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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고를 두드립니다.덩!덩!덩!(김작가의 첫번째)

김수남 |2007.01.06 06:06
조회 69 |추천 1


 

한집안의...장녀로 태어나 아빠와 엄마의 귀한 사랑을 다 받아 온 나는...행운아였고...또 밝은 사람이었고...남을 의심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으며...절망이란 걸...모르는...지금 되돌이켜 생각해 보면...내가 생각해도...나는 너무 맑은 사람이었습니다. 오늘이 오기 전까지는요...^^

 

부산에서 대학생활을 마치고...졸업할 무렵 눈뜨게 된 나의 미래에 대한 꿈...방송작가...^^

이제 졸업하는 사회 새내기여서 그랬는지는 몰라도...나에게 부산은 좁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았구요.

그래서 부모님을 설득했습니다.

부산에서는 드라마에 대한 공부도 못 하니...서울로 가서 한번 열심히 살아 보겠노라고...ㅎ

그때가...2003년...월드컵이 열기가 지난지 얼마 되지 않은 그때에...

내 고집으로 4월 5일 식목일에...내 미래를 심는다는 마음으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거기서부터...시작이었습니다.

 

방을 얻기 위해 서울역에 도착하여...먼저 동대문 시장에 가서 살 것이 있어...지하철도 탈 줄 모르기에 택시를 탔습니다. 미터기를 끄는 아저씨...난 놀라 "왜 그러세요?"라고 물으니...서울역에서 동대문 시장은 멀어서 정액요금제라면서...무조건 그냥 1만원만 주면 된다고 하더라구요.

제가 뭘..알겠습니까..아저씨께 "감사합니다."라며...인사를 했죠. 정말 좋은 아저씨구나...라고 생각하며...창밖을 내다본지 몇분이 채 되지도 않아 다 도착했다고 합니다.

밖을 내다 보니...동대문 시장이라 되어 있더군요.

"이렇게 빨리 왔어요?" 의아해서 물어보니...아저씨왈..."지름길로 와서 그런거라고."

저는 어리둥절했지만...그냥 고맙다..라고 생각하며 내렸습니다.

훗...뒤에...내가 살아갈 방을 구하고...그 근처의 아카데미에서 만나게 된 사람들...

그 사람들과 얘기하다 우연히 그날의 얘기가 나왔고...난 졸지에 바보가 되어 버렸습니다.

 

'내가 나쁜 건 아닌데...난 사람 말을 믿은 것...뿐인데...

 아...이래서 서울에서는...긴장하며 살아야 한다는 거였구나...'    ----- ㅜㅜ/

 

방송 아카데미에 다니면서 새로운 선생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연세가 많으신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솔직히...그 아카데미의 운영 방식에 불만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6개월 과정 등록비는 엄청난데 비해서...

아카데미가 제공해 주는 공간은...강의실 하나밖에 없었으니까요...

부산에 있는 아카데미에서는 선생님들이 열정이 많으셔서 그랬는지...굉장히 체계적이었거든요. 그리고 현재 방송 생활을 하고 잇는 작가분들이 오셔서 가르쳐 주셨구요.

근데..이아카데미에서는 구성작가반과 드라마 작가반을 한 교수님이 쭉~~~가르치셨습니다.

물론...작가계에서 은퇴하신 분이셨구요.

그래도 배울 게 있겠지...싶어서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이상했던 건...항상 과제로 기획안 만들어오기..를 내 주셨는데...

그러면 또 집에 가서...엄청 고민하며 내가 만들 프로그램을 상상하면서 열심히 해 가면...

다 수거를 해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물론,,선생님이 꼼꼼하게 읽어보시고 우리에게 더 좋은 어드바이스를 해 주실려고 그러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흠...나중에 그 선생님이 사업을 하신단 얘기를 들었습니다.

내가 낸 기획안의 아이템과 똑같은 것으로...

미디어쪽 사업을 하신다는 얘기를 듣고는...한숨만 나올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난 젊으니깐...이제 시작하는 단계니깐...ㅋ...

그 아이템 하나 잃어도 난 무궁무진한 나만의 세계를 지니고 있으니깐...하고 말이죠....ㅜㅜ//

 

 

그런데 그 선생님께 또 한번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아르바이트 거리가 있다고...한번 해 보겠냐고 하셔서...

무슨 일이든 많이 해 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었으니 당연히 하겠다고 했죠.

제가 해야 할 일은...교재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방송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초,중,고등학교에서도 청소년 아카데미란 것을 만들어

특별활동 시간에  방송에 대한 것들을 배우는 거라고 하더군요.

정말 기대에 부풀어 일을 했습니다.

내가 만드는 교재로...청소년들에게 방송에 대한 꿈을 심어줄 수 있다는 생각에

밤낮없이 열심히 일했습니다.

다른 아르바이트도 다 접구요.

2개월이 넘게 걸린 교재 제작 기간동안 20만원을 수당으로 주실 거라고 했습니다.

원래 교육생들이기 때문에 돈을 안 주는데...선생님께서 특별히 베풀어서 주시는 거라고...ㅠㅠ

그래서 전 감사하게 받았습니다.

머리가 커서도 부모님께 손 벌리는 처지였지만...이렇게 경력을 쌓다보면...

더 많이 부모님께 해 드릴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부모님께서도 "네가 한번 하기로 한 거...돈은 생각하지 말고...네 꿈을 향해서 열심히 날아봐라."라고 하시며...많이 격려를 해 주셨죠.

그런데...교재 제작을 해 오는 동안...불신은 깊어만 갔습니다.

아직 나는 방송에 대해 많이는 모르기에...선생님의 보조로 일하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선생님은 한번도 도와주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다 만들어서 한권을 완결시켜 놓으면 그걸...그 사장한테 가져다 주고는 자신이 다 한 것처럼 얘기하고...그래도 교육생 시절엔 다 그렇겠거니...하고 참았습니다.

그러다...교재 제작이 끝나고...일이 터졌습니다.

선생님은 잠적했는데...그 사장은 난리가 난 것입니다.

선생님이 교재를 제작해 주는 동시에...그 교재의 해답문 형식으로 해서 책을 엮어 주기로 했다고...말입니다.

그래서 저보고 해 내라고 난리였습니다.

그때...알게 된 것은...그 선생님이 교재 계약을 하며 받은 돈은 수천만원...

근데 돈은 다 받고 사라져 버린 것이었습니다.

정말 ...속상한 그날..이었습니다.                             --------ㅜㅜ///

 

 

그렇게 아카데미를 졸업했습니다.

아카데미에선 취업의 취...자도 꺼내주지 않았습니다.

아카데미에서 준 것은 수료증 한장이 전부였습니다.

홈페이지에 광고했을 때는...취업100% 보장이었으면서...말이죠.

그런데...지금까지의 일들은...ㅋ...다음에 벌어질 일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밖에 되지 않을 거에요.

분명...내가 나쁘게 산 건 아닌 것 같은데...항상 결과는...내가 바보가 되어 버리더군요.

