 20대 중반을 넘어서자 최고점을 향해 달려갔다. 나는 눈 씻고 찾아봐도 얼마나 꼭꼭 숨었는지 머리칼도 안 보이던 남정네들을, 그녀는 어디서 그렇게 많이 만나고 다니는지 부럽고도 또 부러웠다. 그러다가 그 애가 정말 사연 많은 연애를 하고 난 뒤, 헤어진 아픔에 방바닥 박박 긁으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릴 때 나는 그 아픔까지도 왜 그렇게 부러운지. 나는 아직 이성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덜덜덜 커피잔이 떨리는데 말이다.
그리고 얼마가 지나면 죽마고우는 쾌활하게 말한다. 연애가 고프다고…. 남자들 앞에 당당히 마주보며 얘기하고 웃고, 사랑하고 헤어지길 거듭하는 친구는 날마다 더 성숙해져 갔다. 서른살을 목전에 두고는 사랑의 정의에 대해서도 자신만의 색깔 있는 의견을 내놓는다. 연애소설은 내가 더 읽었는데, 시집 단어 하나하나에 내가 더 자지러졌는데, 왠지 모를 억울함 속에서 이론과 실전은 다르다는 걸 깨닫는다. 어제는 죽마고우가 비행기 타고 애인과 여행을 가 버렸다. 나는 뒤늦은 여름밤 노오란 달빛 비치는 방안에서 훌쩍훌쩍…. 괜스레 슬펐다. 또 코끝이 시큰해진다.
외모에 대한 나의 상처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치유되지 않았다. 한번도 “너의 외모 때문에 상처 받은 날들이 부지기수야”라고 말하지 않은 나의 자존심도 여전하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나는 나에게 말하고 싶다. 어쩌면 스스로 죽마고우에 견줘 외모란 잣대로 나를 규정하려 했기 때문에 숱한 날이 부러움과 질투의 날들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지면을 통해 심연에 있는 상처들에게 다독여본다. 걱정 마! 넌 충분히 괜찮은 숙녀야.
2006.11.15.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