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이 밝은 빛을 뽐내며,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잠든 그들의 머리위로 아낌없이 쏟아져 내렸다.
따사로움과 작은새들의 기분좋은 지저귐 소리에 제일먼저 눈을 뜬 란아는,
주방으로 향한뒤, 커피를 내리고 또르르 흘러내리는 그 광경을 잠시 바라보다
무료함에.. 집구경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곳은 어린날의 그들이 많은 추억을 남긴 곳이라 했다.
또 그들의 부모님..
살아계셨다면 자신의 시 부모님이 되셨을 분들의 손때가 묻어있는 곳..
한 번도 뵙지는 못했지만 집안 곳곳에서 보여지는 따스함과 편안함이 그분들의 다정다감한 성품과
밝으면서도 조용한 인품을 나타내 준다.
어제 처음 이곳에 발을 들여놓은 자신이지만, 이상하게도 이방인이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왠지 자주 드나들며 애착을 쌓아 놓은듯, 금새 친근한 곳이 되어버렸다.
이곳이.. 좋아져 버렸다..!
손가락으로 반들반들 윤이나는 벽을 쓸어올리며 나무계단을 올라서다,
문득.. 자신의 아이들이 이곳에서 뛰어노는 장면이 생각나 환한 미소를 지었다.
세상에..!!
아이들로 북적거리는 이곳은.. 정말 근사할 것이다.
나와 예후씨.. 그리고 예은이와 성하씨의 아이들..!!
벌써부터 차오르는 가슴떨리는 감격에 란아는.. 긴긴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도무지 입가에서 떠날줄 모르는 환한 미소와 함께..
"으응~ 눈부셔어~"
두 팔을 머리위로 뻗으며 기지개를 켜던 예은이는,,
살짝 뜬 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에 못이겨 작게 코 끝을 찡그리더니 이내 투정을 부린다.
벌써부터 일어나 예은이의 잠든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난,,
그 모습에 잔잔한 울렁거림을 느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이 모습을 매일 볼 수 있다.
오늘처럼.. 예은이 곁에서 눈을 뜰 수 있다.
결혼하면 매일 아침 예은이보다 먼저일어나 이 기쁨을 만끽하리라 마음먹으며..
"이제 그만 일어나시지요. 공주님~ 해가 중천에 떴습니다."
예은이의 코에 자신의 코를 비비며, 입술이 닿을듯 말듯한 거리에서 말했다.
굿모닝 키스를 부드럽게 해주려던 내 생각은..
"피이~ 공주 깨우는 법 몰라?"
"어~어?! 읍!"
목에 팔을 두르며 가까이 끌어당기는 예은이 때문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녀에게... 당해버렸다.
"그런데 오빠랑 란아 언니는..?"
"응.. 란아씨는 내가 일어났을때부터 없었고 형은 란아씨 찾으러 나갔어. 아마 산책하고 있을
거라면서."
"그래? 둘이 데이트 하나..? 왜 이렇게 안와."
"음.. 아닐걸?"
"왜?"
"란아씨가 밖으로 나가진 않은거 같아서.. 문 여닫는 소리는 못들었거든. 아마 2층 어딘가에서
모험심을 발휘하고 있지 않을까..?"
"뭐? 그런데 왜 오빠한테 말 안해줬어?"
"킥.. 너랑 키스하고 싶어서 쫓아냈어."
"하여간… 못됐어 진짜.."
"형 오기전에 한 번 더 할까..?"
"악~! 싫어. 빨리 일어나서 란아 언니나 불러줘."
"왜? 뭐 필요한거 있어?"
"아니, 그런건 아니구 오늘 아침에 언니랑 같이 목욕하기로 했거든. 어제 밖에서 고기 구워먹고 피곤해서 그냥 잠들었잖아. 이거봐.. 우와~ 아직도 냄새가 배어있어. 그치?"
티를 살짝 잡아당겨 냄새를 맡으며 내게 물어오는 예은이는..
선명해진 가슴굴곡과 드러난 허리로 인해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고나 있을까..?
휴.. 예은아.. 예은아.. 넌 어쩜 예나 지금이나 내 생각은 전혀 안해주는 거니..?
그러다 결국..
예은이의 입에서 어떤 말이 흘러나올지 뻔히 알면서도 난..