 

 

아카데미를 다니던 중에...부산의 아카데미 조교 선생님에게서 전화 한통을 받았습니다.

잘 지내냐고...서울은 괜찮냐고...네가 만들어 보면 좋겠다 싶어서 추천한다면서...동국대학교 홍보 영상의 구성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연예인이 아주 많은 동국대학교...그리고 연영과와 영화과가 인기를 이루는 만큼...그 학부의 학생들과 동국대 미디어 영상대학원생들과 팀을 이뤄 작업을 시작했죠. 같이 일하는 팀원들과는 참 잘 맞아 좋았지만...우리 팀을 총괄하시는 교수님의 엉뚱함에...일은 진도가 나가질 않았어요.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하긴 했지만...어딘가에서 붕~~떠 버린 나의 원고료...ㅠㅠ 돈이랑은 인연이 없는 건지...아니면 정말 바보인지...나는 항상 당하기만 했죠. ----ㅜㅜ////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한달 정도 지난 뒤에...

그때 같이 영상작업을 했던 대학원생 중 한분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자신이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상업체를 하나 만들었는데...

지금 LG그룹에서 홍보 영상 의뢰가 하나 들어와 있는데 작가를 생각하다 보니 김작가가 생각이 나더라면서...같이 일해보지 않겠냐고 하더군요.

전 고마운 마음에...사무실을 찾아갔죠.

청담동에 있는 고급스런 사무실이었어요.

그때부터 제 인생은...완전히...내리막길로 가게 되어 버렸죠.

 

 

나에게 주어진 일은 LG 전자의 사내 직원들을 교육할 수 있는 영상을 만드는 것이었는데요.

어깨가 많이 무거워졌죠.

그래서 제작한 영상이 "말의 힘"이란 것이었어요.

역시 대그룹은 뭔가가 다르다고 느낀 게 그때였는데...

LG에서는 정신적인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더라구요.

많이 힘들었어요.

생전 처음 해 보는 명상...그 명상의 글을 제가 써야 했구요...

명상이 뭔지 아시죠???

잔잔한 나레이션이 나오면서...그 나레이터가 말하는 대로 따라하며...복잡하게 꼬여 잇는 머릿속을 시원하게 만드는...ㅋ...

원래는 "말의 힘" 영상 15분물만 해 주기로 했는데요...

저에게 같이 일을 하자고 하셨던 분이 일처리를 잘 못하시는 스타일이더라구요.

밤과 낮이 바뀌어 있고...일이 여러가지 겹치면 무엇부터 해야 할지도 모르고...

내가 편집하는 기술만 알았더라면...더 빨리 끝낼 수 있었을텐데...그때 느낀 게 그거였어요.

 

'작가도 모든 걸 다 할 줄 알아야겠구나... '

 

완전 처음부터 새로 만들어야 하는...'말의 힘'이라는 기존의 내가 계약한 영상 15분물에...

이순신의 생애를 되돌아보며...LG의 사훈을 사원들에게 인식시킨다는 취지로...

역사스페셜에서 방송된 이순신의 모든 것에서...

4시간 정도 되는 방송물을 사훈 10가지에 맞도록 15분물 영상으로 편집하는 거였는데...

내일이 넘기는 날이면 오늘 저녁까지 하나도 되어 있지 않기에...

답답한 마음에 제가 편집은 못하고...필요한 영상 부분의 타임코드만 적어...

짜 맞추기만 하면 되도록...다 써 주었습니다.

오려내서 편집하는 것이다 보니..조금만 흐트러지면 내용이 어긋나니까요.

그것을 하다 보니...또 다른 것도 하나 넘겨야 했는데...그것은 다 한 줄 알고 있었는데...

그때서야 발견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그것도 편집을 했죠.

휴먼다큐멘터리에서 방송된 "강영우 박사"의 일생을 되짚어 보며...

사원들이 배울 수 있는 점들을  부각시켜 15분물로 만들어 달라고 하는 거였는데요...

그것 역시...하나도 되어 있지 않아...늦게까지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사무실은 청담동...저희집은 홍대앞...

밤과 낮이 바뀐 그 분의 습관때문에 항상 새벽2시 정도에야 집엘 가게 되었고...

택시비는 고스란히 내 주머니에서 나가고...그렇게 나간 택시비만 해도 30만원이 넘었으니까요. 그래도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했습니다.

내가 아직 원고료의 기준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아는 작가 언니에게 전화를 해 물어보니...

5분 기준으로 15만원~30만원까지 받을 거라고 하시더군요.

내가 받은 돈은 70만원...2개월 일하고 받은 전부였죠.

거기에서 택시비 빼고 나면...ㅋ...그때 엄마가 웃으면서 하신 말씀이 사라지질 않네요.

굶어죽기 딱...좋은 직업이 작가인 것 같다고요...

ㅋ...저도 웃음밖에 나오질 않더군요.

방세가 월마다 35만원인데...ㅋ...방세내고 나면...방 구들을 뜯어 먹고 살아야 하는 박봉이었죠. 그래도...뿌듯했어요.

엄마에게 봉투째 건네줄 때의 그 기분...얼마나 좋은지 몰랐어요. -----ㅜㅜ/////

 

 

근데...그게 제가 번 마지막 돈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답니다.

그때가 2004년 11월...

지금이 2007년 1월...

지금은 아니지만...2006년 12월까지...난...열심히 일하는 백수였습니다.

죽어라고 일은 하는데...돈은 한푼도 못 받은...ㅋ...얼마나 웃기고 답답한 얘기인지 들어 보실래요??

 

 

어쩌면...제가 마음 단속을 잘 못해서 벌어진 일 일수도... 있습니다.

LG 영상을 만들었던 청담동 회사의 이름이 "비쥬얼 씨드"였습니다.

영상을 만들던 그때...전..사랑이란 걸...하게 되었습니다. 짝사랑이었죠.

저와 함께 일하시던 분에게 사촌형이 있었는데...

키도 크지 않고, 스타일은 별로 뛰어나진 않았지만...

우연히 가지게 된 술자리에서...그의 군대생활 얘기를 들으면서...

그리고 자신은...항상 바르게 살아왔다는...얘기를 할 때의 그 사람의 눈을 보며...

사랑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 사람과 나의 나이차는 4살...그리고 그 사람은 제가 좋아하는 눈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탤런트 송승헌처럼...깊고 까만 눈동자를요.

그리고 진실되게 말하는 그의 모습이 눈동자와 너무 잘 어우러져...

그 어른스러움에...진실돼 보이는 모습에...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답니다.

ㅋ...이런 얘기가 있죠?

먼저 사랑하는 쪽이 진 거라고...ㅠㅠ

나는 그 사람도 저를 좋아하는 줄 알았습니다.

저에게 굉장히 관심을 많이 보였었거든요.

그래서 짝사랑이 더 깊어진 거겠죠.

기대를 하면서...근데...영상 작업이 끝나면서...그와의 만남도 끝이었습니다.

