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이든 다이제스트본이든 일리어드 오디세이를 읽어봤거나 그 내용이라도 대충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혹시 제가 글쓰다 영화 내용을 살짜기 밝히게 되더라도 '스포일러다. 처단하라!!!'고 분노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_-;;;
브래드 피트가 아킬레스라... 어렸을 때 약간은 흥분하면서 읽었던 일리어드에서 느낀 아킬레스의 이미지는 일단 무식하게 크진 않지만 균형 잡힌 육중한 체구에 검고 곱슬거리는 머리칼과 지중해의 태양에 그을린 붉은 얼굴... 뭐 그런 쪽에 가까웠습니다. 그에 비하면 브래드 피트는 몸은 예쁘지만 다소 말랐다고 느껴졌고 금발인데다 지중해의 느낌은 전혀 없어서 대략 좆치 않을거란 선입견을 갖고 영화를 봤는데...
제가 생각하던 아킬레스의 이미지와는 달랐지만 결과적으론 졸라 멋있었습니다. 몸도 많이 불렸는데 예전의 브래드 피트가 권상우 스타일의 몸매였다면 아놀드로 거듭났더군요.
외국에선 신의 피가 섞인 단순하고 용감한 영웅 아킬레스를 쓸데없이 복잡다단한 성격의 인간으로 바꿔놓았다고 혹평을 했단 얘기도 들리던데 원작이 어떤 원작인데 겨우(?) 2시간 반동안 원작에 충실하게 그 많은 이야기를 다 우겨넣겠습니까. 개인적으로 아킬레스에게 인간의 설정을 부여하고 원작에 나오는 신들의 이야기, 신과 인간에 얽힌 이야기를 완전히 배재시킨 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상황에서 신 나오고 그러면 영화 무지 엄해졌을 것 같고 그 많은 이야기들이 감당이 안될듯... -_- 그래서인지 영화에선 트로이의 멸망이 신만 바라보다 X된 것이라고 말하기라도 하듯 마지막 장면에서 신상들을 마구 파괴합니다.
브래드 피드가 워낙 멋지게 나오고 그에 대한 여성팬들의 반응이 너무도 폭발적이었지만 나머지 인물들의 캐스팅 또한 매우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오디세우스 역을 맡은 배우(반지의 제왕에서 보로미르로 나온 사람 같은데 이름은 모름)는 원작을 읽으면서 갖고 있었던 오디세우스에 대한 이미지 - 용맹한 영웅이면서 모사꾼 기질도 매우 다분한 - 와 너무도 잘 어울렸습니다. 반지의 제왕에 이어 여전히 활질을 하지만 성격은 왕창 틀린 올랜도 블룸도 사랑에 눈멀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나약한 파리스 역에 잘 어울렸다고 보여집니다. 원작에서 몹시 얍삽한 이미지로 기억되는 핵토르 역의 에릭 바나는 오히려 인간미와 지혜와 용맹을 두루 갖춘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괜찮은 캐릭터로 나오는데 절대 나쁘지 않았습니다. 근데 아가멤논은 마치 바이킹같아서 살짝 깼습니다. 그리고 헬레네 너무 안이뻤습니다!!!
전투 장면의 스케일이나 이런것도 상당했는데 반지의 제왕 이후론 그 어떤 영화의 전투장면도 '엄청' 대단하게 느껴지진 않네요. 하지만 브래드 피트의 검투장면만큼은 무술감독이 누군진 모르겠는데 브래드 피트의 체격에 맞춰서 아킬레스 컨셉도 잘 잡은거 같고 아주 멋졌습니다.
만약 속편이 제작된다면 오디세이가 될텐데 전편과 캐스팅도 배경도 거의 다르고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되겠네요. 해양 액션 스펙터클 대 서사시!!! 설령 만들어진다고 해도 트로이의 속편이라고 부르기가 참 꽁기꽁기하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