"예은아. 나도 너랑 목욕 할 수 있는데.."
실없는 말을 내뱉어 버렸다.
"그치만 지금은 좀 그렇잖아. 나중에…"
어라..? 이게 아닌데..?
"응? 너 방금…"
"우씨.. 뭘 못들은 척 하고 그래? 다시 묻지마! 쑥쓰러우니까.. 어서 언니나 찾아줘."
하.. 하하..!!
알았어.. 알았다구..
"오케이~! 대신 너.. 나중에 발뺌하기 없기다?"
예은이를 가볍게 안아올려 쇼파에 앉힌다음, 입술에 짧은 입맞춤을 남기고 란아씨를 찾아나섰다.
그리고 계단을 2계단씩 뛰어오르며,, 마음속으로 형에 대한 작은 원망을 품었다.
결혼식 날짜를 그렇게나 늦게 잡을건 뭐람…?
"빙고!!"
문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돌아보았다.
방금전까지 여러 종류의 책이 빼곡히 꽂힌 책장 위에 올려져있는 흥미로운 물건에
잔뜩 정신이 팔려있던 터라 인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와~ 왜 그렇게 놀라요? 내가 다 무안하네~"
그곳엔 멋적은 웃음을 짓고 서있는 성하가 보였고,,
"아.. 저 위에 있는 저게 뭘까.. 생각하고 있었어요. 정신이 팔려있다보니 저도 모르게 놀랐네요."
내말에 다가온 그는 커다란 코팅 용지가 둘둘 말려있는… 손이 닿지 않아 바라만 볼 수 밖에 없던
그 호기심의 물건을… 손을 뻗는 단순한 동작만으로 꺼내보인다.
"이거요?"
"네."
하지만 그는 내미는 내 손을 피해 더 높이 들어올리며…
"이거 굉장히 중요한 건데.. 아마 란아씨 평생에 보물이 될 수도 있는거에요. 쿡.. 그러니까 그냥은
안되요."
장난스레 말을한다.
"흠.. 보물의 가치가 없기만 해봐요. 가만 안둘거에요. 자.. 뭘 원하죠?"
"있죠. 란아씨 결혼식날 저와 예은이도 결혼할꺼에요. 물론 아직 예은이는 몰라요. 하지만 그날
꼭 할거거든요? 그러니까 란아씨가 예은이 치수랑 뭐.. 이런거 좀 알아주세요. 전.. 아무리 안아
봐도 영 모르겠거든요. 저기.. 드레스도 골라주시면 더 좋구요."
점점 입이 벌어지는 날 보았는지..
"소리지르지는 말아요! 예은이가 들을지도 몰라요."
서둘러 당부의 말을 남긴다.
하.. 참…
이건.. 정말이지…
"그러니까.. 예은이는 모르는데 결혼식을 한다는 건가요? 프로포즈는요?"
"물론 그날 할거에요."
"음.. 그러니까 합동 결혼식을 하자는 건가요? 예후씨는 알아요?"
"네. 형은 알고 있구요. 같은 시간에 식을 올리기엔 좀 촉박할 것 같아요."
"저기.. 성하씨.. 너무 기뻐요. 예은이도 분명 좋아할거에요. 참! 축하드려요! 아니아니.. 무슨 말부터
해야할지.. 정신이 없어서.."
"하하.. 진정하세요."
"뭐든지 도울께요. 말씀만 하세요."
"감사합니다. 자, 그럼 협상된걸로 알고 이거 드릴께요. 사실.. 형 몰래 숨겨두었던 건데..형이 알면 전
죽음입니다."
예은이의 결혼식으로 인해 너무 흥분한 나머지 잠시 잊고 있었던 물건을 내게 넘겨주며 보이는..
그의 기대 가득한 눈빛에.. 나도 모르게 서둘러 풀어보았다.
그리고 서서히 보여지는…
포스터 속의 남자…
세상에…!!
세상에………!!
말 그대로 입이 쩍 벌어져 버렸다.
광고용으로 보이는 그 포스터 속의 모델은 다름아닌 예후였고..
지금보다 훨씬 앳된 모습의 그는..
날 보며 예의 그 살인 미소를 짓고 있었다.
게다가.. 게다가.. !!