영상 작업을 한 원고료 70만원 받는 것도 한달이 넘게 걸렸으니까요.

그때 저는 부산에 내려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난 그들에게 잊혀진 사람이었습니다.

돈을 통장으로 받던 날도...얼마나 굴욕스러웠는지 모릅니다.  -----ㅜㅜ//////

 

ㅋ...얼마나 많이 아파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자책도 많이 했습니다.

스타이은 별로였지만...온몸에 명품으로 휘감았던 그...차는 폭스바겐...ㅋ...

나에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는데...내가 괜히 이렇게 만든거다...라고 자책하며...

그렇게 가슴 아파하며...1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부모님 곁에서 마음의 위로를 받다가...다시 서울로 왔습니다.

그리곤 한국 방송 작가협회의 비드라반 연수반에 들어가서 6개월 공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의 그 비참한 마음을...성공하는 모습으로 갚아주겠다고 결심했거든요.

부모님도 동의했구요.

그렇게 교육기간이 지나는 동안 한 프로덕션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큐코리아..라고 하는 곳이었는데요...

그때 한참 남북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을 때였거든요.

일을 해야 겠다는 생각에 이력서를 넣고 나서 다음날 면접보러 오라는 전화를 받고...

정말 떨리는 마음으로 학동에 있는 그 사무실을 찾아갔습니다.

아주 아담하게 펜션처럼 생긴 그곳은 일하고 싶다는 마음을 부추기더군요.

면접을 보면서 떨어지면 어쩌나...싶은 두려움도 가득했었는데...

그 PD분이 잘해보자면서...얘기하시는 순간 너무 좋아서 기절할 뻔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하시는 말씀이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이 일이 끝나고 정규직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해 주시겠다고...ㅋ...너무 기뻤습니다.

처음 면접 본 직장에서 그렇게 잘 풀려 나갔으니 말입니다.

ㅋㅋ...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이산가족의 숫자가 어마어마했기에...

하루에 팀별로 1시간 정도 분량의 촬영 테잎을 10분짜리 영상물이 되도록 프리뷰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산가족들이 헤어진 동기간들을 찾는 것이었기에...

지역명이나...이름, 나이...등이 분명해야 했으므로...검수받을 때의 까다로움이 굉장히 컸었죠. 하루에 팀별로 배당된 양은 11개...

하지만...팀 인원 중에서 반은 촬영하러 게속 돌아다니고...

프리뷰를 할 사람은 나와 다른 작가1명...

두명이서 11개를 다 해내기에는 굉장히 역부족이었습니다.

하지만...팀을 위해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

3일을 밤새면서 분량을 다 해 낼려고 비몽사몽으로 살았었습니다.

근데...뒤에서 들리는 소리는...

우리는 이 일이 3개월 정도로 보고 하는건데...3개월 뒤면...쫓겨 날거라는...

ㅋ...면접볼 때의 정규직이란 말은...처음부터 거짓이었던 거였습니다.

작가들이 하도 빨리 나가니...그렇게 감언이설로 일을 시키려 한 거였더군요.

그래서...그래...3개월만 일하고 나가면 되는거지...뭘...하며 그냥 하던대로 열심히 했습니다. 

저희집이 2층이었는데요...

3일을 꼬박 밤새고 집에 갔다...다시 출근해야 해서 게단을 내려오는 순간...

핑...하고 어자러움아 느껴져서 바로 뒤로 넘어졌는데...

지금도 아찔한 건...조금만 더 정수리 쪽으로 넘어졌으면...뇌진탕으로 즉사했을 거라는...ㅠㅠ

그렇게 심하게 머리를 부딛치고 난 뒤에도...

난 정신이 차려지고...일어날 수 있는 걸 보고는 괜찮겠지...싶어서...지각이 겁나...

병원에도 들르지 않고...일하러 갔더랬죠.

그렇게 일을 하던 중...옆의 동기들이 얼굴을 찡그리며...저에게 말을 하는 거에요.

"왜?"하고 물으니...머리 정수리부터...목 뒷덜미까지...피멍이 들었다고 하더라구요.

놀라 화장실에 가서 머리를 넘겨 보니...귀까지 시퍼렇게 피멍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부딪힌 부분은...조금만 세게 누르면 터질 것처럼...말랑말랑...하더라구요.

뼈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요.

애들이 빨리 병원에 가라고 했지만...갈 수가 없었어요.

내가 빠지게 되면...일이 많이 쌓일 것을 알기에...

그래서 그냥 웃으며 말했죠.

난...우리 부모님이 좋은 일을 많이 하셨으니깐...좋은 일만 있을 거라고.

병원에 안 가도 이 정도는 거뜬히 완쾌될 거라구요.

상처가 낫기 전까진...부산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걱정하실까봐...였죠. 

근데...그렇게 열심히 일을 했는데...우리팀 PD는 제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 봐요.

사사건건 트집이었고...비아냥거리는 게 일상이었죠.

제가 밤새면서 프리뷰 분량 맞출려고 일을 하면...

다른 팀장들 같으면...고마움에 어쩔 줄을 모를건데...

우리 팀장은..."왜 저렇게 열심히 한데?? 어차피 짤릴건데??"라면서...

뒷소리를 하고 다녔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꾹...참고 있었는데...

워크샵을 다녀온지 얼마 되지 않아...지각했다는 이유로...짤렸습니다.

아니...제가 나온 것도 맞죠.

부당한 얘기를 하길래 팀장과 싸웠거든요.

그 팀장 말의 결론은...내일부터 나오지 마세요...였죠.

그렇게 예기치 못 하게 일을 그만두고...정말 많이 아파했습니다.

머리 다친 부분은 원형 탈모 증상이 생겨나 머리카락이 빠지고...

가끔씩 심하게 속이 울렁거리고...그래도...병원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집에서 알게 될테고...부모님 상처받으실테고...그냥...혼자서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짤리고 난 뒤...

일한 급여를 보내 주겠다고 해 놓고...돈이 오지 않아 전화했더니...

보내 주겠다고...하더군요.

근데...이를 어쩌나...아직까지 급여를 못 받았다는...               -------ㅠㅠ////////

 

 

어머나...아직...나의 억울한 이야기는 시작도 되지 않았는데...이만큼이나 길이가 길어졌네요.

근데...더 웃긴 건...

글을 쓰면서 보니...

ㅋㅋㅋㅋ...나...참...헛살았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게...

그리고 그때의 기억들을 또렷하게 기억이 나는 것이...참...그냥...허탈하네요.

열심히 살았는데...정말 아끼며 살았는데...

서울에 와서는...청바지도, 신발도...만원이 넘는 건...입어 보지도 못했는데...

간혹 부산가면 엄마가 좋은 옷을 사주시지...서울에서의 나는...거지 아닌 거지였죠.

근데...뒤에 제가 얼마나 지독한 일을 당했는지 모르시죠???

뒤에 일들이 얼마나 지독했으면...

지금까지 제가 써 내려온 일들은 일 축에도 안 넣고 있었다는 것...