상체는 훌러덩 벗은 채… 민망하게도 달랑 속옷하나 걸친 모습으로…
아니.. 민망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실존하지 않는 고대의 신과도 같은 모습이었으니까…
"꿀~떡!! 저기.. 김성하씨.. 제가 지금 잘못본게 아니라면 이 모델은.."
"예후형이죠."
"그렇죠. 그렇네요. 맞아요."
"쿡쿡.. 정말 죽이지 않나요? 남자가 봐도 참 멋있어요. 이거 제건데 란아씨 드릴께요. 대신 제가
줬다고 하면 안됩니다. 그냥 집 어딘가에서 발견했다고 하세요."
문 밖의 동태를 살피며…
"그리고 어서 내려오세요. 예은이가 찾아요."
재빨리 말하던 그는 몸을 돌려 나가려한다.
"저기요! 잠깐만요. 예후씨가 예전에 모델이었나요?"
"음.. 전문적인 모델은 아니었어요. 형이 처음 아프로디테를 물려받았을땐 그야말로 가망이 없었죠.
그런 회사에 당연히 모델들이 몰릴리도 없구요. 그 당시에 기가막힌 광고기획은 짜 놓은 상태였는데..
뭐 결국 모델을 기용하지 못해 형이 나서게 되었어요. 그리고는 그 상품이 날개달린듯 팔렸고..
지금의 탄탄대로를 만들어주었죠. 그 이후로 형은 두번다시 모델로 나서지도 않았고, 정량만 인쇄해
두었던 포스터는 모두 회수했죠. 그중에 하나를 제가 몰래 슬쩍 한거구요. 이쯤이면 이해가 가시나요?"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포스터 속의 예후만 뚫어지게 바라보는 날 두고…
"이런, 형이 돌아왔어요. 어서 내려오세요."
이말만을 남긴채 그는..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정말로 이 포스터는.. 나의... 보물이 되어버렸다.
♥ 그들의 결혼식1 ♥
"자, 자~ 빨리 빨리 서두르세요~! 아! 이봐요! 거기 그 테이블은 이쪽에! 의자는 저쪽에!"
일요일인데도 도심 한복판에 자리잡은 35층의 높다란 빌딩에는 시끌벅적한 활기가 흘러 넘친다.
"예식시간 1시간전 입니다. 서둘러주세요~!"
그 건물 제일 꼭대기에 위치한 옥상은 어느새 조금씩 조금씩 식장으로 변모해 가고..
오늘의 주인공들을 축하해주러 온 하객들이 하나 둘 늘어간다.
한편,
건물 맨 아래 1층 로비에서는..
곱디 고운 드레스를 차려입은 눈이부시게 아름다운 란아와 전직 모델(?) 다운 몸매를 자랑하며
몸에 꼭 맞는 턱시도를 입고있는 매력적인 예후가 행진을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입가엔 연신 미소를 지으며…
"정말 아름답군."
"당신도 멋져요."
"앞으로 더욱 행복합시다."
"네. 꼭 그래요 우리."
"자~ 신랑 신부~ 입장~"
그때 온 건물에 울려퍼지는 음악소리와 성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흠흠, 신랑 신부가 1층에서부터 걸어 올라오려면 꽤 많은 시간이 걸릴듯하니.. 하객여러분들은
기다리기 지루하시더라도 앞에 놓여있는 음식과 음악을 마음껏 즐기며 참아주십시요. 휴~ 이런
결혼식이 또 있을까요? 하여간 별납니다. 별나요. 그쵸?"
그리고 그들은 간간히 들려오는 성하의 익살맞은 목소리를 들으며,,
1층에서부터 천천히…
옥상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서로의 손을 맞잡고,, 한계단 한계단,,,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오늘따라 더욱 멋있어 보이는 성하를 넋놓고 바라보았다.
왜 결혼식 사회를 본다고 나서서 날 혼자 내버려 두는거야..?
저 멀리서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특히 젊은 여사원들의 뜨거운 시선을 받으며…
특출난 말솜씨를 뽐내고 있는 성하는 얄밉기도 하면서 무척이나 멋있어 보였다.
아침에 본 란아언니의 아름답고 행복한 모습에 뜻모를 부러움이 생기고,,
그 부러움은 점차 늘어나 날 의기소침해지게 만드는데…
그런것도 모르고 얼굴가득 웃음짓고 있는 성하가 너무도 밉다.
그를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설움이 밀려올것 같아 서둘러 두눈을 들어 맑고 푸르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사회를 보는 중간중간,,
저만치서 새침한 모습으로 예쁘게 앉아있는 예은이를 훔쳐보았다.
식이 끝나면 예은이에게 프로포즈를 할 것이다.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리고 우리의 결혼식이 이어질 것이다.
예은이가 허락한다면..
제발,, 제발,,
오늘이 자신의 결혼식날이 되기를 바라며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켜 나갔다.
"휴우~ 힘들지 않소?"
"아뇨.. 헉.. 전혀요."
"쿡쿡.. 거짓말. 내가 안고 갈까?"
"됐네요. 이제 거의 다 왔잖아요. 내 발로 걸어갈래요. 휴우~ 그런데 당신 뭐하러 이렇게 높게
지은거에요? 원래는 10층 건물이었다던데.. 조금만 낮았어도 좋았잖아요."
"지금 내 능력을 힐난하는거요?"
"풋~ 얘기가 그렇게 되나요? 아니에요. 사실, 한층 한층 오르면서 이게 우리 서방님이 피땀을 흘려
이룩한 곳이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지던걸요? 당신이 자랑스러워요."
이제 3층 남았다.
다리는 천근만근 무겁지만,, 애써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내 마음을
전했다.
"고맙소."
"저기.."
"저.."
"풉~ 먼저 말해요."
"아니, 당신부터.."
"싫어요. 당신이 먼저 말해요."
"레이디 퍼스트"
"하여간, 잘도 갔다 부친다니까,,, 그럼 제가 먼저 말할께요. 이봐요 정예후씨."
"음?"
"당신한테 부탁이 하나 있어요. 꼭 들어줘야 해요. 그럴 수 있죠?"
"뭐든지.."
"당신.. 앞으로 오래도록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이렇게 저와 함께 걸어줘요. 매 순간을 마주볼 순 없어도 언제나 나와 함께 나아가줘요. 내가 힘들땐 당신이 끌어주고,,, 당신이 힘들땐 내가 이끌어 줄께요. 그러니까 우리 중 누구하나 뒤쳐지지 않고 함께 걸어가요. 가끔은 지쳐 쉬어갈지라도,, 그런때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웃음지을 수 있도록.. 예쁘고 올바르게… 똑바로 걸어나가요. 네?"
"이런, 내가 먼저 말할걸 그랬소. 어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렇게 다 하는거요? 좋소, 우리 서로 약속
합시다."
"네. 그래요."
그렇게 우리는 서로 맞잡은 손에 지워지지 않는 맹세를 새겼다.
연분홍 계열의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주희는 옥상 입구에 서서 아래 계단을 내려보며 초조하게
서성거렸다.
이제 조금 있으면 딸과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불과 몇개월 전에 만났었지만,,
지금은 그때완 달리 온전한 정신이므로…
정확하게 따지자면 어린딸을 마주하는 것과도 같다.
기억속의 내 아이..
엄마 노릇을 하던 시절...
품안에서 애지중지 키웠던 내 딸..
내 사랑하는 딸.
이 좋은날 눈물을 보이면 안되는데..
벌써부터 목이 메이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괜스레 두손에 들린 손수건만 쥐어짜고 있다.
란아의 기쁜 표정을.. 웃는 얼굴을… 볼 수 없을까봐 두렵다.
이 못난 어미..
원망의 눈으로 바라볼까…
그 고운 얼굴에 눈물이 흐를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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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찾아 뵙죠?
원래는 이번편이 마지막회가 되었어야 하는데...
마무리를 짓지 못했습니다.
요근래 저에게 참 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나네요.
조금있으면 전 수술하러 가요.
5시 30분에 나가야 하는데 좀 무섭습니다.
뭐.. 커다란 수술은 아니구요.
크게 걱정할만큼 대단한 일두 아니지만,,
그래도 수술하고.. 몇일 쉬고.. 다음주에 출근하면 공백이 길어질것 같아 조금이라도 올리고 가요.
제 수술이 잘 되길 모두 기도해주세요..
전 이만 갈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