ㅋ...ㅋ...정신 병원에 들어가지 않은 게...다행인 것 같네요.

다...부모님의 사랑 덕분이겠지만요.

 

그렇게 또 상처받아 있다가...방송작가협회를 졸업했죠.

제가 원래 하고 싶었던 분야는 드라마라서...계속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더이상 부모님께 손을 내밀기가 민망하더라구요.

내 친구들은 벌써 적금이 만기가 되어 찾고 하는 그때...

나는...돈한푼 버는 것없이...집에서 부쳐 주는 돈으로 생활해야 했으니...

어쩌면...자신감을 상실해 가던 중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나 자신을...버러지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근데...어떤 후배가 저에게 이런 말을 하더라구요.

언니가 처해 있는 지금을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구요.

나중에 백수 생활의 애환을 담은 드라마를 쓰게 되면 직접 그 마음을 겪어본 언니이니까...

언니만큼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없을 거라구요.

언니는 밝고, 명랑하고, 잘 웃는 게 참 매력적이니깐 지치지 말라구요.

정말 고마웠습니다.

계속되는 사회가 주는 불신감에...나 자신조차도 믿지 못하던 상황이었으니까요.

그 후배릐 말을 가슴에 곱게 간직하며...다시 이력서를 올렸습니다.

 

연락이 온 곳은..."정치삐딱이 PPan"이라고 하는 곳이었죠.

구일에 있는 정치싸이트인데요...

황우석 박사 사건이 바람이 불면서 많이 관심을 받게 된 곳이기도 하죠.

거기서 구하는 사람은...정치토론회 구성과 시나리오를 써 줄 작가를 구하는 거였는데요...

제가 대학 다닐 때 전공이 정치외교학이었거든요.

그래서 연락했다고 하길래...흔쾌한 마음으로 하겠다고 했죠.

그리고 그땐 후배가 말없이 응원해 주는 파이팅에...에너지가 무한대였으니까요.

 

시작한지 일년정도 밖에 되지 않은 업체라...모든 게 다...부실했어요.

오피스텔을 사무실로 얻고 있었는데...

남자들만 있어서 그런지 먹는 것도 부실하고...돈도 많이 없는 그런 회사였어요.

비싼 점심값때문에...점심은 직접 해 먹는 분위기였구요...

텅빈 씽크대에 있는 거라곤...인스턴트 커피 몇개...

처음엔 그냥 열심히 토론회 구성하는 데만 신경을 썼어요.

제가 여자이다 보니...

저에겐 따로 방 하나를 내 주시더라구요.

그래서...일은 편하게 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토론회를 끝내고 30만원이란 원고료를 받았죠.

그때..PD님이 여기서 일해 보지 않겠냐고 하시더군요.

다른 기자들도 김작가를 편해 하는 것 같고...김작가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거라구요.

전...이미 토론회를 준비하면서...사람 좋은 이 회사 사람들에게 푹...빠져 있었기에...

흔쾌히 동의를 했죠.

집에다 설득시키는 데 한참이 걸렸을 정도니까요.

그 회사에서 일하게 되면서...일이 밤낮이 없는지라...제 짐을 챙겨와야만 했어요.

제게 지정된 방을 제방으로 쓰면서...일주일에 한번씩 집에 다녀왔죠.

그리고 점심 준비는 고스란히 제 몫이 되더라구요.

그런 제가 안쓰러웠는지 기자님들이 설겆이를 꼭..꼭...해 주셨죠.

근데...일이 그렇게 되는 건가봐요.

돈이 없는 회사였기에...그 부장님이 지금은 월급을 못 주지만...

조금 뒤에 성공하게 되면...성과급을 꼭 지급해 줄테니...우리 어려워도 잘 이겨내 보자구요.

전...어려운 위기 상황에서 강한 의지를 불태우는 성격이었기에...

정말 잘 되기만을 생각하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다른 기자님들 역시 월급을 안 받고 일하는 처지였기에...다들 궁핍했고...

그나마 전...집에서 꼬박꼬박 생활비랑 용돈을 부쳐 주었기에...

어느샌가...회사 사람 5~7명의 먹거리를 제가 책임지게 되어있더라구요.

황우석 박사를 지지하는 집회가 있으면 회식을 하는데...회식 비용도 다 내가 내고...

커피나 음료수 등이 떨어지면...제가 다 사고...

그렇게 회사에만 들어가는 돈이 제 생활비의 거의 다가 되어 버리더군요.

그래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같이 일하던 기자님과 PD님이 저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게 안타까웠고...

그분들이 친오빠처럼 잘 대해 주셨기에...

정말 뭔가를 만들어 내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지냈습니다.

집에서도...제 뜻이 완강했기에...아무 말도 못하고...

엄마는...혹시라도 제가 고생할까 싶어서...

김장을 하면 김치를 아이스박스 큰데에 가득 넣어서 택배로 보내 주시기도 하고...

먹을 것도 수시로 부쳐 주시고 그랬죠.

저희 엄마도 성격이 강한 분이시기에...

젊은 사람들이 어려워도 열심히 해 볼려는 마음이 기특했나 보더라구요.

그래서...엄마가 많이 도움을 줬었죠.

아빠는...내가 고생하는 게 싫다며...내려오라고만 하시는데...

그런 아빠와 저의 중간에서 엄마가 눈치보며 절 뒷바라지 해 주시느라...많이 힘드셨을 거에요.

그렇게 하루하루가 가고...

월급은 한번도 받지 못하면서...내 돈은 한 달에 50만원 이상시...쓰게 되는 나날들이 이어졌어요. 그러다 황우석 지지 집단이 많이 늘어나게 되고...

저희 싸이트가 그 중심에 서게 되면서...뭔가 빛이 나기 시작하는가...했어요.

우리 싸이트를 아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젠...뭔가가 되겠구나...싶어...기자님들과...즐거워했어요.

근데...분명 홈페이지에서 온라인 후원을 받고 있는데...

그리고 명단에 적혀 올라가는 사람들의 이름은 많은데...돈은 한푼도 주지 않았어요.

월급을 떠나서 장볼 비용도,...아무것두요.

여전히 제가 회식비를 내고 있었고...

기자님들은 핸드폰 통화료를 낼 돈이 없어서...기자란 사람들의 핸드폰이 끊기기 일쑤였고...

하지만...부장은 돈에 대해선 아무런 말이 없더라구요.

오히려 저에게 목돈을 빌려줄 수 없냐고 하더군요.

싸이트가 많이 알려지면서 들어오는 네티즌들의 수가 폭주를 해 싸이트가 다운이 된다면서...

용량을 늘려야 하는데 돈이 필요하다구요.

집에 전화를 했어요.

엄마가 화를 냈어요.

그러면서도 나중에 전화와서는 어떻게 됐냐고 물어보시더군요.

엄마가 화를 내자...전 저희 선배에게 전화를 해서 돈을 빌렸죠.

정말 고마웠던 건...아무런 거리낌없이...바로 계좌번호를 부르라는 선배였죠.

근데...너무 속이 상하는 건...그 돈을 1년이 지난 아직까지 못 갚고 있다는...거죠.

그렇게 그 싸이트에서 일한지 2005년 10월부터였으니...2006년 3월...5개월이 됐죠.

월급은 하나도 못 받은 상태에 오히려 선배에게 목돈까지 빚지고...

부장은 이번주, 다음주...하면서 계속 미루기만 했죠.

 

저는 그때 황우석을 지지하는 분들이 국토대장정을 시작하셔서 그걸 중계하고...글로 쓰고...

에세이 형식으로 글도 올리고 있었는데요...

그 당시에 황우석을 지지하는 사람중에 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스타 대접을 받았었죠. 수많은 리플에...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할 때

그 받침이 되어 주었던 "서프라이즈"라고 하는 정치싸이트가 있는데요...

그곳에 제가 글을 남기면 하루만에 조회수가 천이 넘고...

그들이 점수를 주는 게 있었는데요...

1000점이 넘으면 명예의 전당같은 폴더로 글이 이동되는데...제가 글을 쓸 때마다 그랬죠.

그리고...어쩔 때는 팬이라면서 전화주셔서는 응원의 메세지를 주시고...

ㅋㅋ...스타 아닌 스타 대접을 받았더랬죠.

 

근데...제가 깬 건...3월 1일...광화문에서의 집회에서였어요.

황우석을 지지한다며 모인 집단들이...자기들 내부의 경쟁이 장난이 아니었구요...

이걸 빌미로 사기를 치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고...

전국에서 어렵게 모인 몇 만명의 사람들을 두고 감투를 쓴 자들이 몸싸움을 하고...

ㅋ...그날을 돌이켜 보면...제가 참 부끄럽게 느껴지더군요.

난 진심으로 내 글로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촉매제로 글을 쓴 것이었는데...

내가 쓴 글에 사람들이 감동받아 후원을 하면 그건 돈에 눈 먼자들의 배를 채우고 있고...

ㅋㅋㅋㅋ...그때 느꼈어요.

글을 쓴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얼마만큼의 책음을 지고 해야 하는 것인지.

그 집회 뒤로 전...부산으로 내려와 버렸어요.

제 스스로도 내려갈 생각이었지만...아빠에게 억지로 끌려 내려간 거죠.

그뒤 월급은 고사하고...제가 쓴 돈이며...그리고 선배에게 빌려준 돈까지...

아직까지 한푼도 못 받은 상황이죠.ㅋㅋㅋ   --------ㅜㅜ///// 

 

 

휴...한참을 쓴 것 같은데...아직 제 억울함의 본론은 시작도 하지 못했네요...ㅋ

지겨우시죠???

뭐...저런 바보같은 여자가 다 있나...생각하시죠???

바보같다고 욕하셔도 괜찮아요.

바보니까요...ㅋ...내 부모, 내 지인들 아프게 하면서...

나쁜 사람들에게 열심히 봉사한...바보니까요...^^

 

 

부산에 끌려 내려가기 전..."PPan"에서 계속 일하고 있을 때였어요.

집에서 주는 돈 가지고만 그 회사에 드는 비용을 충당하기엔...어렵더라구요.

그래서...짜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다른 아르바이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이렇게까지 했던 건...부장이 그랬었거든요.

이 싸이트의 지분이 있으면 지금 고생하는 우리가 균등하게 나눠 가지자구요.

그래서...우리는 같이 사업을 한다는 느낌이었기에...서로 다 아까울 것이 없게 한 거죠.

싸이트가 잘 되면 서로 다 좋은 거니깐...

ㅋㅋㅋ...지분은 무슨 지분...ㅠㅠ

썼던 돈이라도 돌려 받으면 좋겠네요...ㅋㅋ

 

그때 연락이 된 사람이 있었어요.

오래 읽으셔서 기억이 희미하게 되셨을지 모르겠지만요...

저 위에...제가 비쥬얼씨드란 곳에서 일하면서 한 사람을 사랑했었다고 했잖아요.

아버지가 원광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에...

어머니는 에쿠스를 몰고 다니며 인테리어 사업을 동생과 같이 하고...

자신은 그때 저와 같이 일하셨던 사촌동생분과 영상 업체 동업을 하고...

온몸에 명품을 두르고 다녔다는...그 사람요,...ㅋㅋ

 

그 분과 연락이 돼...만나기로 한 날이었어요.

여전히 사무실이 청담동 그곳에 있다고...그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죠.

설레였어요.

날 가슴 아프게 했던 사람이지만...1년만의 해후였으니까요...ㅋ

그런데...지금 생각해 보면...그게 하늘의 계시였나 봐요.

위험이 올거라는 복선을 깔아준 거였는지도 모르고...

그날 그 사람을 만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을...모르고...

그날 만나지 않았으면...

내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거란 아쉬움에...갑자기 눈물이 나네요.

 

그날...이상했어요.

오후 6시에 만나기로 했는데...일이 밀리고...

그래서 부랴부랴 저녁 8시가 되어서야 구로 옆 구일에서 출발을 했죠.

저희 싸이트가 있던 곳이 구일역 부근이었거든요.

그렇게 1시간 정도를 가서 강남구청 역에 도착해 문이 열리고 내릴려는 순간...

그날따라 하이힐을 신고 갔었는데...오른쪽 굽이 부러지는 거에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절뚝거리며 계속 걸었죠.

새 거였는데...그것도 지하철 안에서는 잘 있다가 역에 내리니 구두굽이 확...부러지는 것이...

너무 황당했어요.

ㅋ...그날 또 느낀 건...강남은 역시 부자라는 거였죠.

길거리에서 아무리 구두수선방을 찾을려고 해도...

눈씻고 찾아봐도...청담동, 압구정 일대를 다 돌아도 수선방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울며 겨자먹기로...신발집엘 갔어요.

싼...신발도 없더라구요.

생각지도 않았던 구두를 하나 사서 신고,,,

그 가게 아저씨에게...이 구두도 좀 고쳐 달라고 떼를 썼죠.

ㅋ...그렇게 구두를 신고 나오니 10시가 넘은 시간이더군요.

그 사람에게서는 계속 전화가 오고... 

그렇게 그 사람과 1년만에 만남을 가졌어요.

출장갈 일이 있어 저녁12시 고속버스를 타고 대전으로 가야 한다는 그 사람...

그래서...한시간 남짓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었죠.

1년만에 다시 만난 그는 굉장히 세련되게...멋지게...강하게 변해 있었어요.

얘기하는 내내...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진정시키느라...애를 먹었었죠.

 

그 사람이랑 얘기를 하러 들어간 곳은...

압구정 디자이너 클럽 맞은 편에 있는 "Take Urban"이란 커피전문점이었어요.

일상적인 얘기를 주고 받다가...그 사람이 일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어요.

그 사촌동생과는 뜻이 안 맞아서...독립을 하게 되었다구요.

그 사촌동생이 건강도 좋지 않아서

그 사촌동생은 고향인 전주로 내려가서 "비쥬얼 씨드"라는 이름 그대로 사업을 하고...

자신은 그 회사에서 새로운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구요.

그리고 자신이 평소에 애니메이션에 대해 관심이 높았었는데...

이번에 애니메이션 쪽으로 시도해 볼려고 한다구요.

그래서 이번에 의뢰받은 게...

성남시 하수처리장에서 홍보영상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는데...

그전에 작가가 썼던 시나리오를 보니 너무 마음에 들지가 많는다며...

자신이 대전에 다녀오고 난 뒤 연락할테니 저보고 좀 도와 달라고 하는 거였어요.

전...

그냥 또 흔쾌히 받아 들였죠.

새로운 걸 시도한다니깐...

그리고 그 사촌동생과 트러블이 많아서 많은 상처를 입었나 보더라구요.

아직...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나 보더라구요.

아니...내 가슴이...먼저 그를 기억하고는...두근거렸나 보더라구요.

그날밤...행복함에 잠들지 못했어요.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들이...올거라는 기대감에...ㅋ

 

그렇게 몇일뒤에...점심시간이라 전 밥을 하고 있었죠.

왜...저희 싸이트에서는 밥을 해 먹는다고 했잖아요...

그때도 열심히 찌개랑 끓이고 있는데...

내가 간직해 온...그사람 번호에 저장된 벨소리가 울리더라구요.

얼마나...설레던지...

연인처럼 수다를 떨다가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전에 작가가 시나리오를 쓴 것을 제 메일로 보내겠다고...

읽어보고 많이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구요.

그날밤...저는 밤을 꼬박 샜어요.

그가 보낸 시나리오는 총 5개였는데...

"수질오염과 정화"라는 주제를 지닌 5가지의 시나리오였죠.

저마다 등장인물과, 스토리가 다른...

그 중에 순위에 오른 것이 있었는데...

그 시나리오는 현재 나와 있는 애니메이션인 "찰리의 초콜릿 공장"을 생각나게 하더군요.

근데...제가 느끼기에 안타까웠던 점은...

수질오염은 결국엔 인간이 만든 것이고...그것을 정화하려면 인간이 중심에 서야 하는...

즉, 자연과 인간은 같이 공존한다는 느낌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입장이 애매하게 전개되어 있더라구요.

그래서 제 나름대로...보충을 해 봤죠.

그리고...어떻게 변화시킬까...고민도 많이 했구요.

그러다 날이 밝고...회사에는 양해를 얻어...청담동으로 가게 됐어요.

너무 놀란 건...제가 일을 마무리지어 놓고 나온다고 1시간 정도 늦게 왔는데...

저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10명 정도 되더라구요.

저는 원래 어딘가에 처음 갈 때...빈손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서...

비타500을 한통 사 갔죠. 그

것을 보고 그사람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김작가는 돈 버는 것보다 이렇게 베푸는 게 더 많다고...아마 보라고...

이제부터 올 때마다 먹을 것을 가져 올 거라고...정말 좋은 사람이라고..."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난 뒤...책임감이 느껴져서,,,

정말로...회의가 있는 날엔 군것질거리를 잔뜩 사 갔던 것 같아요.

그 말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사람이 실장으로 있는 그 사무실의 분위기가

애니메이션을 만들 회사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너무 삭막했고...정이 없더라구요.

그래서..회의하면서 자유로운 분위기로 먹을 것도 먹으며...

수다떠는 것처럼 회의를 이끌어 나가야

좋은 아이디어도 나올 것 같다는 생각에서 한 행동들이었죠.

사람들도 좋아했구요.

처음엔 그 사람 사무실 사람들 양만큼만 사 갔는데...

보니까...문 하나만 열면...그러니 서로 다 보이는 곳이죠.

그 옆엔 그 사람의 어머니와 동생이 하는 인테리어 사무실이 있더라구요.

우리끼리만 먹기가 그래서...나중엔 그 사무실 사람들 먹거리까지...챙겨주게 됐죠.

한쪽만 챙겨줘도 주머니가 텅빌 지경인데...

"PPan"에...옆 사무실인 "플럭스 나인 & 아이디어인 엔터테인먼트"에...

그 사람 사무실까지...

ㅋ...그때까진 그 사람 사무실의 상호명이 정해지지 않았었거든요...

뒤에 "플라잉 버터"라고 사업자 등록을 냈지만요.  

솔직히 돈이 없을 땐...사무실에 가는 게 두려웠어요.

그래서 빈 손으로 가면...

사람들이..."김작가..이제 돈 떨어졌나 보네?"이러고...

그게 자존심 상해서..더욱더 빈손으로 갈 수가 없더군요...

ㅋ그리고 더욱더 놀란 것은...

전...그 사무실에...정말..조언을 해 주는 정도까지로만 생각을 하고 갔는데...

첫날 회의를 마치고 난 뒤에

그 사람이 절 불러서 시나리오를 써 줬으면 좋겠다고...

완전히 내용을 바꿔도 되니...수질오염과 정화...

그리고 정화시키는 부분에서는 로봇이 등장해서...

아이들의 구미에 맞게 써 줬으면 좋겠다고 하더니...

시나리오비는 얼마를 주면 되겠냐고 하더라구요.

좀 당황했었죠.

잠깐 도와 줄 요량으로 온 건데...

그래요...

이상하긴 했어요...

회의하러 들어가는데 그 사람 사무실 사람들 다같이 들어와 시나리오 회의를 했으니까요.

갑자기 부담이 되더라구요.

시나리오는 처음 써 보는 거고...

드라마 대본도 아닌...애니메이션 시나리오라니...ㅡㅡ;

그래서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얘기하니...

아니라고...아까 회의할 때 얘기들이 자기 생각이랑 맞는 것 같다고...

제가 시나리오를 써 줬음 좋겠다고...하더군요.

그리고 돈 얘기를 하길래...

솔직히...일도 시작하지 않은 상태에서 돈부터 다 받고 하는 건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말했죠.

 

"나중에 작품이 다 완성돼서 납품을 하고 돈을 받으면 그때...기분좋게 주세요.

작품이 잘 나오면 더 많이 주시지 않겠어요..?"라고 얘기하니 그 사람이 웃으면서 그러더군요.

자기는 돈에는 철저하다고...

그리고 인센티브가 있으면...다같이 나눠가지지...혼자 욕심부리지 않는다고요.

ㅋ...그렇게 시나리오 작업이 시작됐어요.

뒤에 얘길 들어보니

콘티 작가님은 처음에 게약을 하면서 50%를 지급받았다고 하더라구요.

그렇게 받은 돈이 400만원 정도더라구요. ㅋ...

정말 그때...너무너무 궁핍했어요.

돈 나가는 데는 많지...

돈은 들어올 구멍이 없지...ㅋ...그때부터였을거에요...

집에서 방세내라고 올라오는 돈도 생활비로 쓰게 되고...

그래서...지금은 보증금이 다 깎여서...이사갈 때 받을 돈도 없지만요...ㅠㅠ

정말 궁핍한 반면...정말 바쁜 나날이었어요.

잠이 너무 그리웠으니까요.

원래 쓰기로 한 시나리오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우선은 접어두고...다른 급한 것부터 해야 할 것 같다고 하더군요.

제작기간을 1달 정도 밖에 주지 않아서...

시나리오가 굉장히 급하게 나와야 할 것 같다며...미안해 하더군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사업은 신용이 생명인데...

납품기한을 맞출려면 제가 빨리 시나리오를 넘겨줘야 할 것 같아서...

이틀동안 낮에는 "PPan"일하고...저녁엔 밤새워 시나리오 쓰고...

그렇게 15분짜리 시나리오를 완성시켜서 넘겨줬죠.

 

수질오염과 정화...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매개체를 뭘로 해야 할까...고민하다가...

아이들에게 익숙한 "토끼와 거북이"를 아이템으로 써서 이야기를 만들었죠.

마음에 들어하더라구요.

하지만...시나리오가 빨리 나와도 납품기한을 맞추지 못했어요.

뭐가 그리도 맞질 않는지...

그 사람 사무실에 8명이 일하는데...그 사람들 다...마음이 맞질 않아...

일하는 것보다는 싸우는 게 일상이었고...일이 지연되게 되었죠.

그래서 항상 사무실 분위기는 폭풍전야와도 같아서...

제가 안타까운 마음에...

분위기를 밝게 해 줄려고 많이 웃고, 떠들면서...사람들을 모아 줄려고 노력을 많이 했죠.

그러다 보니...

사무실 사람들이 저를 기다리는 게 일상이 되었더라구요.

김작가가 오면 분위기가 밝아진다고...

그리고...처음에 그 사람 사무실에 일해 주러 갔을 때...

그 사람이 나한테 기사 써 봤냐고 하면서...

이번에 자기 엄마와 동생이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나 시작하는데 "멀티존"을 구상중이라고...

기사문이라고 써 놨는데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다고...

김작가가 좀 매끄럽게 써 달라고 해서...또...기사를 써 주게 되었어요.

그 기사를 보고는 그 사람의 동생이 저에게 와서 그러더군요.

자기가 원하는 내용이었다고...고맙다고...그렇게 그 사람의 동생과 어머니와도 말을 트게 됐죠. 그렇게 지내다 보니...그 사무실에 가는 게 즐거웠어요. 

내가 가면 다들 좋아라 하고...나를 필요로 하니깐...ㅋ  

우리 여동생 말대로 내가 오지랖이 넓은 거였죠...ㅋㅋ

 

 

휴...정말 길군요.

내 인생이 이랬었나...싶기도 하고...ㅋ

보시는 분들께...죄송스러워서 어떻게 하죠???

내 하소연을 들어 달라고 글을 올리면서...

지루하게...

이렇게 길게 올리다니...ㅠㅠ

그래도...읽어 주실거죠???

이제부터 더 숨막히는 일들이 나오기 시작하거든요. ㅜㅜ

 

 

정말 바쁜 나날이었어요.

그 사람 사무실(플라잉 버터)에서도 제가 계속 있어주길 바라고...

"PPan"에서도 내가 해야 할 부분이 비게 되니깐 눈치를 주고...그래서 힘들기도 했죠.

그렇게 지내다 보니...생활이 너무 궁핍해지기도 했고...

시나리오 일을 한다는 걸 집에서 알기에...

엄마가 이상하다..고 계속 저에게 얘기를 했죠.

시나리오를 넘겨 줬으면 돈을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하시길래...

영상 작업이 끝나야 주겠지...라면서 말끝을 흐렸죠.

그런데...ㅋ...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진 거에요.

 

우리가 성남시 하수처리장에 납품을 할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거면...

플라잉 버터와 성남시청이 다이렉트로 계약을 한 것이 아니라...중간에 매개업체가 있었는데요...들리는 바로는...

중간 업체에서 많은 돈은 가지고...플라잉 버터에는 일부만을 주고는...

영상 질은 최고로 나오길 기대하며 게속 수정을 시키는 거였죠.

근데 중간 업체가 성남시와 약속한 게 1달 뒤라면...

플라잉 버터에서 게속 시간을 못 맞춰주니...핑계거리가 필요하다고 해서...

제가 그때마다 시나리오를 대폭..수정해 줬어요.

말이 수정이지...

수정할 때마다 A4 용지 2~3장이 더 첨가됐으니...ㅋ...돈으로 따질 수도 없는거죠.

그리고 그 일뿐만이 아니었어요.

어머니와 동생이 한다는 프랜차이즈 사업이 확정이 됐는데...

영화, 노래방, 케이블TV, 게임, PC를 하나의 룸안에서 다 즐길 수 있다는 아이템으로 나온

복합방 개념의 디지털 멀티존 휴에스(休's)였죠...

첫 기사를 제가 써 줬기에...

이제 거기서도 당연히 글에 관련된 부분은 다 저를 시켰어요.

그리고...그 사람이 제게 부탁을 했어요.

자기 아는 사람이 이번에 강원도에 등산복 가게를 낼 예정인데...

케이블 TV 중간중간에 나오는 광고를 짤막하게 하나 찍어 달라고 한다고...

그래서 저보고 시나리오를 써 달라고 하더군요.

5분 정도를 잡고 했는데...

제가 처음에 써준 시나리오는 너무 고급스럽다고...

본사에서 광고를 만들게 되면 추천하겠다고 하더라면서...

작은 도시의 케이블 이기에...질이 낮아도 된다고...해서...

단순하게 만들 수 있도록 콘티를 짜 줬죠.

그 글을 쓰고 있을 때...그 사람이 옆에서 하는 말이...

거의 공짜로 해 주는 거라고...

돈도 안 남는데...아는 사람이 부탁하는 거라서 어쩔 수 없이 해 주는거라고...

김작가한테도 돈 많이 못 줄거라고...하더군요.

근데...

콘티를 넘기고 난 뒤엔...그 광고의 원고료에 대해선 일체 얘기가 없더군요.

ㅋ...나는 같이 계산해서 줄려나 보다...라고 생각했어요.

근데...더 웃긴 건요...

애니메이션 제작 기간이 길어지면서...

그 사람이 계약하면서 받은 돈보다 1억이 더 넘게 투자됐다고...

그래서 그 사람도 자신이 돈이 없노라고...하더군요.

그러면서...나중에 돈 벌게 되면 주겠노라고...

그때 그 사람이 다른 일을 추진 중에 있었거든요.

자기 어머니와 동생이 강남과 신촌에 휴에스 1,2호점을 내는 것을 보고...

자신도 투자자들을 모으고, 자신도 투자해서 휴에스를 하나 할 거라고...

근데 동생과 어머니가 운영하는 방식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김작가가 휴에스에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같이 휴에스를 새롭게 만들어 보지 않겠냐고...하더라구요.

 

저 역시...휴에스에 관심이 많았어요.

서비스적인 면만 잘 갖추어진다면...

요즘 솔직히 가게는 많아도 즐길 수 있을만한 놀이문화가 잘 없기에...

한 공간에서 모든 걸 다 즐길 수 있고,

또...요즘 여자애들이 좋아하는 럭셔리 풍의 벨벳 쇼파에 먹거리까지 있으니...

정말 대박이 날 아이템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부산에 1호점을 내면 괜찮을 것 같다는...

별로 비싸지도 않고...24시간 운영하는 것이기에...

그리고 인건비도 많이 들지 않기에..매력을 느꼈었죠.

제가 집에 얘기하니...

집에서도 제 말에 다 동의를 해 주셨구요.

아빠의 말인 즉슨...

네가 굳이 지금 작가의 길을 잠시 접고 "휴에스"의 마케팅에서부터 시작하겠다면...

밑바닥부터 확실하게 배우라고 하시더군요.

나중에 제가 그걸 하게 되었을 때...실수가 없도록요.

그렇게 그 사람의 사무실에 4월 중순부터 출근하게 되었죠.

ㅋ...정치외교학과를 나오고...방송작가일을 하던 사람이 마케팅에 대해서 뭘 알겠어요.

하지만...전 저의 감각을 믿었죠.

그리고...사람들의 생각을 읽는 게 중요하다 생각했죠.

"휴에스"는 아이템 자체가 좋기에...사람들의 구미가 당기도록 만들면...

재방문 손님 100%의 매장을 만들 수 있다고요.  

 

그런데 회사 생활이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어요.

자기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자마자...

그 사람은 내가 프리랜서만 해서 회사의 생활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면서...

하나하나 무시하고...잔소리하는 게 일상이었구요...

그 회사의 대표이사가 어머니...실장 2명이 아들들이라서...

ㅋ...그 회사가 무슨 왕궁이라도 되는 것 같이 느껴졌었어요.

아들 둘다

자기만의 생각이 완강했고...고집도 엄청 세고...

성격도 만만치 않게 급했기에...항상 싸우는 소리가 들렸죠.

거기에 무슨 욕심이 있는 건지..그 아들 둘을 계속 이간질시키는 부사장에...

부사장을 맡고 있던 분은 40대 후반이셨는데..."휴에스" 영업을 맡고 있었구요...

원래는 인테리어 하시는 분으로 그사람 아버지가 교수라고 했잖아요??

원광대 건축학과 교수...그 제자 였는가 보더라구요.

아무튼 바람 잘 날이 없다고...

형제  둘은 갈수록 사이가 안 좋았고...

회의만 했다하면 싸우는 게 보통이고...

그 사람은 그때가 32살, 그사람 동생은 29살이었기에...

그것보다 더 빨리 사업을 시작했었으니...세상에 대한 무서움이 있었겠어요??

그래서...

자기 밑에 일하는 직원들을 무시하는 게 일상이었고...

자신들의 말이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힌다는 건...생각하지도 못했나 봐요...

암튼 그 회사 다니면서 울었던 게...아마 제가 평생 흘려야 했던 눈물의 양만큼 될 거에요. 

 

그사람은 자기 스타일의 "휴에스"로 만들려고 하고...

동생은 그게 못마땅하니...본사에서 시키는대로 하라고 하고...

그러면 그사람은...꼴랑 매장 3~4개 가지고 있고...

체계도 안 잡혀 있으면서 무슨 프랜차이즈랍시고 본사 규정을 따르라고 하냐고...

항상 그런 식으로 싸웠죠.

그리고 둘이서는 서로 얼굴 마주보고 얘기하지도 않았어요.

중간에서 내가 연락책처럼...여기 가서 말 전하고...또 혼날 건 나 혼자 다 혼나고...

다시 그사람에게 가서 동생말을 전하고...

ㅋㅋ..그런 식으로 일을 진행하니...일이 빨리 될 게 없죠.

 

원래 5월 말에 월드컵을 겨냥해 오픈을 할 예정이었는데...

그래서...제게 처음 맡겨진 일이 시장 조사였어요.

그때 그사람이 매장을 할려고 물망에 오른 지역이 "대학로"였는데...

제가 나가서 하루종일 지켜봐 온 결과...

그사람이 할려고 했던 그곳은...죽은 지역이었어요...

그날 오후 내내 그 건물 앞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오고가는 사람들의 경향이며...시간대...그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수나...연령대 등등을

다 기록했어요. 

너무 죽은 지역인 게 표가 나더라구요.

그사람이 저에게 시장조사를 보낼 때...

오후시간대도 지켜보고...저녁 늦게도 지켜보라 해서...

저녁10시까지...초봄...쌀쌀한 기운에서 계속 밖에 있다 보니...한기가 느껴지더군요.

그래도...하나라도 놓칠까봐...열심히 보고 또 봤죠.

그리고는...집에 와서 내 나름대로 보고서를 작성했어요.

생전...이런 걸 안 해 봤으니...그냥 알기 쉽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어요.

 

ㅋ...그 다음날 난 보고서를 그사람에게 줬구요...

그사람은 보고서를 보더니 '피식'하고 웃더군요.

회사 생활을 했던 사람들이라 내 보고서가 서식이 없으니 웃겼나 보더라구요.

그러다가 그사람이 그것을 들고

부사장, 자기 동생, 자기 엄마와 회의를 하러 들어가더군요.

어차피 또 싸웠지만요.

동생이 나중에 저에게 와서 하는 말이 보고서 김작가가 썼냐고해서...

그랬다고 했더니...

그런 보고서 생전 처음 봤다고...무슨 일기쓰냐고 하면서 면박을 주는데...

뭔가 속에서 울컥!!하고 올라왔지만...참았죠. 

처음부터 나한테 그런 식으로 장난을 한 사람이기에...

그리고 형과 자기는 다르다는...

프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하려고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어요.

무조건 형과 제가 휴에스를 준비하는 일에는 무시했었거든요.

 

암튼...물망에 올랐던 대학로는 버리기로 하고...그 다음에 오른 곳이 홍대 앞이었어요.

제가 홍대 앞에 살기 때문에...

그때 자리가 난 곳은 정말 괜찮은 곳이었거든요??

근데...부사장과 동생이 계속 반대를 하더라구요.

그러다 결국엔 거길 못 들어가게 됐어요.

그사람이 매장을 열게 되면 제가 매니져를 해 주겠노라고 얘기가 된 거여서...

홍대앞에 매장을 차리면 집도 가깝고...

분명 대박날거라 생각했는데...

그 건물 주인이 "휴에스" 아이템이 탐이 났는지...

세를 안 주겠다고...자기가 하겠다면서...계약을 없던 걸로 하자고 하더군요.

 

그때가 벌써 6월이었어요.

월드컵 열기에 전국은 시끄럽고...

그때까지 휴에스가 강남, 신촌, 신천, 동교(홍대)점까지 4개가 오픈했었는데요...

빔 프로젝트로 쏴서 100인치 화면에

추천수1
반대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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